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비즈니스맨, 비즈니스하듯 외교하라”
  • 김경민 기자 (kkim@sisajournal.com)
  • 승인 2017.05.16 09:42
  • 호수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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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계 최초 美 캘리포니아주 조세형평국 부위원장 역임한 미셸 박 스틸 오렌지카운티 슈퍼바이저

 

“트럼프 대통령은 비즈니스맨이다. ‘이익 추구’가 최우선인 사람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인 미국을 대할 때는 이런 마음가짐으로 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미셸 박 스틸(Michelle Park Steel)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슈퍼바이저가 기자를 만나 한 말이다. 남편 숀 스틸(Shawn Steel) 변호사와 마찬가지로 공화당원인 그가 미국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가진 생각은 명쾌했다.

 

‘비즈니스 마인드로 대하라’는 것. 그는 “기성 정치인들은 말 속에 의도를 숨기고 에둘러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는 오히려 읽기 쉽다”며 “다만 기존의 정치·외교 패러다임으로 그를 상대하려 들면 결코 이해할 수도, 성공적으로 상대할 수도 없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기존 방식으로 트럼프 상대하면 백전백패”

 

그의 정계 이력은 올해로 12년이다. 그는 2006년 선출직인 캘리포니아주 조세형평국 위원에 당선되면서 본격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활동을 해 온 열혈 공화당원인 남편 덕분에 결혼한 이후에도 20여 년간 정치권에 머물러왔다. 남편 스틸 변호사는 현재 전국 공화당 캘리포니아주 대표로 활동 중이다.

 

미셸 박 스틸은 미국 내 한인으로서는 최고위 선출직에 오른 이력을 보유하고 있다. 2006년부터 8년간 캘리포니아주 조세형평국 위원을 역임했다. 그는 현재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슈퍼바이저다. 총 5명으로 구성된 슈퍼바이저는 한국으로 치면 도지사와 비슷한 개념이다. 오렌지카운티 내 34개 시를 통괄하고 각 시나 연방정부 간의 행정을 조율하는 자리다. 캘리포니아주는 인구 3700만 명으로, 경제 규모가 웬만한 국가보다 큰 수준이다. 2년6개월 만에 한국을 찾았다는 그를 5월4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만났다.

 

미셸 박 스틸 오렌지카운티 슈퍼바이저 © 시사저널 이종현


조세형평국 위원과 오렌지카운티 슈퍼바이저, 두 자리 모두 선출직으로 치열한 선거를 통해 오를 수 있는 자리로 알고 있다.

 

처음 선거를 치른 것이 조세형평국 위원 당선을 위해 뛸 때였다. 선거는 2006년에 있었는데, 당시 제 상대는 연방 상·하원직을 모두 거친 ‘정치 고수’였다. 저는 정치 신인이었다. 1993년 LA 소방국을 시작으로 LA 공항국, 아동가족위원회 등에서 커미셔너(위원)로 활동하긴 했지만 조세에 대해선 전문성이 아무래도 부족했다.

 

‘성실함’과 한국인 특유의 ‘깡’으로 승부를 걸었다. 치열하게 공부하고 유세 활동을 했다. 선거 3년 전부터 발로 뛰며 투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관계자를 모조리 만났다. 하루에 3시간씩만 잤다. 제가 원래 뭐 하나에 꽂히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다. 결국 선거에서 이겨 담당 카운티 내 850만 납세자들을 대변하고 1년 조세가 540억 달러에 달하는 세금행정을 총괄했다.

 

슈퍼바이저 역시 900만 명을 대표해 활동하는 자리다. 2014년 처음 당선됐다. 올해 1월부터는 슈퍼바이저 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제가 제 카운티 안에선 되게 막강하다. 밖으로 나와선 아무것도 아니지만(웃음).

 

 

원래 정계 입문할 생각은 없었다고 알고 있다.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나.

 

일본여자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제 꿈은 ‘현모양처’였다. 1975년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도 여전히 평범한 가정주부로 사는 게 꿈이었다. 그러다 1992년 LA폭동이 일어났다. 그 당시 한인 1세들이 꼼짝없이 언론에서 매도되는 것을 보고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다. 그들은 삶의 터전에서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고 나선 것일 뿐인데, 마치 그게 무슨 폭도라도 되는 듯 비치는 게 안타까웠다. 그때 한인사회의 취약한 고리를 본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저희 어머니가 ‘세금폭탄’을 맞았다. 미국에서 유학하는 딸을 위해 옷 가게, 샌드위치 가게를 내며 성실하게 일해 온 당신이었다. 세금 한 푼 속이지 않고 냈는데, 이중과세가 되고 거기에 이자까지 물어야 했다. 미국 사정에 어둡고 영어를 잘 못했기 때문에 내라는 대로 낼 수밖에 없었다. 그때 ‘국세청은 미국에서도 이렇게 막강한 곳이구나’ ‘그런데 왜 성실한 납세자까지 못 살게 구나’ ‘이렇게 억울한 이들을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5월10일 밤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동 자택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취임 이후 처음으로 전화통화를 했다. ⓒ 사진=연합뉴스

 

LA폭동 때 한인사회 취약점 보고 정치 결심

 

처음 조세형평국 위원 선거에 나서겠다고 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정치를 한다는 건 발가벗고 길가에 서 있는 거야.” 모든 것이 까발려지고 나의 허물을 찾기 위해 사방에서 달려든다는 것이다. 막상 정치활동을 시작하자 그는 가장 큰 지지자이자 응원군이 돼 줬다.

