2017 대선 신조어 ‘홍찍문’ ‘안찍박’ ‘문모닝’ ‘안슬림’
  • 소종섭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4.26 09:57
  • 호수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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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해학보단 네거티브의 한 유형

 

이번 대통령선거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신조어다. 다양한 신조어들이 등장했다. 출마자 숫자도 15명에 이르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실시되는 대선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신조어를 낳았다. 신조어는 단순한 언어 조합 이상의 정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복잡한 셈법이 깔려 있는 대선 구도를 대변한다. 신조어는 주로 긍정적인 의미보단 상대 후보를 깎아내리는 용도로 쓰이고 있다. 이 때문에 풍자와 해학보단 네거티브의 한 유형으로서 신조어가 등장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왼쪽부터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홍준표 자유한국당,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 시사저널 박은숙·시사저널 이종현

■ ​어대문-이대문

 

이번 대선에서 신조어의 문을 연 것은 ‘어대문(어차피 대선후보는 문재인이다)’과 ‘이대문(이대로 가면 대선후보는 문재인이다)’이었다. 더불어민주당 경선을 앞두고 등장하기 시작한 이들 신조어는 이른바 ‘문재인 대세론’을 상징하는 말이었다. 한때는 허상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지만 경선에서 문 후보가 압승하면서 현실화했다. 대선 재수를 해서인지 조직력이 남다른 문 후보의 세를 상징하는 신조어다. 문 후보는 ‘어대문’과 ‘이대문’ 바람을 타고 예선을 넘어 본선에서도 앞서가고 있다.

 

 

■ ​홍찍문

 

‘홍준표 후보를 찍으면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는 것이다. 주로 국민의당 쪽에서 흘러나오는 주장이다. 4월6일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가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찍으면 문재인 후보가 된다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고 말한 이후 SNS를 타고 빠르게 퍼졌다. 무조건 네거티브만은 아니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홍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할 경우 정치적으로 최대 피해자는 안철수 후보다. 이 지역에서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안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문재인 후보의 당선 가능성은 커진다. 박지원 대표의 말은 이러한 상황을 반영한 언급이다. 즉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는 것에 반대하면 홍준표 후보를 찍지 말고 안철수 후보를 찍어달라고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호소하는 언어다.

 

정치적 구도로 보면 나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선거는 구도라는 말이 있다. 양강 구도가 아닌 3자 정립 구도가 된다면 30% 내외의 확실한 지지층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문재인 후보가 당선에 유리하다. 문 후보는 홍 후보를 도와 지지율을 끌어올려줘야 하는 상황에 있는 것이다. 반대로 안 후보 입장에서는 단단한 문 후보 지지층을 공략하기는 힘겨우니 어떻게든 홍 후보의 약진을 막아야 문 후보와 호각지세를 형성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나온 신조어가 ‘홍찍문’이다.

 

 

■ ​안찍박

 

박지원 대표의 ‘홍찍문’ 발언에 가만히 있을 홍 후보가 아니다. 즉각 응수했다. ‘안찍박’이다. ‘안철수 후보를 찍으면 박지원 대표가 상왕이 된다’는 것이다. 홍 후보가 안 후보를 공격하지 않고 굳이 박지원 대표를 끌어들인 데는 이유가 있다. 박 대표는 호남의 상징적인 정치인이다. 그의 이름이 거론될수록 ‘안철수=호남, 국민의당=호남’으로 이미지화된다. 홍 후보는 ‘안찍박’을 통해 보수 유권자들에게 안철수 후보를 찍으면 호남 세력에 표를 주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보수 유권자들이 안 후보에게 가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박지원’으로 상징되는 구시대 정치인 이미지를 강조하려는 노림수도 있다. 박 대표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정치인이다. 하지만 안 후보가 주장하는 ‘4차 산업혁명 지도자’ ‘미래 지도자’ 이미지와는 분명 차이가 있다. 홍 후보는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가 두 사람 간의 엇박자를 강조하고 있다.

 

 

■ ​문모닝-안모닝

 

굿모닝에서 착안해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가 아침마다 문 후보를 비판하는 것을 빗대 ‘문모닝’이라는 말도 나왔다. 반대로 문 후보 측에서 안 후보를 비판하는 것에 대해 ‘안모닝’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그만큼 이번 대선에서 양 진영 간 네거티브가 치열하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양강 구도를 기정사실화하려는 국민의당 쪽에서 아무래도 문 후보에 대한 비판의 칼날을 더 예리하게 벼리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것은 역효과가 있을 수 있다. 문 후보 측은 단단한 지지층이 있기에 웬만한 네거티브에도 지지층은 흔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안 후보는 다르다. 이 때문에 네거티브가 격화될수록 안 후보가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특히 ‘미래형 지도자’를 자임하는 안 후보와 네거티브는 어울리지 않는다. 문 후보 측의 네거티브 공세에 안 후보 측이 말려든 측면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홍 후보는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면 대북정책에 관한 한 대한민국 대통령은 김정은이다”라며 ‘문찍김’ 공세를 펼쳤다. 문 후보의 유화적인 대북관을 꼬집는 신조어다. 이를 부각시킴으로써 자신이 보수의 대표주자이고 문 후보는 안보관에 문제가 많은 후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안팎으로 사퇴설에 시달리던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유찍유(유승민을 찍으면 유승민이 된다)’를 내놓았다. 대선후보에서 사퇴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한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지지자들에게 자신을 지지해 달라는 강한 호소이기도 하다.

 

 

■ 문슬림-안슬림

 

문 후보와 안 후보 지지자들끼리 서로를 공격하는 말이다. 상대 지지자들이 과격하다는 뜻을 강조하며 후보의 성에 무슬림을 합성해서 만들었다. ‘달(moon·문)레반’과 ‘안레반’이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후보의 성에 탈레반을 합성해서 만든 신조어다.

 

현재 인터넷상에서는 두 후보 지지자들 간 댓글 전쟁이 치열하다. 가수 전인권씨가 안 후보에게 우호적인 언급을 하자 문 후보 지지자들이 전씨를 비판하는 글을 쏟아낸 사례가 대표적이다. 두 후보 지지자들의 열성적인 지지는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후보에게 부담이 되기도 한다. 이들은 이른바 ‘~빠’로 불리며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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