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업체 근로자 죽음 내모는 ‘무늬만’ 안전관리 실태
  • 이석 기자․정지원 시사저널e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17.05.0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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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중 사망자 6명 모두 협력업체 직원…대선 후보들도 예의 주시

 

5월1일 노동자 31명의 사상을 낸 경남 거제 삼성중공업 조선소 참사는 타워크레인과 골리앗크레인의 이동 신호가 제대로 맞지 않아 빚어진 사고로 추정되고 있다. 

 

사고 당시 현장에서는 프랑스 토탈사가 발주한 해양프로젝트인 ‘마틴링게 플랫폼’ 건조 작업이 한창이었다. 사고는 작업장의 남쪽에서 북쪽으로 움직이던 골리앗크레인과 타워크레인의 메인 붐대(지지대)를 잡아주는 와이어가 충돌하면서 발생했다. 

 

부러진 크레인이 흡연구역이나 화장실 부근에 모여 휴식을 취하고 있던 노동자들을 그대로 덮쳤다. 길이 50~60m, 무게 32톤짜리 타워크레인의 잔해물과 혈흔이 사고 당시의 처참함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5월1일 근로자의 날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타워크레인 사고가 발생해 31명의 사상자가 나와 주목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삼성중 사고 후 원청 안전관리 책임 강화 목소리

 

경남지방경찰청은 사고 직후 광역수사대 안전사고전담수사팀과 과학수사팀을 현장에 보내 원인을 조사 중이다. 경찰은 골리앗 크레인과 타워 크레인이 작동할 때 부딪치지 않도록 사이렌을 울리거나 신호수가 크레인 작동을 조절하는데, 이런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것이 사고를 유발했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원청의 안전관리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위험한 작업을 안전관리도 소홀한 채 외부 협력업체 근로자들에게 떠넘기는 행태를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사고에서 사망한 작업자 6명은 모두 협력업체 소속으로 비정규직이었다. 중·경상을 입은 25명 역시 대부분 협력업체 소속이다. 삼성중공업 정규직 직원들은 노동자의날인 1일부터 7일까지 휴무로 거의 출근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협력업체 비정규직 직원들에 위험이 따르는 작업을 안전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떠넘긴 것이 사고의 원인으로 지적되는 이유다. 삼성중공업 일반노조 김경습 위원장은 최근 “가슴이 아픈 건 근로자의 날에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숨지거나 다쳤다는 것”이라며 “힘없는 협력사 노동자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 사고”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크레인이 움직이는 범위 안에 흡연실(휴게실)을 설치했다가 사고가 난 것”이라며 “경영진의 안전 불감증, 부주의 탓에 휴식을 취하던 사람들이 사고를 당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제2, 제3의 삼성중공업 사태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금속노조 경남지부에 따르면 거제지역 조선소 노동자의 70~80%를 협력업체 정규·비정규직 노동자다. 안전 관리 대책이 충분치 않은 위험한 외주화 악순환은 또 다른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노동계의 한 목소리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의 산재 사망사고율은 OECD국가 중 가장 높았다. 특히 하청·파견·건설 일용직 등 비정규직과 중소 영세사업장의 취약계층 노동자에게 사망 등 중대 산재 사고가 집중되고 있다.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4월11일 발표한 ‘원·하청 산업재해 통합통계 산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5년 사고사망만인율(근로자 1만명당 발생하는 사망자 수의 비율)은 하청업체 근로자의 사고사망만인율(0.34)이 원청(0.05)의 7배에 육박했다. 상주 하청업체만 놓고 보면 사고사망만인률이 0.39로 원청의 약 8배까지 치솟았다. 

 

이번 삼성중공업 사고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동단체들은 현재 대책회의를 통해 철저하고 엄정한 진상 조사를 촉구하는 한편, 산업재해 원청 책임 강화와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권도 5월1일 발생한 삼성중공업 사고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2일 거제 삼성중공업 사고 현장을 긴급 방문하고 “골리앗 운전기사와 골리앗이 움직일 때 신호를 담당한 6명의 신호수 모두 다 삼성중공업 소속 직원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중공업이 가해자인 것이 명확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피해자를 비롯한 사내하청 직원 중 절반이 어제 특근을 했지만, 삼성중공업의 정규직원들은 1000명밖에 근무를 안 했다”며 “그것만 보더라도 위험이 외주화되어 힘들게 박봉으로 일하고 있던 사람들이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이다. 삼성중공업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5월2일 삼성중공업 타워크레인 사고 현장에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오른쪽),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오른쪽 두번째), 더불어민주당 송옥주 의원이 방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노회찬 의원 “삼성중공업이 사고 가해자” 

 

정의당은 조속히 진상을 파악할 수 있도록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집을 적극적으로 주장할 예정이다. 아울러 국회 차원에서 진상과 책임 규명, 보상 및 재발방지대책 수립 등을 집중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노 의원은 밝혔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도 페이스북을 통해 “무엇보다 사고 원인과 경위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며 “관심을 갖고 챙겨보겠다. 정확한 원인이 파악 되는대로 필요한 조치가 취해지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사업장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고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사업장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안철수 후보 측은 “노동자와 국민의 안전을 환경, 안보와 더불어 총체적 국민안보 개념에서 다루겠다”며 “병원신고제 도입 등으로 산재 은폐를 근절하고, 사내 하청 산재 예방 및 중대재해 발생 시 원청 사업주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는 등 안전한 일터를 반드시 만들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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