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해진 인간, 알파고에게 복수할 수 있을까
  • 김회권 기자 (khg@sisajournal.com)
  • 승인 2017.05.2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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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3일부터 세계 1위 커제와 3번기 포함 단체-복식전이 중국에서 열려

 

2016년, 구글 자회사인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소프트웨어 '알파고'는 인간계 최강의 바둑 기사 중 한 명인 이세돌과 대국을 해 역사적인 승리를 차지했다. 이날의 승리는 인공지능 개발의 역사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 알파고의 라스트오더는 그걸로 끝난 게 아니다. 5월23일부터 알파고는 중국으로 가, 중국 최고의 바둑 기사들과 5일간의 토너먼트를 벌인다. 여기에는 인간계 현존 최강으로 평가받는 커제 9단도 참가한다. 드디어 인간이 지난 패배를 설욕할 때가 온 것이다.

 

이번 인간 대 인공지능의 싸움은 'Future of Go Summit'라는 이름으로 중국 저장성 우전에서 5월23~27일에 개최된다. 주최는 구글의 자회사인 딥마인드와 중국바둑협회, 그리고 중국 정부가 함께 한다. 알파고는 몇 가지 대전 방법으로 인간과 싸우며 동시에 알파고와 인공지능 전반에 미래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패널 토론 등이 진행된다. 

 

ⓒ 사진=연합뉴스·Pixabay

 

 

“바둑 기사들은 이미 알파고의 영향을 받고 있다”

 

알파고가 이세돌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뒤 바둑 톱기사들은 둘의 싸움을 차분히 되돌아 봤다. 그들은 왜 알파고와의 전투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인공지능은 어떻게 전문가들의 예상을 벗어난 수를 두고 그것을 승리로 실현해 낼 수 있었는지 등을 검토할 수 있었다. 흥미로운 일은 인공지능의 바둑이 인간에게 꽤 매력적으로 보였다는 사실이다. 실제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이 있은 뒤, 바둑 붐이 일어났고 바둑 기사라는 직업에 대한 관심도 급증했다. 

 

"바둑 기사들은 모두 어느 정도 알파고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결 전 딥마인드가 공개한 동영상에서 중국 측 대표로 참가하는 프로 기사 저우루이양(周睿羊)은 알파고를 대단한 상대로 인정하고 있다. 극찬도 덧붙였다. "알파고의 플레이는 우리에게 자유를 느끼게 하고, (바둑판 위에서) 어떤 움직임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도록 해준다."

 

고대부터 해온, 인간의 지능과 직관이 총체적으로 모인 바둑이라는 게임에서 알파고는 인간이 아직 배울 여지가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지난 번에는 1대1의 순수한 힘겨루기였다면 이번에는 새로운 방법이 대전에 도입된다. 개인전 외에 협력플레이도 있다.

 

 

Pair Go : 중국 프로들과 알파고가 2인 1조로 팀을 이뤄 겨룬다. 구리(古力) 9단과 알파고가 한 팀, 롄샤오(連笑) 8단과 알파고가 한 팀을 이뤄 대결한다. '함께 배우는' 컨셉이다.

Team Go : 중국 프로 5명이 한 팀이 돼 알파고와 대전한다. 5명이 머리를 맞대 한 수를 둔다. 알파고의 창의력과 적응력에 관한 시도다.

커제 vs 알파고 : 역시 이번 이벤트의 핵심이 될 1대1경기. 알파고와 세계랭킹 1위인 커제가 3차전 승부를 벌인다.

역시 가장 주목받는 매치는 세계 1위인 커제와 알파고가 붙는 힘대 힘의 대결이다. 알파고가 세상에 등장하기 전 구글은 이세돌이 아닌 커제에게 먼저 대결을 제안했다. 하지만 자신의 전술이 학습되는 것을 꺼려하면서 그는 알파고와의 경기에 소극적이었다. 커제가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는 이세돌의 패배였다. 커제와 알파고의 대결에서 누가 이길 지는 붙어봐야 알 일이다. 

 

 

 



인간의 기보 참고하지 않은 새로운 알파고 등장 예상돼

 

흥미로운 건 지금의 알파고는 이세돌과 붙었던 그 알파고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월 독일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인간의 기보를 참고하지 않고 스스로 학습한 알파고의 두 번째 버전을 만들었다." 

 

만약 새로운 알파고를 테스트하고 싶다면 이번 대결만큼 좋은 장소는 없기에 바둑계도, 인공지능 전문가들도 딥마인드가 완전히 달라진 알파고를 내세울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인간의 기보를 참고하지 않은 인공지능이 두는 바둑. 그것은 완전 다른 바둑일 수 있고 그래서 바둑의 신세계가 더욱 확장될지 모른다는 기대감과 두려움이 새어 나온다.  

 

5명의 프로기사가 알파고에 대항하기 위해 지혜를 모으는 'Team Go'도 재미있는 대전이 예상되지만 인간과 인공지능이 협력해 교대로 돌을 놓는 'Pair Go'는 인공지능 연구와 관련 깊다. 체스에서는 이미 인간과 컴퓨터가 한팀이 돼 겨루는 '켄타우로스 체스'가 1998년 열린 적이 있다. 켄타우로스는 상반신은 인간이고 하반신은 말인, 그리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반인반마'다. 켄타우로스 체스에서는 인간이 컴퓨터를 결정 도구로 사용하며 완전히 일체가 되어 겨룬다. 최근 인공지능 연구에서는 이처럼 사람과 인공지능이 힘을 합해 미션을 처리하는 패턴이 자주 시도되고 있는데, 그런 연구를 위한 새로운 대결 방법이 이번 대회에서 이뤄진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 때는 "인공지능이 어떻게 바둑을 이기겠냐"고 얕보다가 사실상 완패했다. 하지만 이번은 인식 자체가 달라졌다. 중국의 기성(棋聖)으로 평가받는 녜웨이핑(衛平) 9단은 알파고의 3전 전승을 예상했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구리 9단은 "커제 9단이 이길 확률은 10%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겸손해진 인간이 인공지능을 상대로 이변을 일으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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