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른 트럼프-코미 ‘단두대 매치’
  • 김원식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6.12 09:55
  • 호수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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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코미 前 미 FBI 국장 증언 파문

“코미가 치밀하게 준비했다. 그는 이미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 트럼프의 신뢰성(credibility)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6월8일(현지 시각)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미 의회 상원 정보위 청문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에게 ‘외압’을 행사했다는 폭탄 증언을 하자, 워싱턴의 한 정치분석가가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날 청문회는 이 전문가의 글처럼 코미의 노련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제임스 코미 전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6월8일(현지 시각) 워싱턴DC의 상원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 중단 압력과 관련한 증언을 하기 전에 선서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코미 “러시아, 미국 대선 개입했다”

코미는 트럼프 대통령이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관한 수사를 하지 말라고 직접 ‘명령’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은 그것을 ‘명령’으로 인식했고 “상당히 충격적이었다”고 털어놨다. 코미는 또 자신이 해임당한 이유에 관해서도 “확실하지는 않다”고 전제하면서도 “내가 러시아 수사를 하는 방식이 어떤 식으로든 그(트럼프)에게 압박을 가하고, 그를 화나게 했기 때문에 해임을 결정한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수사 때문에 해임됐다는 게 내 판단이다. 어떤 면에서는 러시아 수사가 진행되는 방식을 바꾸기 위한 의도에서 내가 해임된 것이다. 이는 큰 문제”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을 해임한 이유가 탄핵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법방해’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코미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화 내용을 담은 ‘메모’를 남긴 이유에 관해서도 “솔직히 우리 만남의 성격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우려를 했다. 기록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신뢰성’에 의문을 던졌다. 그러면서 “나와 FBI를 방어하기 위해 기록을 해 둬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자신이 치밀하게 준비했음을 숨기지 않았다. 코미는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녹음테이프에 관해서도 “제발 대화 녹음테이프가 있기를 바란다. 있다면 공개돼야 한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트위터에서 녹음테이프 공개를 거론하며 경고한 것에 일격을 가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싸움이 결국 ‘진실공방’ 게임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점을 미리 인식하고 기선을 제압한 셈이다. 코미는 또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를 거론한 것에 관해서도 “내가 틀릴 수도 있지만, 내가 느낀 상식은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보장 요청을 들어주는 대가로 뭔가 노리고 있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러시아 스캔들’에 관해서도 “러시아가 미국 대선에 개입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단언했다. 자신이 직접 ‘판단’이나 ‘발언’하지 않고도 트럼프가 자신을 해임한 것은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피하려는 것이었다는 뉘앙스를 줬다.

코미의 이러한 폭탄 증언에 트럼프 대통령 측도 평소와 달리 감정적인 대응을 자제하고 장기전을 예고하는 모양새다. 트럼프는 우선 개인 변호인을 통해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또는 실질적으로 코미에게 수사를 중단하라고 지시하거나 제안한 적이 결코 없다”면서 코미의 주장 전체를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도 한 연설에서 코미의 의회 증언에 관해서는 언급을 삼간 채 “그들이 거짓말하고 방해하며 증오와 편견을 퍼뜨릴 것이지만, 옳은 일을 하는 데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며 장기전을 시사했다. 결국 서로 ‘신뢰성’에 관해 치밀한 혈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결과에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 위기’로 몰리거나 아니면 코미 전 국장이 위증 등의 혐의로 ‘사법 처리’되는 치명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미국 언론들도 트럼프 대통령에 관한 호불호(好不好)에 따라 각자의 시각으로 연일 이번 사태를 대서특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스캔들’ 수사중단 압력을 가했다는 ‘메모’에 대해 특종보도를 한 뉴욕타임스는 “코미가 트럼프가 수사 방해(derail)를 시도하고 백악관이 ‘거짓말’했다고 말했다”는 내용을 헤드라인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보수 성향의 폭스뉴스는 “코미가 ‘대통령이 내게 플린에 대한 수사를 하지 못하게 명령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며 “트럼프 측 변호인이 코미의 주장을 부인하면서 반격에 나섰다”고 보도해 대조를 이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모든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 사진=EPA연합


지지층 결집 통해 위기 해법 찾는 트럼프

‘대통령 탄핵’ 국면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는 이번 사건은 결국 ‘진실공방’ 과정에서 결판이 난다는 것이 워싱턴 정가의 중론이다. 백악관도 코미의 의회 증언이 끝나자마자 “트럼프 대통령은 거짓말쟁이가 아니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며 방어에 나섰다. 하지만 코미의 의회 ‘폭탄 증언’으로 현재는 트럼프 대통령이 ‘신뢰성’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선거 캠프에 관여한 한 전문가는 “대통령이 신뢰를 상실하면, 누구도 그와 대화하기를 꺼린다”면서 이번 코미의 의회 증언은 단지 ‘탄핵론’ 부각만이 아니라 향후 트럼프 행정부에 치명적인 약점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결국, 그동안 언론을 통해 간접적으로 제기된 진실 공방에서 이제는 양측이 한걸음도 물러설 곳이 없는 혈투로 변해 가는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 측은 전면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코미의 의회 증언이 ‘거짓말’이라고 반박한 이상 무언가 증거를 내놓아야 하는 처지에 몰리고 있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 측이 코미가 거짓말을 했다는 증거를 내놓는다면 이번 사태는 반대로 코미가 대통령과의 기밀 대화를 유출하고 위증한 혐의로 사법 처리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 또한, 자신의 주장이 거짓으로 드러나면 도덕적인 타격은 물론 사법 당국에 수사중단 압력을 행사한 ‘사법방해’가 성립되면서 탄핵소추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커졌다.

워싱턴의 한 정치분석가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코미의 주장에 일일이 반박하기보다는 큰 틀에서 코미 전 국장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쪽으로 이번 사태를 방어할 것으로 내다봤다. 트럼프 대통령이 코미의 의회 청문회가 있던 날 이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다른 행사 연설을 통해 “우리는 싸워 이길 것”이라고 말한 대목이 이를 잘 말해 준다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지지층 결집을 통해 위기 국면을 타개해 나가는 전략을 쓸 것이라는 예상이다. 하지만 워싱턴 정가에 몰아친 이번 ‘폭풍’은 쉽게 가라앉지 않으리라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양측이 ‘진실 공방’ 싸움을 이어갈수록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녹음테이프를 공개하라는 여론도 커질 전망이다.

따라서 로버트 뮬러 전 FBI 국장이 이끄는 특검 수사가 향후 흐름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추가 폭로가 제기되는 등 언제든지 양측을 회복 불능의 상태로 몰아넣을 ‘뇌관’도 터질 수 있는 상황이다. 당장은 현실적으로 탄핵 위기에 몰리지 않더라도 지속적인 여론 악화에 직면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어떠한 ‘반전 카드’를 내놓을지에도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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