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안보 분야 최우선 과제는 한반도 평화 정착
  • 박혁진 기자 (phj@sisajournal.com)
  • 승인 2017.05.15 10:34
  • 호수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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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과 ‘협치’ 없으면 국론통합 동력 상실

 

‘준비된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 되려면

문재인 대통령이 성공하기 위한 분야별 당면 과제 

 

1945년 일제강점기가 끝난 이후의 대한민국 현대사는 반목과 분열로 얼룩져왔다. 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가 대립하게 된 한반도의 이념·지리적 상황은 이념과 지역, 세대 간 갈등의 주요 원인이 됐다. 이런 갈등을 숙주 삼아 기생하는 정치인들이 늘어났다. 한국 사회는 둘로 셋으로 쪼개졌다.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한 이후에는 빈부 격차까지 더해지면서 갈등을 부추기는 요인이 늘어만 갔다.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 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 70년 동안 11명이 대통령직에 올랐다. 모두 “국민통합”을 외쳤다. 그럼에도 누구도 실패한 대통령이란 ‘오명’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대통령 개인의 역량 탓도 있을 수 있지만, 분열된 사회 속에서 대통령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성공적으로 ‘직(職)’을 수행하기는 쉽지 않았다. 급기야는 현직 대통령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되고 구속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혹자는 현재의 상황에서 어두운 대한민국의 현실을 봤고, 혹자는 살아 있는 민주주의의 힘을 봤다고 말한다. 이런 갈림길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들이 압도적인 차이로 문재인 대통령을 선택한 것은 그가 다른 어떤 후보보다도 ‘준비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유권자들의 기대가 전혀 허황된 것은 아닐지 모른다. 문 대통령은 인권변호사를 하면서 우리 사회 곳곳의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했다. 이를 통해 서민들의 애환을 비교적 잘 이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에서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참여정부는 ‘공’만큼 ‘과’도 많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가 남겨놓은 부채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참여정부의 ‘과’를 반면교사 삼는 그는 어느 후보보다 준비되었다는 평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이는 유권자들이 상상하는 가장 좋은 그림일 뿐 현실은 만만하지 않다. 당장 그의 앞에 놓인 과제들이 적지 않다.

 

일단 청년실업·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민생고 해결이 시급하다. 여기에 정치·사법·경제 각 분야의 적폐를 이번에도 척결하지 못한다면 또다시 지난 과거를 되풀이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여기에 핵과 개성공단 폐쇄 등으로 경직돼 있는 남북문제도 풀어야 한다. 자국 우선주의의 목소리가 강해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 일본 등 동북아 주요 국가들과의 관계도 재설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모든 사안의 해법을 놓고 갈라져 있는 다양한 의견을 어떻게 통합할 수 있을지는 문 대통령에게 주어진 숙제다. 과연 문 대통령은 전임자들과는 달리 성공한 대통령이란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기로에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대통령으로 첫발을 내디딘 문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는 취임 직후다. 그가 과연 어떤 사람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어떤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두느냐에 따라 많은 국민이 희망을 가질 수도 불안감을 느낄 수도 있다. 시사저널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문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치길 바라며, 대통령이 특히 관심을 갖고 해결해야 할 과제를 분야별로 짚어봤다. 박혁진 기자 phj@sisajournal.com​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바른정당 유승민, 정의당 심상정,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왼쪽부터)가 5월2일 서울 상암동 MBC 스튜디오에서 선거관리위원회 주최로 열린 마지막 TV토론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19대 대선 기간 각 당의 대선후보들이 공통적으로 내세웠던 공약 가운데 두 가지를 꼽아보면 국론통합과 한반도 평화 정착이었다. 국론통합은 대연정이나 개헌과 같은 정치구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한반도 평화는 동북아 주변 강대국들과의 외교·안보 문제와 맞닿아 있다. 각 후보들이 두 가지 문제 해결을 위해 내놓은 해법에는 약간씩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당면해 있는 최우선 과제라는 문제의식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5월10일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 역시 두 가지 숙제를 어떻게 풀어낼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일단 국민여론은 문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국론통합’을 꼽고 있다. 실제로 방송 3사가 대선 당일 실시한 심층 출구조사에서 ‘차기 대통령의 국정 방향이 어디에 더 중점을 둬야 하느냐’는 질문에 전체의 51.4%가 ‘우리 사회의 갈등 해소 등 국민통합’이라고 답했다. 문 대통령 역시 이런 국민여론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5월9일 오후 11시50분쯤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당선 기념행사에 나와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분들도 섬기겠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일단 문 대통령은 급격한 정치제도 개선에 앞서 대탕평 인사를 통해 국론통합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이낙연 전남지사를 국무총리에 내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부산·경남(PK) 출신 대통령과 호남 출신 국무총리라는 그림을 통해 양 지역 모두의 민심을 얻으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특정 지역 인사를 중용하는 기계적 통합도 중요하지만 이념이나 세대, 계층 간 통합에 문 대통령이 힘써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선 야당과의 협치가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협치를 하지 않는다면 새 정부 출범 초기 민심 수습, 국론통합의 동력을 잃을 수 있다. 특히 인수위 없이 바로 새 정부가 출범한 만큼 내각을 새로 구성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 과정에서 ‘협치’에 실패할 경우 내각 구성이 어려워지게 된다. 김윤태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여소야대가 국정운영의 최대 장애물이 될 것”이라며 “여기에다 선거에서 나타난 세대 간, 지역 간, 계층 간 갈등을 해결하고 자기를 지지하는 사람만의 대통령이 아니라 반대하거나 다른 당을 지지하는 유권자까지 포용할 수 있는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美·中·日 주변 3강과 정상회담 시급

