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개혁 ‘폭풍 전야’
  • 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17.05.15 13:52
  • 호수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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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신설, 검·경 수사권 조정, 검찰 인사권 독립 조국 “내년 6월 지방선거 전까지 검찰 개혁 마무리”

 

“권력기관은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다. 그 어떤 기관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견제 장치를 만들겠다.” 

 

검찰 개혁에 본격적인 시동이 걸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10일 취임사에서 검찰을 비롯한 권력기관을 전면적으로 개혁하고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다는 뜻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비(非)검찰 출신의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청와대 민정수석 발탁은 검찰 개혁의 신호탄이 됐다. 조 수석은 “선거가 시작되면 개혁에 아무도 관심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내년 6월 지방선거 전에 다 해야 한다”며 검찰 개혁의 시한까지 제시했다. 조 수석이 임명된 당일, 김수남 검찰총장은 사의를 표명했다. 법무부 장관 시절 통합진보당 해산을 주도했던 검찰 출신 황교안 국무총리의 사표도 수리됐다.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11월부터 이미 공석인 상태다. 검찰은 ‘개혁 태풍’을 맨몸으로 맞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조국 신임 민정수석 © 연합뉴스

 

정치검찰 막기 위한 공수처 신설

 

“한국 검찰은 아시다시피 기소권과 수사권을 독점하고 그 외에도 영장청구권을 독점하고 있다. 검찰이 막강한 권력을 제대로 엄정하게 사용했는지 국민적 의문이 있다.”

조 수석은 검찰 개혁의 기본 방향이 권력의 분산과 견제에 맞춰질 것임을 시사했다. 조 수석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서도 검찰이 막강한 권력을 사용했더라면 게이트 초반에 미연에 예방됐을 것”이라며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정치검찰’의 행태를 강력히 비판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은 이러한 생각에서 비롯됐다.

 

공수처는 고위 공직자에 대한 비리를 감시하기 위해 독립적인 수사와 기소 권한을 가지는 조직을 말한다. 검찰의 권력에 대한 해바라기 행태를 막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공수처 설치 법안에 따르면, 공수처는 수사권·기소권·공소유지권을 모두 가지며, 설립 취지에 맞게 독립기관으로 운영된다. 공수처장은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인사추천위원회의 추천을 거쳐야 하고 국회 인사청문회도 통과해야 한다. 조 수석은 공수처장을 여야 합의로 국회에서 임명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수사 대상은 고위공직자와 그 가족이다. 국회의원은 물론 검사·판사 등이 모두 포함된다. 국민의당은 공수처 태스크포스(TF)팀을 통해 대통령비서실·대통령경호실·국가안보실 3급 이상 공무원과 배우자 및 4촌 이내 친족까지 수사할 것을 주장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권성동 위원장이 2월1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 등 검찰 개혁 방안에 대한 공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개헌 과정에서 영장청구권 경찰에 부여”

 

문 대통령에게 공수처 신설은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부터 이어져온 숙원(宿願) 사업이다. 공수처는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6년 처음 논의됐고,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됐지만 검찰의 반발로 무산됐다. 바통을 이어받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말 정부 입법으로 공수처법을 발의했지만, 당시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이 위헌 소지가 있다며 검찰의 입장을 대변하고 나서면서 결국 백지화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을 맡았던 문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에서 “민정수석을 두 번 하면서 끝내 못한 일, 그래서 아쉬움으로 남는 게 몇 가지 있다”며 “그중 하나가 공수처 설치 불발이다”고 밝힌 바 있다.

 

공수처는 국회 소관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에서 180명 이상의 의원이 동의해야 통과된다. 국회의 반발로 번번이 무산됐지만 이번에는 실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제외한 4당 후보들이 모두 공수처에 대해서 찬성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수처가 검찰 개혁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의 한 여당 의원은 “검찰 개혁의 핵심은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는 것이다. 공수처 신설로 검찰에 집중돼 있는 기소권과 수사권이 분산될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며 “공수처가 ‘옥상옥(屋上屋)이 될 수 있다’는 검찰의 주장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공수처가 검찰 출신 위주로 구성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됐을 때 자기 친정인 검찰에 대해서 단호하게 수사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한 후 “결국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기소권, 영장청구권, 수사지휘권 등에 대한 명확한 재조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는 검찰 개혁의 핵심으로 지목돼 온 사안이다. 권력의 견제와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검찰의 권한을 줄이고 경찰의 권한을 좀 더 넓게 보장해 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문 대통령은 “일반적 수사권은 경찰에 넘기고 검찰은 기소권과 기소·공소 유지를 위한 보충적 수사권만 보유하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경찰이 수사권을 가지게 될 경우 가장 핵심이 되는 사안은 영장청구권이다. 수사를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서는 구속영장, 압수수색영장 등을 청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행 헌법에는 영장청구권의 주체로 ‘검사’만 명시돼 있다. 즉, 의미 있는 수사권 조정을 위해서는 개헌이 필요한 것이다. 여당 핵심 관계자는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결국 영장청구권을 경찰이 가질 수 있느냐는 문제로 귀결된다. 경찰이 영장청구권을 가지게 되면 검찰의 기소 독점권이나 수사지휘권 등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의 내각 조각이 끝나면 개헌 정국으로 빠르게 이동할 것이다”고 내다봤다. 이어 그는 “개헌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수사권 조정이 이뤄지는 것이 좋다”며 “조 수석이 내년 6월 지방선거 전까지 검찰 개혁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인사권 독립을 검찰 개혁의 핵심과제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외부인이 참여하는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와 검찰인사위원회를 구성해 정치권력의 입김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조 수석은 “민정수석은 검찰의 수사를 지휘해서는 안 된다”며 “인사권은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에게 있고 민정수석은 검증만 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2003년 2월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첫 수석회의에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정치권력, 검찰 활용하려는 욕망 절제해야”

 

검찰 개혁은 역대 정권 출범 초기마다 거론돼 온 ‘단골손님’이다. 그러나 새 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누구도 검찰 개혁의 칼을 과감하게 꺼내지 못했다. 권력을 잡게 되면 누구나 ‘잘 드는 칼’에 대한 욕망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에서 “검찰 개혁은 제도의 문제라기보다 정치권력이 검찰을 정권의 목적에 활용하려는 욕망을 스스로 절제하고, 검찰 스스로 정권의 눈치 보기에서 벗어나려는 ‘문화의 문제’로 봤다”고 설명했다.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에 칼을 대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욕망을 절제하는 집권자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검찰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컸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결국 검찰 개혁에는 실패했다. 문 대통령이 여전히 난제로 남은 검찰 개혁을 완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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