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인사는 만사
  • 권상집 동국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5.18 09: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향후 5년의 성공 위해 신중한 인재 등용만큼 중요한 건 없어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당시 언제나 준비된 후보라고 국민에게 강조했다. 참여정부 시절의 청와대 국정 경험, 그리고 풍부한 캠프 및 참모진을 통해 언제든지 ‘섀도 캐비닛’(예비 내각)을 구성할 수 있다는 점을 어필했고 결국 가장 많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는데 성공했다. 당선된 후 곧바로 총리 내정자와 대통령 비서실장을 발표하면서 문 대통령과 미래 5년을 함께 이끌어갈 참모진이 빠른 속도로 구성될 것이라고 믿은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그 이후 인선 속도가 조금 더디기 시작했다. 인선 속도가 느려지자 일제히 언론들과 야당은 또 다시 조급함을 드러내며 문재인 정부의 인사 등용에 대해 저마다 훈수를 두고 있다.

 

필자가 기업 인사팀에서 근무하던 시절, 가장 중요한 화두는 연말 임원 인사였다. 성과와 역량, 그리고 훌륭한 인품을 입증할 수 있는 인물을 찾기 위해 인사팀은 며칠을 고민한다. 대기업이 일명 컨트롤타워인 핵심부서(회장실·​구조본·​전략기획실 등)를 운영하던 시절, 각 계열사의 인사팀장들은 자사의 우수 인재를 한 명이라도 더 임원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이 과정에서 읍소를 하는 이도 있고 절박함을 피력하는 이도 있다. 반대로 자신이 얼마나 고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지 자신감을 어필하는 임원 후보도 있다. 이런 모든 스크리닝 과정을 거치는 동안 시간은 지연되고 주변 사람들은 “임원 한 명 뽑는데 뭐가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느냐”는 핀잔을 준다. 그러나 필자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사람을 한 명 뽑는 것만큼 신중하고 어려운 일도 없다.

 

기업에서 임원 한 명 선발하는 데에도 수십 개의 평가 요소를 거치고 자격과 역량이 되는지 진지하게 검토하는 기간만 수개월이 걸린다. 그러니 대한민국의 향후 5년을 이끌어갈 청와대 참모진과 내각을 구성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는 눈으로 보지 않아도 선하다. 특히 아슬아슬하게 대선에서 승리한 후보보다 압승을 거둔 후보에게는 더 많은 눈과 귀가 쏠린다. 국민의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 크기 때문이다. 10년 전 531만표 차이로 거의 전 지역에서 압승을 거둔 이명박 전 대통령은 초기 내각 구성에서 승리의 자만심에 빠져 인사 검증에 실패했고, 그 결과 5년 내내 국정 수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557만표 차이로 역대 대선 중 최다 득표 차이로 압승을 거둔 문 대통령이 이러한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10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낙연 국무총리와 서훈 국정원장, 임종석 비서실장 후보자를 발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2007년 압승했던 이 대통령은 자신감을 보이며 직접 언론을 통해 초기 청와대 참모진을 발표하는 위풍당당한 기세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불법 농지를 가진 후보가 땅을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희대의 망언을 쏟아냈고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강부자’(강남·​부동산·​부자)라는 말로 초기 내각을 언론이 비판하자 취임 한 달 만에 이 대통령의 지지도는 반 토막이 났다. 5년 전에 ‘대탕평’이라는 인사 키워드를 전면에 내건 박근혜 대통령 역시 국무총리 인선 실패와 함께 가장 심혈을 기울인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의 검증 실패가 드러나면서 ‘수첩인사’, ‘성시경’(성균관대·고시·경기고) 내각이라는 비아냥을 국민들로부터 들어야 했다. 수많은 정치인들이 선거 때 “대한민국의 훌륭한 인재를 모시겠다”고 강조하지만 지역 안배, 성과 창출 능력, 훌륭한 인품을 갖춘 리더십을 보유한 이를 찾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문 대통령은 초기 인사의 키워드로 ‘통합’과 ‘개혁’에 방점을 찍었다. ‘여소야대’ 상황 속에서 자칫하면 야당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에 신중에 신중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야당 원내대표는 최근 ‘민주당 내 인사들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각개 전투를 벌이면 문재인 정부 역시 과거 정부의 인사 참사를 반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속도감 있게 정책적 방향을 국민에게 제시하면서도 청문회 검증을 통과해야 할 내각 구성을 천천히 미루는 이유는 국민의 눈높이와 기대, 야당의 시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특히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 전입, 논문 표절 등 5대 비리 관련자를 원칙적으로 배제한다고 했기에 ‘천하의 인재’를 선발하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이쯤에서 걱정은 접어두고 올바른 인사를 위해 반드시 유념해야 할 사항을 강조하고자 한다. 첫째, 대통령은 선거에서 자신을 도왔다고 해서 역량이 부족한 이에게 국가를 이끄는 자리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 수많은 대통령이 인사에서 실패를 거듭한 이유는 선거 때 자신을 도운 인물들에 대한 논공행상(論功行賞) 정도로 인사를 치부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전체 인재 풀(Pool)에서 각 분야 최고의 인재를 검증해 선발하지 않고 자신과 가까운 인물, 자신이 잘 아는 인물로 자리를 채운 대통령의 인사는 언제나 실패로 끝났다. 그렇다 보니 권력자와 지근거리에 있을수록 요직에 올라간다는 말들이 나돌았고 ‘문고리’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천하의 인재를 확보하려면 반드시 대한민국 전체 구성원을 토대로 역량과 리더십을 검증해서 선발해야 한다.

