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는 ‘약속’ 문재인은 ‘졸속’, 위안부 합의 간극은 여전히 크다
  • 김회권 기자 (khg@sisajournal.com)
  • 승인 2017.05.10 16:2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보 없는 역사 문제 해법을 우려하는 일본의 시선

 

“혁신계 대통령이 당선됐다”

 

일본 방송들은 우리가 개표 방송을 중계하듯 5월9일 분주하게 움직였다. NHK 등은 제19대 대선 개표 상황을 생중계해 전했고 오후 8시 출구조사가 발표되고 개표가 진행되자 실시간으로 화면에 내보냈다. 일본이 보내는 관심의 근원은 ‘한일관계’에 대한 우려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는 2015년 위안부 합의가 깔려있다.

 

문 대통령의 당선 직후 기자들 앞에 선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한일 합의의 재협상에 관해 못을 박았다. “한일합의는 국제 사회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으며 한일 양국이 책임을 가지고 실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물론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시대를 구축해 나가겠다는 덕담도 빼놓지 않았다. 

 

2017년 5월3일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문화광장에서 마산집중유세를 마치고 소녀상에 헌화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선거 때문에 반일 감정 이용한다”는 분석도

 

대선 과정 동안 일본 내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는 ‘문재인 경계론’이 존재했다. 일본을 관통하는 보수적인 흐름을 감정적으로 찌르는 평가들이 등장했다. 문 대통령의 책을 인용하며 “정권을 잡으면 친일파를 청산하겠다고 단언했다”고 보도하고 ‘친일파’인 박근혜 정부가 맺은 합의는 절대 인정하지 않겠다는 주장을 폈다고 강조하는 기사도 적지 않았다. 한일합의의 실질적 내용에 문제를 삼고 있기 보다는 정치권이 일본을 이용하거나, 직전 정부의 합의이기 때문에 배척한다는 식의 감정적인 부분을 건드려 왔다. 

 

한일합의를 선거를 위해 이용한다는 아전인수식 해석도 일본 언론의 단골 분석이다. “한일합의를 인정하면 선거에서 이길 수 없으며 국민감정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에 위안부 문제를 되풀이해 제기한다”는 얘기가 적지 않게 나왔다. 문 대통령이 대선 기간에 창원을 방문했을 때 소녀상을 찾아 헌화하자 “한국 여론을 의식한 행동이며 국제 조약 위반이지만 한국에서는 법보다 국민감정이 우선한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런 해석들은 문 대통령이 줄곧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며 그의 대일 외교 공약이 주목받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집에서 한일관계와 관련해 ‘역사문제의 진정한 반성과 실용적 우호 협력의 동시 추진’을 내걸었다. 특히 ‘12·28 위안부 합의 재협상 등을 통해 피해자들이 인정하고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수준의 합의 도출’을 세부 목표의 처음으로 제시했는데, 결국 재협상에 무게를 둘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새롭게 등장한 문재인 대통령을 일본 내에서는 쉽지 않은 상대로 바라보는 모양새다. “아직 대일 정책에 대해 뭔가를 보여준 게 없기 때문에 평가하기 어렵다”는 신중론 속에서도 “한국 내 여론을 고려할 때 국가 간 약속을 깰 것인지 짐작하기 어렵다”는 현실 인식을 담고 있다. 아사히신문에 코멘트한 일본 정부 관계자는 “문 대통령과의 파이프 만들기가 급선무다”고 말했다. 

 

일본 내에서도 새 정부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다는 점을 주목한다. 대선에 출마했던 후보들 대부분이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는 일본 정부의 바람과 반대되는 발언들을 해왔고 공감대를 얻어왔기 때문이다. 새 정부 출범 첫 날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공식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바로 잡아 달라”는 요구를 한 점도 이를 뒷받침 한다. 

 

비단 위안부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자신들의 역사 교과서 내용에 대한 항의 정도가 강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매번 한국은 역사 교과서 문제를 두고 반복적으로 압력을 가해 왔고 이번에도 되풀이 될 것”이라고 본다. 새역모 회장을 지낸 야기 히데쓰구 레이타쿠대 교수는 “(한국의) 대통령이 정해지면 일본의 교과에 대한 개입이 더 강해질 것이다”며 “일본은 일본의 입장에서 처리하면 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 직후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한일 합의의 재협상에 관해 "합의대로 실시해야 한다"며 못을 박았다.

 

약속과 졸속의 판단을 요구받는 한일합의

 

일본은 과거처럼 ‘한일합의=국제 사회 약속’이라는 등식으로 문 대통령을 압박할 계획을 내비치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2015년 한일합의를 체결한 뒤 “여기까지 합의한 것을 어기면 한국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끝나 버린다. 지금까지(고노 담화와 아시아 여성기금)와 달리 국제 사회가 주목하고 있다”고 강조했고 그 기조는 변하지 않았다. 합의는 무거운 약속이고 합의에 따라 위안부를 지원하는 재단에 10억엔 출자했으니 한국 측의 약속 이행을 계속 요구하겠다는 얘기다.

 

반면 새로운 리더십이 한국에 출현했고 그 리더가 갖고 있는 방향을 동시에 궁금해 한다. 마치 아베 총리가 출현했을 때 한국의 심정과 비슷한 느낌이다. 문 대통령이 총리 후보자로 이낙연 전남도지사를 지명하자 일본 언론은 그를 두고 ‘지일파’라는 수식어를 단 것도 문재인 정부의 방향을 읽기 위한 노력이다. 문 대통령 측은 “전남지사로서 2016년 고용노동부로부터 '일자리종합대상'을 수상했고 문재인 정부가 최역점 국정과제로 설정한 일자리창출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며 그의 서민친화적 행정을 총리 지명의 이유로 들었지만 막상 일본 내에서는 “동아일보의 도쿄 특파원을 지냈고 한일의원 연맹 간사를 지낸 지일파로 위안부 문제 등 대일 정책에 적극적으로 관여할 것으로 보인다”며 다른 전망을 언급했다. 

 

아베 총리는 5월9일 밤 “북한 문제에 대응을 비롯해 한일 양국은 공통의 과제에 직면하고 있으며, 양국이 협력하면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더욱 공헌할 수 있다”고 강조했지만 관계가 개선될 지는 불투명하다. 합의를 ‘약속’이라고 강조하는 아베 총리와 합의를 ‘졸속’이라고 강조하는 문재인 대통령 사이의 간극은 매우 크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