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서거 8주기와 검사
  • 김경민 기자 (kkim@sisajournal.com)
  • 승인 2017.05.22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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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실 법무장관 임명과 윤석열 서울지검장 임명…서로 닮은 파격 인사 행보

 

“이 쯤 가면 막 하자는 거죠?”

-2003년 ‘검사들과의 대화’ 가운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

 

2009년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8년이 됐다. 그리고 이제 막 취임 10일을 넘긴 문재인 대통령. 노 전 대통령의 동지이자 정치적 유산의 적장자인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검찰 개혁’을 목전에 두고 있다. 문 대통령이 취임 직후 가장 먼저 꺼내든 개혁의 칼날은 검찰을 향하고 있다. 

 

검찰에 대한 문 대통령의 개혁 의지는 무엇보다 인사를 통해 드러났다. 민정수석의 자리에 비(非)검찰출신인 조국 서울대 교수를 민정수석으로 기용하고, 서울중앙지검장에 윤석열(사법연수원 23기) 대전고검장을, 법무부 감찰국장에 박균택(21기) 대검찰청 형사부장을 전격 임명했다. 무엇보다 검찰 내 ‘빅2’로 불리는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국장 자리에 기수 문화를 파괴하면서까지 개혁적 인사를 한 것을 두고 일각에선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런 그의 검찰 인사를 보며 어떤 이들은 14년 전, 노 대통령이 당시 현직 검사들과 함께 했던 ‘검사들과의 대화’를 떠올렸을지 모른다. 노 전 대통령의 ‘실패한 검찰 개혁’의 상징이 돼버린 바로 그 장면 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 초기였던 2003년 3월9일 과천시 정부종합청사에서 전국평검사들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실패한 노 전 대통령의 검찰개혁 

 

당시 막 취임한 노 전 대통령은 검찰 개혁을 외치며 지금의 ‘윤석열 임명’만큼이나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판사 출신의 강금실 변호사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한 것이다. 기수도, 성별도, 직군도 뛰어넘는 깜짝 인사였다. 

 

검찰은 반발했다. 강금실 당시 장관은 김각영 검찰총장보다 한참 후배였다. 검사들은 비검찰 출신인데다 기수까지 전복된 이 상황을 쉽게 수긍하지 못했다. 집단 사표 얘기까지 나왔다. 

 

노 전 대통령은 검사들의 집단적인 반발을 달래기 위해 전례없는 자리를 만들었다. 대통령과 신임 법무장관이 직접 현직 검사들의 ‘클레임’을 듣는 ‘검사들과의 대화’다. 이 자리에서 검사들은 고졸 출신의 노 전 대통령에게 대학 학번을 묻는 등 오만한 질의 태도를 보였고, 노 전 대통령은 검찰개혁 실패에 대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만 했다.

 

그로부터 14년이 흘렀다. 새로운 정권은 또다시 검찰에 개혁의 칼날을 들이밀었고, 14년 전 그때만큼이나 파격적인 인사조치로 검찰의 숨통을 옥죄고 있다. ‘돈 봉투 만찬’ 사건으로 이영렬(18기) 전 서울지검장이 부산고검 차장으로 좌천됐고, 그보다 다섯기수나 낮은 윤석열 검사가 신임 서울지검장으로 올라섰다. 검찰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있던 안태근(20기) 전 검찰국장도 대구고검 차장으로 내려앉았다. 검찰 내부는 또다시 ‘기존 체제의 전복’을 맛보고 있다.

 

그런데 검사들의 반응이 예전과는 다르다. 문 정권의 파격 인사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내부에선 “말도 안 되는 인사다”“다같이 옷벗으란 얘기냐”는 등 불평불만이 터져나오긴 하지만 아직까지 사회적 문제가 될 정도로 큰 움직임은 없다. 검사장급 이상 고위 검찰간부들 사이는 2012년 이른바 ‘검란(檢亂)’ 때보다 더 어수선한 분위기라고는 하지만 선뜻 나서 대통령에 대한 ‘항명’을 주장하는 이가 없다. 

 

과거 노 전 대통령의 검찰 개혁 의지 앞에 보여줬던 검사들의 ‘패기’를, 이번엔 찾아보기 힘든 까닭은 뭘까.

 

윤석열 검사의 서울지검장 임명은 문재인 정권의 검착 개혁 의지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인사로 여겨진다. ⓒ 시사저널 임준선

 

文의 파격인사 검찰 내부에서 받아들이자는 분위기

 

우선 여론이 그렇다. 문 대통령의 파격 인사를 지지하는 여론이 우세하다. 한국 사회엔 대통령과 검사들이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하긴커녕 현직 장관조차 대통령과 겸상하지 못했던 시기가 있었다. 검찰을 틀어 쥔 한 실세 앞에 그를 조사하기로 돼있던 검사들까지 손을 모으고 ‘예쁜’ 웃음을 지어보이던 시기가 있었다. 국민들은 권력 앞에 스스로 겸손해지던 검찰을 바라만 봐야했다. 검찰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그렇게 검찰 스스로가 거둬갔다. 

 

현 정권의 출범은 암울했던 그 시절에 대한 단죄로 시작된 측면이 강하다. 새로운 정권에 대한 기대는 기존 체제에 대한 단절, 무소불위 권력에 대한 개혁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검찰개혁 성공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이 문 대통령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인 셈이다.

 

무엇보다 과거 노 전 대통령 때와 가장 다른 점은 검찰 내부에서도 이번 인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분분하다는 것이다. 검찰 내부에서 ‘소장파’로 분류되는 집단을 중심으로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검찰에 미래는 없다”며 개혁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몰고 온 이영렬 전 지검장과 안태근 전 국장의 부적절한 ‘돈봉투’ 회동과, 관행으로 여겨져왔던 ‘격려금’ 문화에 대해서도 반성하는 분위기가 대체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도권의 한 부장검사는 “검사장급 이상 고위간부들의 줄사퇴는 있을 수 있지만, 집단적인 반발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고 말했다. 

 

‘문재인은 노무현과 다를까?’

 

문재인 정권이 시작되고 나서, 어쩌면 언론을 통해 가장 많이 던져진 이 질문.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8주기를 하루 앞둔 오늘은, 마침 문 대통령의 검찰 개혁의 상징이기도 한 윤석열 서울지검장의 첫 출근날이었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문재인’표 검찰 개혁. 그는 자신의 오랜 친구,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키지 못한 꿈을 이룰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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