 

다만 국론통합만큼이나 시대적 과제로 꼽히는 ‘적폐청산’을 어떻게 함께 해 나갈 수 있을지는 현 정부 관계자들의 많은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여전히 많은 국민 사이에선 ‘적폐’를 잘못된 관행 이외에도 특정 정치세력과 연관 지어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정치보복으로 비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박근용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국론이 갈기갈기 찢어져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대다수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적폐청산부터 단계적으로 해 나가야 하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정치 평론가인 소종섭 시사저널 편집위원 역시 “정치보복이나 전(前)정권 사정 차원이 아닌 사실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이라며 “단순히 과거 정권에서 진행했던 사업이라는 게 문제가 아니라 실상을 밝혀줄 증거가 되는 사실이 있는가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인해 우리나라의 정상외교가 완전히 단절됐고, 이로 인해 문재인 정부는 어느 때보다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외교 무대에 나서게 됐다.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최우선 과제는 역시 한반도 평화 정착이다. 북핵문제 해결도 결국에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선결조건이다. 문 대통령은 5월10일 취임사를 통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필요하면 곧바로 워싱턴으로 날아가고, 베이징과 도쿄에도 가고,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가겠다”고 밝혀 주변국과 북한에 대한 강력한 설득 의지를 나타냈다. 박근혜 정권이 ‘국제공조’에만 의존하면서 북한 설득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입장을 보였던 것과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틀 만인 5월1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모두 전화통화를 하고 4강 정상외교 복원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미국의 외교안보 전문매체 더 디플로매트가 5월10일(현지 시각) ‘그렇지 않다. 한국의 새 대통령은 반미주의자가 아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 시대의 대북 정책과 한·미 관계를 중점적으로 짚었다. © 더 디플로매트 웹 사이트


무엇보다 최대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가 가장 큰 고민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외교 노선을 계승해 북한에 대해 유화적 정책을 쓸 가능성이 크지만, 미국 트럼프 정부 분위기는 다르다. 트럼프 정부는 대북 문제에 있어서 강경노선을 걷고 있다. 실제로 미국 정부 고위 인사들 사이에서는 대북 선제타격론이 공공연하게 거론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이나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등에 있어서도 한·미 정부는 불협화음을 낼 가능성이 크다. 뿐만 아니라 중국과는 사드 배치 문제, 일본과는 한·일 위안부 합의 재협상 등으로 인해 관계가 소원한 상태다. 이처럼 미·중·일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과의 관계를 재정립해야만 궁극적 목표인 북핵 문제에 대한 공조도 어느 정도 확고해질 수 있다. 문 대통령은 빠른 시일 내에 4강에 특사도 파견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세종연구소 한 관계자는 “일부에서 문 대통령의 남북 대화 의지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강화 움직임과 배치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문 대통령은 한·미, 한·중, 한·일 정상회담을 조기에 개최해 주변국 지도자들에게 새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를 설명하면서 그들의 지지를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참여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또한 “지난 9년간의 보수 정권 동안 북한과의 대화 자체를 불온시하는 태도가 가장 문제였다”며 “강한 제재만 계속 강조하면서 강도만 높여간다면 결국 남는 건 전쟁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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