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발목 잡는 구조적 모순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해야
  •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7.05.09 16:45
  • 호수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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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사회 분야 3대 핵심과제…노동개혁·인구절벽·미래안전

 

사상 초유의 국정 농단 사태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조기 등판하는 새 정부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재설계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를 안고 있다. 새 정부에는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도 꾸려지지 않는다. 당선과 동시에 바로 산적한 국정과제 해결에 나서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새 정부 앞에 놓인 한국 사회의 현실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노동시장의 기형적인 구조는 비정규직 문제와 청년실업, 장시간 저임금 근로의 문제로 이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출산율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미세먼지로 대표되는 환경 악화는 국민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연이은 사법 비리는 법치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뒤흔들고 있다.

 

국가의 최고 권력자를 촛불로 끌어내린 광장의 민심은 단순히 대통령 교체만을 요구한 것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발목을 잡아온 구조적 모순들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바라고 있다. 새 정부가 최우선 순위에 놓고 해결해야 할 사회 분야의 과제들이다.

 

비정규직을 비롯한 노동 문제는 차기 정부가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로 꼽힌다. 사진은 5월1일 전북 전주에서 열린 노동절 집회 ⓒ 사진=연합뉴스

 

“왜곡된 일자리 구조, 바로잡아야”

 

비정규직 노동자 640만 명. 2017년 대한민국의 양극화를 상징하는 숫자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는 870만 명으로 추산한다. 일하는 사람 2~3명 중 한 명은 비정규직이라는 의미다. 어느새 ‘비정규직’이란 단어는 너무나 익숙해졌다. 대다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 불안과 저임금, 사회적 차별의 3중고에 신음한다. 이들에게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권리는 사치에 가깝다. 이는 그들의 고단한 삶에 그치지 않고 민간 소비 위축, 기업 생산 축소, 투자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구조를 형성했다.

 

청년실업 문제도 마찬가지다. 5월3일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실업률과 청년층 실업률 간 격차가 6%포인트 이상 벌어지면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전체 실업률은 3.7%, 청년층 실업률은 9.8%로, 청년층 실업률이 6.1%포인트 더 높았다. 전반적인 고용시장 침체가 계속되는 가운데 청년층 고용이 더 큰 타격을 입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질의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은 ‘지옥고’(지하·옥탑방·고시원)를 떠돌며 오늘도 이력서 쓰기를 반복하고 있다.

 

물론 취업에 성공했다고 행복을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두 번째로 긴 근로시간은 노동자의 삶을 회사에 가두고 있다. 2015년 한국인 1인 연평균 근로시간은 2113시간으로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OECD 회원국 평균 근로시간인 1766시간보다 무려 347시간이나 길다. 퇴근 시간을 넘기기 일쑤고, 주말에도 회사에 불려나간다.

 

장미대선 기간 동안 일자리 문제는 사드 배치, 북핵 등 안보 이슈와 함께 최대 화두였다. 대선 직전 실시된 한 여론조사(5월2일·매일경제·메트릭스)에 따르면, 응답자의 44.5%가 차기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일자리 확대’를 꼽았다. 주요 대선 주자들 역시 선거기간 동안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공약을 한목소리로 내세웠다.

 

노동시장의 왜곡된 구조를 바로잡기 위한 시도는 이전에도 수차례 진행됐다. 하지만 방식이 한 방향으로 치우쳤다.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보호가 비정규직을 양산한다’며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늘리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추진한 노동5법이 대표적이다. 박근혜·이명박 정부뿐 아니라 노무현·김대중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비정규직 고용을 늘리는 기업에 대한 제재는 사실상 전무했다. 청년실업을 해소하겠다며 창업과 해외 취업을 지원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눈에 띄는 성과로 이어지진 않았다.