 

둘째,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참모진은 인사를 이유로 대통령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 이미 민주당 내 일부 인사는 확인되지 않은 인사를 언론에 흘리고 있고 참모진 역시 청와대의 전화만을 기다리는 인물이 적지 않다. 단적인 예로, 역대 대선에서 대통령 당선을 도운 참모진이 ‘백의종군’을 표명한 경우는 거의 없다. 지난 이명박 정부 때 정두언 전 의원 세력과 이상득 전 의원에 줄을 선 세력들이 청와대 인사를 두고 대립했던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실제로 청와대 임용 후 자신이 원하는 자리가 아니라고 해서 부여된 보직을 박차고 기업으로 옮긴 인물도 있었다. 대통령 당선을 통해 자리를 부여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여당의 참모들 자체가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막는 걸림돌이다. 자리는 탐한다고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셋째, 이른바 폴리페서들 역시 직업의 소명의식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를 보다 신경 쓰기 바란다. 필자에게 최근 가장 많은 인터뷰 제의가 온 주제는 ‘폴리페서 논란’이었다. 연구 실적이 훌륭하고 평소에 학문적 성과가 뛰어난 학자가 현실에 참여하는 모습은 건설적인 ‘앙가주망’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5년마다 자신의 소신과 철학도 없이 당선될 만한 대선 후보만 따라다니며 여의도 근처에서 대통령 또는 청와대의 연락을 기다리는 전형적인 폴리페서들 역시 적지 않다. 또 다른 화려한 이력과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발품을 파는 폴리페서들이 가장 임용되고 싶어 하는 대학이 ‘청와대’라는 웃지 못 할 얘기가 5년마다 학계에 떠도는 건 우연이 아니다. 진정한 학자라면 대통령 당선 후 백의종군하며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교수의 본분이다.

 

마지막으로 국민이 기대하는 야당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싶다. 5년마다 대통령은 연정, 대탕평, 통합 등을 강조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메아리에 그치고 말았다. 그 이유는 반대를 위한 반대와 투쟁만 벌이는 야당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날선 모습의 야당이 아닌 새 정부와 협치를 하되 올바른 방향으로 국정이 흘러가지 않을 때 날카로운 조언을 하는 야당이 등장하는 모습을 국민은 보고 싶어 한다. 새 정부의 발목을 잡아야 내년 지방선거에서 더 많은 표를 가져갈 수 있다는 치졸한 생각을 버려야 더 많은 기대와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기업에게 동반성장과 상생협력을 강조하는 정치인들이 정작 국회에서 협치를 하지 않는 모습은 심각한 아이러니다. 솔선수범이 정치인의 기본 덕목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새 정부에 기대를 걸고 있는 국민이 적지 않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문 대통령의 지난 슬로건이 가슴에 와 닿으려면 인재 등용이 정말 신중하게 실현돼야 한다. 인사를 정국 돌파 또는 민심 전환의 카드로 썼던 대통령은 하나 같이 인사 검증 및 시스템 인사에 실패한 인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정국 운영의 카드로 인사를 활용하는 경우는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문 대통령이 정말 ‘사람이 먼저다’를 실현할 수 있는 인물인지 지금 모든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감동 있는 인사라는 거창한 수식어보다 국민 눈높이와 상식에 부합되는 인사를 보고 싶다. 그것만으로 국민은 충분히 만족하고 지지를 보낸다. 인사가 만사(萬事)인 이유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