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친구 문재인, 대통령 되다
  • 김회권 기자 (khg@sisajournal.com)
  • 승인 2017.05.09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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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으로 받아들였던 정치 입문, 대선 승리로 결실 맺어

 

제19대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 시사저널 이종현


문재인 당선인이 처음 대통령에 도전했던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된 그는 ‘운명’을 말했다. 그는 자신이 정치권에 들어오게 된 걸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운명 같은 것이 나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어온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이때의 선거는 패배했다. 48%라는 적지 않은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야권단일후보로 나선 그는 패배를 인정하며 지지자들을 향해 머리숙여 사과했다. 

 

한 번의 실패가 있었지만 그는 운명을 걷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한 번 더 마주했고 좀 더 노련하게 대처했다. 탄핵, 그리고 대통령 보궐선거라는 처음 펼쳐진 격변은 문 당선인에게 유리하게 작동했다. 그리고 그렇게 2012년의 패배를 2017년의 승리로 바꿔냈다. 

 

그가 말한 운명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 만들어낸 결과다. ‘문변’으로 불리며 부산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며 인권과 노동 문제를 다투며 많은 승리를 이끌어냈고 그곳에서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젊은 날을 동지로 보냈다. 

 

2002년 먼저 대통령이 된 친구의 요청 탓에 극구 사양하던 청와대로 결국 들어갔고 그렇게 5년을 권력의 심장부에서 보내며 현실 정치의 쓴 맛을 체험했다. 하지만 매사에 진중한 분위기를 풍겨내는 그의 모습을 사람들은 기억했다. 세상을 놀라게 했던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그 누구보다 비통했을 사람이지만, 묵묵히 상주 역할을 해내는 모습도 주목받았다. 특히 이명박 전 대통령을 향해 예를 표하는 그의 인사가 그랬다. ‘문재인’하면 떠오르는 진중함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장에서 상주를 맡아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하던 문재인 당선인. ⓒ 사진=연합뉴스


 

“빈부 격차가 확연한 교내, 처음 세상의 불공평함 느꼈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의 유년기는 ‘가난’과의 싸움이었다. 부모님은 전쟁을 피해 무일푼으로 월남했다. 전쟁이 끝나지 않은 1953년 1월24일, 경남 거제에서 아버지 문용형씨와 어머니 강한옥씨 사이에서 2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함경도 흥남 출신인 아버지는 북에서 시청 농업과장을 지낸 공무원이었지만 남으로 내려온 뒤에는 가난을 해결하지 못하며 힘들어했다. 태어난 곳은 거제였지만 문 당선인이 초등학교에 갈 무렵 가족은 부산 영도로 건너왔다. 문 당선인의 정치적 고향과 처음 마주한 때였다. 

 

가난은 모질었지만, 스승이기도 했다. 월사금을 낼 수 없었던, 그리고 “집에 자전거를 살 만한 형편이 아니어서 지금도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는 어린 시절이었다. 연탄배달을 하고 성당에서 주는 식사로 끼니를 해결하기도 했다. 성당에서 나눠주는 전지분유에 고마워하던 어머니가 먼저 세례를 받았고 문 당선인도 그 영향으로 세례를 받으며 천주교 신자가 됐다.

 

PK지역 명문고인 경남중을 거쳐 1968년 경남고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하지만 자신의 가난에 좌절하며 방황했고 서울대 입시에 실패했다. 문 당선인은 고등학교 생활을 자서전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빈부 격차가 확연한 교내 분위기에서 처음으로 세상의 불공평함과 위화감을 피부로 느꼈다.”

 

인권변호사 시절 함께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당선인의 모습 ⓒ 문재인 제공


 

유치장 안에서 들어야 했던 사법시험 합격 소식

 

재수를 선택했고 종로학원 진입 시험에서 1등을 하며 학원비를 면제받았지만 서울대에 떨어졌고 1972년 경희대 법대에 문과 수석으로 입학했다. 경희대 법대 재학 시절에는 학내 유신 반대 시위에 앞장섰고 1975년 8월 강제로 징집됐고 특전사령부 예하 제1공수 특전여단 제3대대에 배치됐다. 군사정부에 의해 강제로 안게 된 특전사 경력은 역설적이게도 대선 과정에서 그의 안보관을 언급하는 공세의 방패막이가 됐다. 

