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취임 100일 성적표 ‘F학점’”
  • 김원식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5.01 10:08
  • 호수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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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이하 역대 최악 국정 지지율…공화당 내 ‘용도 폐기론’까지 나와

 

“100일이 아니라, 한 1년은 넘은 것 같다.” 정치권의 ‘이단아’로 불렸던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100일(4월29일)을 앞두고 워싱턴 정치권에서 튀어나온 말이다. ‘말 바꾸기’와 ‘좌충우돌’로 대표되는 트럼프의 취임 100일이 그만큼 ‘혼돈의 연속’이었다는 평가다. 실제로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는 말이 나올 만큼 예측을 불허하는 그의 행동을 온 지구촌이 우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국제 분쟁에 불개입하고 ‘세계 경찰’의 지위를 내려놓겠다는 그의 공약은 시리아 폭격으로 인해 무너졌다. 친(親)러시아 정책을 펼칠 것이라는 예상도 완전히 빗나가며 러시아와의 관계는 역대 최악의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슬람국가(IS)’와의 싸움에서도 비핵무기 중 최대 살상력을 가진 ‘폭탄의 어머니’라는 모압(MOAB)을 전격 투하해 역대 대통령 중 최고의 ‘개입주의’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해 강력하게 무역 전쟁을 펼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지만, “나는 시진핑 국가주석을 최고로 존경하며 좋아한다”는 발언으로 뒤집었다.

 

월스트리트저널과 NBC뉴스가 4월17∼20일 미국 성인 9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조사한 결과,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40%로 나타났다. 이는 취임 100일 무렵의 지지율로는 1950년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이후 최악 수준이다. © AP 연합

 

 

여전히 혼돈 속에 빠져 있는 트럼프

 

국내 정치에서도 그의 좌충우돌은 끝이 없다. 전임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보험 정책인 ‘오바마케어’의 폐지를 공약하며 이른바 ‘트럼프케어’를 강력하게 밀어붙였지만, 자신이 소속된 다수당인 공화당의 과반수 지지도 받지 못했다. 또 다른 최대 공약이었던 반(反)이민 정책도 이번에는 사법부가 제동을 거는 바람에 혼란만 가중시키고 말았다. 취임 100일이 넘었지만, 560석에 달하는 장·차관 등 정부 고위직 인사는 고작 26명만 상원 인준을 통과해 트럼프 행정부의 공백 상태를 그대로 증명하고 있다. 여기에 백악관 내부 측근들 간의 암투설까지 불거지며 혼란의 끝을 알 수 없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한 뒤에도 공식적인 절차는 생략하고 SNS를 통해 자기 생각을 표출하고 있는 것도 혼란을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총괄하는 백악관과 국무부의 직원들은 아침에 눈을 뜨면 뉴스가 아니라, 트럼프의 트위터를 가장 먼저 챙겨 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정책 실무자들도 자신들의 정책 방향을 모르겠다고 하소연한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100일을 맞아 홈페이지에 ‘100일간의 역사적 업적’이라는 장문의 보도자료를 게재했지만, 그의 성적표는 최악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40%에도 못 미치는 역대 최악의 국정 지지율이 이를 잘 말해 준다. 트럼프는 이 역시 자신의 트위터와 인터뷰를 통해 주류 언론들이 만들어낸 “‘인공적인 장벽(artificial barrier)’일 뿐”이라며 “말도 안 되는 평가”라고 애써 무시했지만, 그를 둘러싼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미국 대통령직 역사학자인 로버트 달렉이 트럼프가 취임 100일의 성과가 최고라고 자랑했다가 최악이라는 언론의 평가가 나오자 “100일만 가지고 평가하는 것은 문제”라고 비난한 것을 두고 “다른 것은 별도로 하더라도, 트럼프의 불일치(inconsistency)는 연구 대상”이라고 일침을 가한 것은 이를 잘 말해 준다.

 

트럼프가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국내 경제 분야에서도 아직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고 있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각종 규제 철폐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미국 내 기업들의 이익 극대화 등을 우선순위에 뒀지만, 실제로 중산층 이하 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것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다는 평가다. 취임 100일을 맞아 세율 인하를 핵심으로 하는 세제 개편안을 발표했지만, 공화당 내에서도 의문을 던지는 의원들이 많아 추진 여부도 불투명한 실정이다. 현실적인 경제 효과보다 보여주기식 전시 행정에 치중한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최근 ‘트럼프 저격수’로 떠오른 민주당의 엘리자베스 워런(매사추세츠) 상원의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100일 국정을 ‘F학점’으로 평가하면서 “트럼프는 미국의 서민을 최우선으로 삼겠다고 약속했으나, 실은 미국의 서민들에게 ‘펀치’를 날렸다”고 날을 세웠다.

 

 

FBI, ‘러시아 내통 의혹’ 수사 중

 

하지만 무엇보다도 트럼프는 외교정책에 있어 ‘오락가락’으로 가장 큰 논란을 부르고 있다. 불개입주의를 표방하다가도 강력한 개입주의로 돌아서는 트럼프의 외교 원칙에 관해 좀처럼 감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워싱턴 외교가에서 “트럼프가 취임 이후 결국, 국무부를 중심으로 한 강경 매파(hawk) 세력에 포위당해 세뇌(brainwash)당했을 것”이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뉴욕타임스(NYT)가 “기존의 신념이라도 과감히 버리고 즉흥적인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 향후 전략을 예측 불가능하게 만들어 적대 국가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 그러면서도 동맹 방어는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을 ‘트럼프 독트린’으로 부를 수 있다”고 규정한 것이 나름 일리가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외교 분야에 있어서 진짜로 트럼프 행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대선 기간 러시아와의 ‘내통’ 의혹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최근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낙마로 대표되는 이 스캔들의 불똥이 어디까지 튈지는 예측을 불허한다. 연방수사국(FBI)의 수사가 진행 중인 이 사안의 향방에 따라 정권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정권 핵심인사들의 관련이 드러나면 의회에서 탄핵 절차를 진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의 취임 100일은 ‘시험 기간’일 뿐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국민적인 지지로 ‘아웃사이더’를 대통령으로 받아들인 공화당이 향후 트럼프 행정부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얼마든지 ‘용도 폐기’할 수 있다는 성급한 관측까지 워싱턴 정가에서 나오고 있다. 2년 후 중간선거를 앞둔 공화당 수뇌부가 트럼프의 국정 지지율이 계속 하락하고 거기에 러시아와의 내통 의혹이 더욱 표면화된다면, 마지못해 탄핵하는 ‘플랜B’의 시동에 눈을 감을 수도 있다는 예측이다. 트럼프 행정부 또한 이러한 가능성을 우려해 최근 공화당과의 결속에 엄청나게 공을 들이고 있다. 취임 초기에 ‘트럼프케어’에 대한 지지 확보 실패로 ‘의회 권력’을 실감한 트럼프가 전체 상원의원을 백악관으로 초대해 대북 정책을 브리핑한 것은 이를 잘 말해 준다. 하지만 트럼프 취임 100일은 그의 자화자찬과는 달리 짙은 먹구름에 덮여 있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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