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지켜주는 방법은 몰랐다 문재인 지켜내는 방법은 무궁무진”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7.05.29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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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모’ 학습효과+팬덤 문화=문재인 신드롬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를 하루 앞둔 5월22일 저녁,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입구에 위치한 마을쉼터에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역대 대표일꾼(회장) 등 20명 이상이 집결했다. 대부분 2000년 전후 노사모 출범부터 함께한 ‘노사모의 산증인’들이었다. 이들은 “이렇게 대표일꾼들이 한 번에 모인 건 10여 년 만에 처음”이라며 “노짱(노 전 대통령)이 계신 곳에서 만나 더욱 의미가 깊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이 둘러앉은 곳에선 노사모 활동이 활발했던 2000년대 초 노 대통령 당선 전후의 얘기들이 자연스레 쏟아져 나왔다. 그들이 기억하는 당시 노사모는 늘 모이면 싸우고 논쟁하기 일쑤였지만 그 어느 곳보다 자율적이고 선구적인 조직이었다. 아래서부터 자발적으로 움직이며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던 노사모의 성격은 당시만 해도 쉽사리 이해되기 어려웠다. 2006년 노사모 사무국장이었던 심재상씨는 “‘대통령이 활동비 따로 주지 않나. 그렇지 않고선 어떻게 대가 없이 이렇게 활동할 수 있느냐’고 물었던 사람들도 많았다”고 회고했다.

 

또한 이들은 그때만 해도 보편화되지 않았던 온라인 게시판을 활동의 주무대로 삼았다. 그곳은 노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기보다 당시 사회문제에 대한 뜨거운 논쟁을 주고받는 토론장 성격이 강했다. 노사모 8대 대표일꾼이었던 노혜경 시인은 “노사모에 모인 사람들은 각각이 바라는 세상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가장 제대로 실현해 줄 대상으로 찾은 인물이 바로 노무현이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노 대통령과 노사모를 주종관계가 아닌 시대정신을 함께한 정치적 동지, 수평적 관계였다고 기억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 1월21일 오전 청와대에서 문재인 신임 민정수석비서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청와대 사진기자단

 

“노사모만큼 노 대통령 비판한 곳도 없다”

 

특정인을 향한 단순한 팬클럽을 넘어 시민운동적 성격이 강했던 노사모는 이후 노 대통령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판단되면 그를 향해 가차 없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이들 스스로도 “노사모만큼 노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곳도 없었다”고 인정한다. 대통령 당선 후 노사모 안에선 “이제 ‘노감모(노무현을 감시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보였다. 2002년 노 대통령이 민주당 경선에서 대선후보로 선출된 날, 노사모 모임에 참석한 노 대통령은 “제가 대통령이 되면 여러분은 무슨 일을 할 거냐”고 물었을 때 다 같이 “감시! 감시!”를 외친 일화는 노사모 내에서 유명하다.

 

2004년 노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자 노사모의 비판은 극에 달했다. 노사모 내 150여 명이 ‘전쟁반대위원회’를 구성해 파병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노 대통령에 대한 지지 철회를 선언하며 모임을 떠난 이들도 절반을 넘었다.

 

노사모는 과거 자신들의 ‘비판적 지지’에 대해 “엄동설한에 우리만 봄이 온 줄 알았던 것”이라고 평가한다. 경남 노사모 대표일꾼인 닉네임 둥근햇살은 “세상이 그 정도로 대통령에 공격적인 줄 당시엔 잘 몰랐다”고 말했다. 실제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에겐 그를 향한 죄책감과 부채감이 여전히 짙게 깔려 있다. 8주기를 맞아 봉하마을 묘역을 찾은 추모객 상당수는 눈물의 이유를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이라고 밝혔다.

 

 

2004년 노사모 계승한 ‘문사모’ 꾸려져

 

노 전 대통령을 향한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은 오늘날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지키겠다는 의지’로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문 대통령 지지자들은 과거 노사모가 취했던 대통령을 향한 ‘비판적 지지’에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문 대통령의 팬클럽 '문팬', '젠틀재인', '문풍지대', '노란 우체통' 등은 모두 노사모에 뿌리를 두고 탄생했다. 이들의 시초인 '문사모(문재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는 2004년 부산·경남 지역 노사모 회원들을 중심으로 꾸려졌다. 2009년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더욱 모임이 활성화됐다. 현재 이곳을 이끄는 운영진들 가운데 노사모 출신이 상당수다.

 

따라서 문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엔 과거 노 전 대통령을 지지하며 겪었던 학습효과가 강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는 대선 과정에서 발생한 SBS의 세월호 인양 지연 오보 사태와 문 대통령에 대해 비우호적인 보도를 해 거센 비판을 받은 ‘한·경·오(한겨레·경향신문·오마이뉴스) 사태’에서 가장 확실히 드러났다. 5월24일부터 열린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에서도 지지자들 중 일부가 야당 청문위원들에게 비판 문자를 보내며 총리 보호에 나서기도 했다. ‘젠틀재인’ 운영자는 5월25일 전화통화에서 “노 대통령 땐 지켜주는 방법을 잘 몰랐다. 그러나 지금은 지키고 싶은 분을 지켜내는 방법이 무궁무진해졌다”며 “이번엔 과거와 결코 같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2002년 3월16일 광주 대선후보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한 후 노사모 회원들과 승리의 V자를 그리고 있다. © 연합뉴스

이러한 학습효과에,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진화한 팬덤 문화가 더해져 이들의 지지활동은 더욱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다. 문 대통령이 표지모델로 등장한 ‘타임’ 아시아판의 구입요청이 쇄도해 2만 부를 추가로 찍어내는 이례적인 상황이 빚어지는가 하면, 커피·안경·등산복 등 ‘문템(문 대통령이 사용한 아이템)’이라면 모조리 품귀 현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같은 구매파워는 지지자들 가운데서도 2040 젊은 세대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대통령을 향한 강력한 보호의식과 젊은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보이는 구매파워는 과거 노사모와는 다른 모습이다. 노혜경 시인은 “밖에서 보기에 문팬을 비롯한 문 대통령 지지 세력이 과거 노사모에 비해 더욱 팬클럽 형태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며 “문 대통령 존재 자체에 대한 환호가 매우 강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교수는 문 대통령 지지자들은 오늘날 연예인 팬덤처럼 ‘실질적으로’ 지지 대상을 도울 방법을 다양하게 찾아나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지지자들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는 5월16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문팬의 홍위병식 행태야말로 소통을 막는 적폐”라며 해산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지 형태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문 대통령 팬클럽의 한 운영자는 “아이돌 팬덤과 비슷한 대통령 팬덤을 그저 경망스럽게 생각해선 안 된다”면서 “대통령을 좋아하는 방법이 항상 정치적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라고 밝혔다. 송경재 교수는 “지지하는 대상을 보호하려는 건 당연한 현상”이라며 “적정선만 넘지 않으면 되는데 문 대통령 지지자들이 지금 그 선을 넘었다고 보긴 어렵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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