 

전문가들은 비정규직에 대한 원칙적 사용과 함께 근로자에 대한 소득 향상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동반성장 차원에서 어떤 합의를 통해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근로자의 소득을 올려주는 방법이 실행된다면 괜찮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투자할 곳을 못 찾는 기업에서 근로자를 통해 소득 재분배가 이뤄지면 전체적으로 총수요가 늘어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 © 시사저널 포토

 

“저출산 고령화, 적극적 대응 필요”

 

인구절벽 위기 또한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출생아 수가 올해 들어 두 달 연속 두 자릿수 감소율을 보이면서 인구절벽, 출산절벽이라는 말은 더 이상 생소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통계청이 최근 내놓은 ‘2017년 2월 인구동향’ 자료를 보면, 지난 2월 출생아 수는 3만6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4300명(-12.3%) 감소했다. 저출산 진행 속도가 빨라지면서 연간 신생아 수도 사상 처음 40만 명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고령화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당장 2018년에 고령사회, 2026년에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다. 국민연금 수급자는 올해 453만 명에서 2030년 800만 명으로 급속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서 전체 의료비 또한 2030년 90조원으로 2015년에 비해 3배 이상 폭증할 것이란 분석이다. 일을 할 수 있는 청·장년층 규모는 줄어드는 데 반해, 이들이 부양해야 할 노인 인구는 빠르게 늘어날 것이란 의미다.

 

국가인권위원회 또한 이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인권위는 차기 정부 10대 과제를 발표하면서 “저출산은 다양한 사회 위기가 복합적으로 얽혀 나타난 결과로, 청년 세대의 위기를 반영하는 심각한 문제”라며 “양질의 국공립 어린이집이 부족한 상황에서 젊은 부부가 육아휴직을 사용할 여건도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인권위는 “이러한 요인들이 열악한 일자리 상황과 폭등하는 주거비와 맞물리면서 청년들은 결국 결혼·출산을 최대한 늦추거나 아예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이어 “고령화 시대 우리나라의 66세 이상 노인의 상대 빈곤율(소득이 중위소득의 50% 미만인 가구의 비중)이 OECD 국가 중 1위(2013년 기준 49.6%)를 기록할 정도로 노인 인권 문제도 심각하다. 처지를 비관한 노인들의 자살이 급증해 우리나라 노인의 자살 사망률은 국민 전체 평균의 2배 이상에 이를 정도”라며 시급히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저출산·고령화의 심각성은 오래전부터 대두됐지만 역대 정부에서 근본적인 해법을 구하는 정책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모든 영유아들에게 보육비를 지원하고 ‘누리과정’ 정책도 실시됐지만, 지난해 출생아 수는 역대 최저치(40만6300명)를 기록했다.

 

인구학자인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이미 인구의 추세선이 꺾인 상황에서 앞으로 5년은 미래에 벌어질 모든 사회문제의 근본 원인이 될 인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대선 과정에서) 후보들이 나름대로 인구 문제를 감안해 공약을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여전히 미흡해 보이는 만큼 좀 더 적극적인 대응을 해 나가는 정책들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세월호로 상징되는 국민 안전을 지키는 일 또한 새 정부의 주요 과제로 꼽힌다. ⓒ 사진=연합뉴스

 

 

“안전한 미래 설계해야”

 

세월호로 상징되는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 또한 새 정부의 주요 과제로 꼽힌다. 단순히 재난 안전 컨트롤타워를 확립하고, 시스템을 갖추는 수준이 아니다. 미래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보이지 않는 요소들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환경오염과 기후변화, 에너지 결핍 등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인류를 위협하는 요소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 대처에 있어선 주요 국가들과 차이를 보인다. 국민을 숨 막히게 하는 미세먼지에 대해선 매년 수조원씩 쏟아붓고도 근본적인 전환점을 만들어내진 못하고 있다. 오히려 ‘그린에너지’라는 이름을 붙여 화력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하고, 경유 소비를 늘리는 등 역주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 안전 등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었지만 국민 불안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녹색성장을 모토로 원자력 발전에 집중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원전이 밀집된 지역으로 만들었다. 이 같은 미래 위협 요소를 제어하고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선 정책적 전환이 시급한 실정이다.

 

국민 안전을 위해선 정부와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 회복해야 한다. 잇따른 사법 비리로 인한 국민 불신은 극에 달했다. 그간 지지부진했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검·경 수사권 조정, 사정기관 개혁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한 역대 대통령들 모두 사법 개혁을 약속했지만 공수표에 그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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