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수기’ 뜨겁게 달군 쇼박스와 CJ의 맞대결
  • 고재석 시사저널e.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5.04 14:41
  • 호수 143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무로 맞수, 4월부터 자존심 대결…‘4월 외화 강세’ 공식 깨트려

 

충무로의 2분기는 봄기운 가득한 계절만은 아니다. 4월 박스오피스(Box Office)는 유독 신통치 않았다. 지난해 4월도 유일하게 월별 관객 수가 1000만 명을 넘지 못한 달이었다. 2016년 4월 한국영화의 국내 박스오피스 점유율은 32.5%에 그쳤었다. 지난해 1월부터 12월 중 최악의 점유율이다. 초성수기로 꼽히는 8월엔 한국영화 점유율이 70%에 가까웠다. 이 탓일까. 국내 주요 영화 투자배급사들도 4월에는 시장에서 싸우기를 주저한다. 성수기로 꼽히는 7~8월에 화력을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속내는 ‘굳이 무리할 필요 뭐 있나’다.

 

이 틈새를 절묘하게 공략한 게 할리우드 ‘마블(Marvel)’ 스튜디오다. 지난해엔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누적관객 867만 명), 2015년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누적관객 1049만 명)이 흥행돌풍을 일으켰다. 개봉 시점도 거의 같았다. 《캡틴 아메리카》는 지난해 4월27일, 《어벤져스》는 2015년 4월23일 개봉했다. 최근 영화계에서는 4월을 포텐셜(potential) 시즌이라고 부른다. 마블이 해마다 분위기를 달궈서다. 그러자 한국영화계도 덩달아 4월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국내 수위를 다투는 두 영화 투자배급사가 4월에 맞대결을 펼쳤다.

 

© 쇼박스·CJ E&M

쇼박스 《특별시민》 vs CJ E&M 《임금님의 사건수첩》

 

영화 한 편당 평균 관객을 가장 많이 끌어모으는 ‘쇼박스’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치 영화를 내놨다. 전체 관객점유율 1위 ‘CJ E&M’은 징검다리 연휴를 겨냥한 코미디 영화를 내세웠다. 가족 단위 관객을 끌어모으겠다는 심산이다. 첫날 박스오피스는 쇼박스가 앞섰다. 하지만 CJ E&M의 작품도 기대보다 선전(善戰)했다는 평이 나온다. 변수는 다시 ‘마블’이다. 평년보다 한 주 늦었지만 징검다리 연휴에 다시 마블이 한반도에 출격해서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4월26일 동시에 개봉한 영화 《특별시민》과 《임금님의 사건수첩》이 첫날 박스오피스 1·2위를 차지했다. 《특별시민》은 쇼박스의 올해 두 번째 투자배급작이다. 차기 대권을 노리며 서울시장 3선 도전에 나선 변종구(최민식 역)의 선거전이 영화의 핵심 줄기다. 선거공작 1인자인 선거대책본부장 심혁수(곽도원 역)와 베테랑 정치부 기자 정제이(문소리 역)의 역할도 무게를 더한다.

 

CJ E&M은 《임금님의 사건수첩》을 내놓았다. 막무가내 임금 예종(이선균 역)과 천재적 기억력의 어리바리 신입 사관 이서(안재홍 역)가 1468년 한양을 뒤흔든 괴소문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수사를 벌이는 코미디 영화다. CJ E&M은 배급뿐 아니라 공동제작에도 ㈜더타워픽쳐스와 함께 이름을 올렸다. 애초 기대치는 《특별시민》 쪽에 확연히 쏠렸다. 성적은 이에 부합한 모양새다.《특별시민》의 첫날 관객 수는 18만5800명이다. 이날 전체 개봉 영화 중 매출액 점유율이 44.8%에 이른다.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같은 날 10만8400명을 불러들였다. 《특별시민》에 크게 뒤지리라는 예측이 많았지만 매출액 점유율 25.7%로 선전했다. CJ E&M 측은 이에 대해 최종 스코어 478만 명을 기록한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을 1만 명 이상 앞서는 성적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실제 두 번째 날 격차가 다소 줄어들었다. 4월27일 박스오피스 집계 결과, 《특별시민》의 매출액 점유율은 39.1%로 5% 이상 주저앉았다. 반면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26.9%로 소폭 상승했다. 2주간 누적 280만 관객을 모은 할리우드 영화 《분노의 질주》는 두 한국영화가 개봉하자마자 이틀 연속 3위로 주저앉았다. ‘4월 외화 강세’라는 공식이 흔들리는 셈이다.

 

 

전체 성적은 CJ, 편당 평균 성적은 쇼박스 앞서

 

쇼박스와 CJ E&M의 맞대결은 영화계의 오랜 관심거리다. 영진위에 따르면, 지난해 CJ E&M은 16편의 한국영화를 투자배급해 3196만 명의 관객을 불러모았다. 관객점유율은 27.5%다. 쇼박스는 9편의 한국영화로 2921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25.1%의 관객점유율을 나타냈다. 전체 성적은 CJ E&M이 앞서지만, 한 편당 평균 성적은 쇼박스가 확연히 우세하다.

 

비수기, 그중에서도 같은 날에 영화를 개봉한 두 기업은 각자의 호재를 활용할 심산이다. 《특별시민》은 가장 절묘한 개봉 시점을 택했다. 개봉 시점이 그 자체로 ‘정치의 계절’이다. 코미디를 표방한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연휴를 활용할 계획이다. 가족 관객에 대한 소구력이 높아서다. 그래서 12세 이상 관람가라는 대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연휴는 장미대선 덕에 평년보다 공휴일이 하루 더 늘었다. 지난해 《캡틴 아메리카》도 5월6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면서 흥행에 가속도가 붙었었다.

 

결국 돌고 돌아도 변수는 다시 마블이다. 영진위는 2016년 산업결산 보고서를 내며 “4~5월에 집중된 할리우드 프랜차이즈의 공습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라며 “특히 마블 스튜디오 프랜차이즈 영화의 4월말 개봉이 패턴화되면서 4~5월에는 자연스럽게 마블 프랜차이즈 영화를 기대하게 되는 관람 심리까지 형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블이 제작한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는 5월2일에 개봉한다. 4월을 내주고 5월을 택했지만 지난 두 해간의 흥행열풍을 이어가겠다는 심산이다. 기대치도 높다. 국내 배급을 맡은 월트디즈니 코리아에 따르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는 CGV 예매율 1위와 영진위 통합전산망 외화 예매율 1위를 휩쓸었다. 전작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2014년 개봉해 약 7억8000달러(약 8810억원)의 글로벌 수익을 거둬들였다.

 

상황은 예측하기 어렵다. 일단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쪽은 CJ E&M이다. CJ E&M은 1분기에 내놓은 《공조》가 무려 781만 관객을 동원하며 이미 함박웃음을 지었다. 홍세종 신한금융투자증권 연구원은 “《공조》의 이른 흥행 덕분에 실적 개선에도 여유가 생겼다. 《군함도》(제작비 270억원 추정)의 손익분기점(720만 명) 돌파만 전제되면 연간 흑자전환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쇼박스는 1분기 배급작 《프리즌》도 292만 관객을 동원하며 선전했지만 《공조》의 기세를 따라가진 못했다. CJ E&M이 성수기를 노리고 내놓는 영화 《군함도》는 류승완 감독 작품이다. 배우 황정민·소지섭·송중기가 총출동한다. 쇼박스는 송강호 주연의 《택시운전사》를 주력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진짜 싸움은 성수기인 셈이다. 이를 앞두고 일종의 예비전쟁이 꽃의 계절에 막이 올랐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