 

조세형평국 선거운동 당시 계속되는 강행군에 제가 정신적으로 무너져 내린 적이 한 번 있었다. 조세 전문가들과 대담을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다. 엘리베이터에는 저와 보좌진 두 명뿐이었다. 순간 ‘내가 왜 이러고 있지’란 생각에 눈물을 왈칵 쏟았다. 당황한 보좌진들이 제 남편에게 전화를 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물었다. 그때 남편 대답이 이랬다. “그냥 혼자 있게 놔두세요. 한 시간 정도 지나면 미셸은 스스로 회복할 것이고 더욱 강해질 거니까.”

 

 

잠깐잠깐 나오는 말에서 남편분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느껴진다. 어떻게 만났나?

 

남편과는 테니스를 치다가 만났다. 당시 남편은 막 변호사가 된 직후였다. 남편 말로는 제 다리에 반했다고 하더라(웃음). 아무튼 그렇게 만나 3년 정도 연애를 했다. 결혼을 하기까진 어려움이 좀 있었다. 무엇보다 저희 어머니 반대가 심했다. 제가 세 딸 중 장녀다 보니 장녀는 한국인이랑 결혼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으셨던 듯하다. 결국 저희 외할머니, 당신의 어머니가 지금의 남편 편을 들어줘서 결혼할 수 있었다.

 

미셸 박 스틸은 미국 내 한인으로서는 최고위 선출직에 오른 이력의 소유자다. © 시사저널 이종현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는 12년 지기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라고 들었다. 어떤 인연인가.

 

마이크 펜스와는 2005년 처음 인연을 맺었다. 당시 연방 하원의원이었던 펜스는 제가 조세형평국 위원 선거를 치를 당시 첫 정치자금 펀드레이징(fundraising)을 해 줬다. 그때 저희 집에서 홈파티를 했었다. 미국 가정에선 대부분 집 안에서 신발을 신고 다니지 않나. 우리 집에선 한국식으로 신발을 벗고 들어오게 했었다. 그런데 마이크 펜스가 당시 정장 아래에 흰 발목양말을 신고 온 거다. 그게 본인은 되게 부끄러웠나보다. 신발을 벗게 될 줄 몰랐다며 어쩔 줄 몰라 하더라. 그리고 최근 만난 자리에서 그가 여전히 “그때 내 흰 양말 기억하냐”며 웃기도 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미국의 공화당 소속 정치인으로서 가치관의 충돌로 어려움을 느낄 때도 있을 것 같다.

 

늘 부딪힌다. 매우 어려운 문제다. 이런 문제일수록 솔직하게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는 선거운동을 할 때도, 의정활동을 할 때도 내가 한국계 미국인임을 먼저 드러냈다. 기본적으로 저는 미국 공화당 소속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지만 또한 한국인이라는 것을 결코 잊지 않는다. 한국, 나아가 아시아의 입장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하는 게 내 역할이다.

 

 

한반도 평화는 아직 요원해 보인다. 최근까지도 북한의 도발이 끊이지 않았다.

 

사실 미국에서는 이번에 제가 한국 간다고 하니까 다들 가지 말라고 했다. 전쟁이 날 수 있으니 위험하다는 거였다. 그런데 정작 한국인들은 전쟁 위협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한국인들이 무감각한 것 같다. 지금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미국 대통령도 예측 불가능한 인물이긴 마찬가지지만.

 

 

새로운 한국 대통령이 선출됐다. 앞으로 한·미 양국은 어떻게 숙제를 풀어가야 할까(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인 5월11일 전화 인터뷰를 통해 추가로 진행했다).

 

지난번 한국 방문 때 사람들이 ‘극’에 달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감정적으로뿐만 아니라 생활환경 자체도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산더미 같은 숙제를 안고 임기를 시작하는 셈이다. 매우 어려운 일을 해 나가야 하는 입장인 건 분명하다.

 

사실 선거 과정에서 보여준 문재인 당시 후보의 안보관에 대해 조금 걱정을 했다. 하지만 대통령 당선 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마음이 놓였다. 진보 정권 또한 한·미 동맹관계를 중요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안심이 됐다. 양국 정상이 약 30분간 통화를 했다고 들었는데, 꽉 막혔던 한·미 관계에도 물꼬가 트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거듭 말하지만 트럼프는 기본적으로 비즈니스맨이다. 그가 대통령이 됐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비해 태도가 많이 변한 것은 사실이다. 스킨십을 극도로 꺼려 해 사람들과 악수조차 안 하던 사람이었다. 이젠 포옹도 서슴없이 한다. 하지만 그가 선거운동에서 말했던 내용과 입장은 변함이 없다. 그가 후보 시절 내세웠던 약속들을 하나씩 이행해 가고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새로 취임한 문 대통령께서 외교문제에 있어 국익을 최우선으로 놓고 잘 해결해 나가리라 본다.

 

문 대통령 역시 비즈니스 마인드로 그를 대해야 한다. 한·미 양국에 걸린 모든 이슈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식 정치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사람에게 나는 늘 이렇게 말한다. 비즈니스엔 언제나 ‘윈윈’하는 법이 있다고. 한·미 관계도 그 연장선상에서 풀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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