 

1978년 군대를 제대한 뒤 사법시험을 준비했는데, 1차 합격 후 2차 시험을 치른 뒤 계엄령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는데, 기쁜 소식이었지만 유치장 안에서 들어야 했다. 1982년 사법연수원 12기를 차석으로 수료했지만, 그는 원하던 판사 임용을 받지 못했다. 그의 구속 전력이 발목을 잡았고 문 당선인은 아예 방향을 틀어 부산으로 내려가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기로 했다.

 

 

“그 만남이 내 평생의 운명으로 이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랬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이때 인연을 맺게 됐고 평생의 운명으로 이어질 줄은 아마 상상도 못했을 거다. 1982년 변호사를 시작하면서 노무현 당시 변호사와 함께 법률사무소를 열었다. 그가 갖고 있던 인권과 관련한 직함만 여러 개였다. ‘민주사회를 위한 부산경남변호사모임 대표’ ‘부산 NCC 불교 천주교 인권위원회 인권위원’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 ‘(사)노동자를 위한 연대 대표’ 등이 변호사 문재인이 맡고 있던 자리였다. 

 

2002년 노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가면서 맨 처음 부른 사람은 문 당선인이었다. 참여정부의 초대 민정수석을 부탁했고 그렇게 청와대에 함께 갔다. 초대 민정수석 1년은 격무의 연속이었고 과로와 스트레스 탓에 치아 10개가 빠졌고 모두 임플란트를 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민정수석에 물러났고 히말라야로 트래킹을 떠났는데 노 전 대통령의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귀국해 대리인을 맡았다. 2007년 3월, 임기가 얼마 안 남은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을 맡았고 2007년 남북정상회담 협상에 참여했다.

 

문재인 당선인은 참여정부 시절, 초대 민정수석과 마지막 비서실장을 지내며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함께 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대통령 혼자 외로울까봐...” 청와대에 들어오게 된 이유였다. 노 전 대통령은 나이 어린 문 당선인을 ‘친구’라고 불렀다. “나는 대통령감이 됩니다. 나는 문재인을 친구로 두고 있습니다. 제일 좋은 친구를 둔 사람이 제일 좋은 대통령 후보가 아니겠습니까.”

 

2010년 말, 정치권의 러브콜에도 움직이지 않으며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던 ‘이사장 문재인’을 부산에서 만나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 때 물어봤다. “주변에서 정치 참여를 권유하는 목소리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고. 그는 대답했다. “실제로 정치 참여를 권유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정치에 참여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이에 대한 입장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탄핵’ 이후, 새로운 광장의 리더십 구현해 내야

 

하지만 현실 정치에 손사래 치던 그는 어느덧 야당의 대선 후보로 정권을 탈환하기 위해 앞장 서 뛰기 시작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 당선되면서 여의도에 입성했고 그 해 민주당 대선 경선에 출마해 대선 후보로 나섰지만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후보에게 졌다. 

 

2012년에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을 인정하며 국민에게 사과의 기자회견을 해야 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절치부심하던 문 전 대표는 2015년 초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의 당 대표 경선에서 승리했다. 당 대표로 보낸 이날의 10개월은 지금 대선과도 관련이 있다. 재·보선에 패배해 위기를 맞았고, 안철수 전 대표를 비롯한 비노·비문 그룹의 집단 탈당 등으로 국민의당이 만들어졌다. 나간 이들은 본격적으로 ‘친문(親文·친문재인) 패권주의’를 주장했고 이번 대선 기간 동안에도 ‘패권’이란 단어는 문 당선인 측을 공격하는 무기였다.

 

2017년 4월3일,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한 문 당선인은 5월9일 제19대 대선에서도 사실상 승리하며 광장의 촛불이 갈망하던 새로운 리더십을 구현해 낼 인물로 이제 선택받았다. 개표결과 총 3267만2101표의 유효투표수 가운데 문재인 당시 후보가 1342만3800표를 득표해 득표율 41.08%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2위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로 785만2천849표를 받아 24.03%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3위는 득표율 21.41%​의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로 699만8천342표다. 

 

이제 항상 강조했던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첫발을 뗄 때가 왔다. 문 당선인도 당선이 사실상 확정된 9일 오후 11시 50분께 광화문 광장에서 개최한 당선 인사를 통해 “국민의 간절한 소망과 염원을 결코 잊지 않겠다. 정의가 바로 서는 나라, 원칙을 지키고 국민이 이기는 나라, 상식이 통하는 나라다운 나라 건설하겠다”며 “위대한 대한민국, 정의로운 대한민국, 당당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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