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 내지 않고 일하는 영부인 좋아하는 프랑스 국민
  • 최정민 프랑스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6.09 11:08
  • 호수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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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제궁 새 안주인 브리짓 트로뉴 행보와 역할에 주목

 

5월14일 프랑스 2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에마뉘엘 마크롱은 나폴레옹이 권력을 잡았던 40대보다 젊은 39세라는 최연소 나이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그의 나이만큼이나 화제가 됐던 것은 바로 24세 연상의 아내 브리짓 트로뉴 새 영부인이었다. 스승과 제자로 만난 이들의 러브스토리는 이미 마크롱 대통령이 장관이던 시절부터 세간의 주목을 끌어왔다.

 

트로뉴의 나이와 이들의 평범하지 않은 러브스토리 외에도 프랑스 국민들이 뜨거운 관심과 기대로 대통령 커플을 지켜보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지난 5년간 비어 있던 엘리제궁(프랑스 대통령 관저)의 영부인 자리가 채워진 것이다. 프랑스 국민들이 새 영부인의 역할과 행보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경우 세골렌 루아얄 전 환경부 장관과 결혼하지 않고 동거 상태에서 자녀 4명을 뒀다. 그러나 2007년 그녀와 이별하면서 임기 중에는 줄곧 공식적으로 독신 신분을 유지했다. 당선 무렵 연인이었던 언론인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와의 관계가 드러나면서 한때 그녀가 엘리제궁의 새 안주인으로 입성한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대통령 취임 후 결별하면서 영부인석은 공석으로 유지됐다.

 

올랑드의 전임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엘리제궁에서 이혼한 첫 프랑스 대통령이었다. 취임 5개월 만에 부인과 이혼한 사르코지는 그 후 두 달 만에 프랑스 모델 출신 카를라 브루니와 재혼했다. 이혼 숙려 기간을 지키지 않고 엘리제궁에 입성한 탓에 브루니에 대한 초반 여론은 냉랭했다. 그러나 이후 그녀는 대통령 체면을 살려주는 활발한 활동을 펼치면서 서서히 국민들의 마음을 우호적으로 돌려놓았다.

 

5월26일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G7 정상회의 축하공연장을 찾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브리짓 트로뉴 부부 © EPA 연합

 

트로뉴, 언론과 호사가 입방아 견뎌낼까

 

새 영부인이 맞이하게 될 첫 시험대는 언론과 호사가들의 입방아를 어떻게 견뎌 내느냐다. 특히 트로뉴는 마크롱과의 정통적이지 않은 관계와 고령의 나이로 인해 벌써부터 조롱과 희화화의 대상이 되고 있다. 취임 직후 프랑스 대표 만평지인 샤를리 에브도는 트로뉴 관련 풍자만화를 실어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마크롱이 임신한 트로뉴 배 위에 손을 댄 채 웃는 모습을 그리고 그 옆에 “그가 기적을 일으킬 것이다”라는 문구를 넣은 것이다. 즉각 그녀를 조롱한 성차별적 그림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마크롱도 직접 나서 “아내가 나보다 스무 살 어렸어도 비난했겠느냐”며 일침을 가했다. 일각에선 트로뉴가 언론의 비호의적인 보도로 인해 이미 상처를 받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결국 본격적인 평가는 이후 영부인으로서 얼마나 역할을 잘 해내느냐에 따라 이뤄질 것이다. 향후 영부인의 행보는 영부인 자신의 인지도와 호감도는 물론, 대통령의 지지도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하나의 뇌관이다. 이미 트로뉴는 마크롱의 재경부 장관 재직 시절 아무런 직책도 없이 비서진 회의에 참석한 모습이 포착돼 논란이 된 바 있다. 당시 마크롱은 “그녀는 자발적으로 일을 도와주고 있다”며 자랑하듯 얘기했지만, ‘공식적인 회의에 비공식적인 인사 개입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못했다.

 

이러한 과거 탓에 이후 트로뉴의 행보가 이전 영부인들과 달리 적극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대체적이다. 프랑스 보도전문 채널 BFM은 “그녀가 교육과 장애 문제에 특히 관심이 많다”며 “자신이 오랜 기간 프랑스어 교사였던 만큼 어떠한 식으로든 교육 관련 정책을 결정하는 데 적극 참여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영부인의 이러한 활동적인 행보를 과연 프랑스 언론과 여론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아직은 미지수다. 그러나 전례를 본다면 프랑스 국민들은 영부인의 적극적인 정치 개입을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사르코지 대통령 당시, 정책 결정에 적잖은 역할을 해 왔던 전 부인 세실리아 사르코지는 콜롬비아 반군의 포로로 있던 간호사들의 구출 석방 작전에 직접 개입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여론의 차디찬 반응에 직면해야 했다. 프랑스 내엔 세실리아의 적극적 활동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이후 그녀가 사르코지와 이혼한 결정적 이유 중 하나였다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일은 하되 티 내지 않는 것을 중시하는 프랑스 국민들에겐 1995년 집권한 시라크 대통령의 부인 베르나데트는 전형적인 영부인상(像)으로 꼽힌다. 지역 지주의 딸이었던 그녀는 엘리제궁의 모든 만찬과 행사를 직접 챙기고 다양한 자선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대통령인 남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곤 했다.

 

 

‘엘리제궁 안주인’과 ‘女帝’의 세(勢) 다툼?

 

엘리제궁엔 새 영부인의 견제 대상이 될 만한 인물이 있다. 바로 에블린 리차드, 엘리제궁의 의전 담당자다. 5월18일 마크롱이 선거 직후 당선인 자격으로 첫 등장한 공식 석상에서 에블린은 올랑드 전 대통령의 소개를 받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1969년 퐁피두 대통령 이후 한결같이 엘리제궁을 지켜온 인물로, 그간 한 차례의 인터뷰도 없었을 만큼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국내는 물론 해외 공식행사까지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엘리제궁의 핵심인사다. 지난 40년간 좌우 정파를 망라해 자리를 지켰던 그녀에겐 ‘엘리제의 여제(女帝)’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더욱이 영부인 자리가 비어 있던 지난 기간 동안 그녀의 영향력은 더욱 막강해졌다. 엘리제궁과 언론 간의 협의 통로를 담당하고 있는 것도 그녀로 알려져 있다. 이제 엘리제궁의 공식 안주인이 들어선 만큼 의전 담당 실세와의 관계가 향후 어떤 식으로 정리될지 흥미롭게 지켜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 누구보다 적극적일 엘리제궁의 새 안주인과 오랜 기간 그곳을 지켜온 여제 간의 세(勢) 다툼이 머지않아 벌어지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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