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도와준 마크롱 신당의 압승
  • 김회권 기자 (khg@sisajournal.com)
  • 승인 2017.06.12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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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에 의한, 마크롱을 위한, 마크롱의 선거였던 프랑스 총선

 

프랑스 정치가 드라마틱한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5월까지 의석 수 하나 가지지 못했던 정당의 30대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그리고 6월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정치계를 좌우로 나누며 거대해진 사회당과 공화당의 아성까지 무너뜨렸다. 이 모든 혁명 같은 일은 불과 2달 사이에 일어났다.

 

프랑스 현지에서 6월11일 치러진 총선에서도 프랑스인들은 대변화를 선택했다. 1·2차 투표를 통해 하원의원 577명을 선출하는 이번 선거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만든 신당에 압도적인 의석수를 몰아줬다. 1차 투표의 정당 득표율을 기준으로 18일 예정인 결선 투표가 끝날 경우, 마크롱의 신당인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전진 공화국)와 민주운동당 연합은 최소 400∼445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마크롱과 함께’라는 문구가 난무하는 총선이었다. 사회당과 공화당 후보들까지도 프랑스의 젊은 지도자와 친밀감을 어필하는 전략을 썼다. 사회당의 후보들 중 일부는 사회당의 로고인 빨간 장미를 하단에 작게 배치하는 대신, ‘마크롱과 함께’를 전단지 상단에 잘 보이도록 인쇄했다. 공화당의 후보들 중에서도 자신의 선거홍보물 잘 보이는 곳에 ‘마크롱과 함께’를 써놓으며 자신이 마크롱 진영과 얼마나 밀접한지를 알리며 선거전을 치러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손을 강하게 움켜쥔 마크롱 대통령은 쉽게 그 손을 놓지 않았다. 기싸움에서 지지 않겠다는 결의로 해석됐다. ⓒ 사진=AP연합

 

‘닫힌 미국’ 트럼프 꼬집으며 ‘열린 프랑스’ 강조하다 

 

마크롱 대통령의 인기에 기대야 선거가 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인기는 레퓌블리크 앙마르슈라는 마크롱 신당의 압승이 증명했다. 이 한 달 남짓한 대선과 총선 사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마크롱의 고공 인기 행진에 도움을 줬다.

 

트위터 정치를 생각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이 먼저 떠오른다. 대서양을 사이에 둔 마크롱 대통령도 SNS 세상에서는 주목받는 정치인이다. 그의 메시지는 보다 정교하다. 트럼프를 꼬집는 이야기를 프랑스어와 영어로 전 세계에 퍼트리며 ‘반(反)트럼프’ 네티즌을 결집했다. 예를 들어 6월8일 마크롱 대통령의 트위터와 페이스북에는 그의 연설 동영상이 첨부됐다. ‘닫힌 미국’을 주장하며 반(反)이민주의 주장을 펼치는 트럼프와 반대되는 ‘열린 프랑스’를 강조하는 동영상이었다. ‘열린 프랑스’는 정치인 마크롱을 전 세계에 어필했고 이 동영상은 리트윗만 수천 건에 달했다. 

 

그의 SNS에는 정치인 마크롱의 핵심적인 메시지가 전략적으로 전달된다. 첨부된 동영상에서 그는 “지구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고 연설을 마무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고 했으니 보다 통 큰 정치인임을 알리고 있었다. “지구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주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파리 협정 탈퇴를 발표한 뒤 등장한 문구다. 전 지구의 장기적인 미래를 위해 합의된 파리 협정은 이름 그대로 프랑스의 수도에서 마무리된 글로벌 이슈였다. 그걸 뒤집은 미국 대통령과 당당히 맞서는 프랑스 대통령의 모습은 프랑스인들의 자부심을 자극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온난화 대책은 세계적인 과제”라고 호소하며 자국이 땀 흘려 만들어낸 파리 협정의 위대함을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존재감은 표로 연결되면서 프랑스 총선은 마크롱의 신당인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의 압승이라는 결과를 냈다. ⓒ 사진=AP연합

 

외교 무대의 존재감, 인기로 연결되다

 

프랑스는 39살의 대통령을 뽑았지만 그의 외교 무대 데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주요 강대국 지도자들 사이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반면 마크롱 대통령은 그런 우려를 기회로 삼았다. 5월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의 한 장면. 그가 다른 정상들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의 정면에 서 있던 트럼프 대통령이 포옹하는 몸짓을 보여주는 찰나 마크롱 대통령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피했다. 그리곤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먼저 다가가 악수하며 트럼프 대통령을 후순위로 미뤘다. 우연이었는지 계획된 것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의 ‘동선’은 세계적인 화제를 끌었다.

 

첫 정상회담에서 나눈 악수도 마찬가지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손을 강하게 움켜쥔 그는 쉽게 그 손을 놓지 않았고 강한 악력에 트럼프 대통령이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원래 트럼프 대통령은 악수할 때 상대의 손을 강하게 잡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히려 역공을 펼친 셈이었다. 남자들의 유치한 기싸움이 아닌, 정상 간의 기싸움에서 지지 않겠다는 결의로 해석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내우외환을 겪는 중이다. 러시아 게이트로 국내 사정이 복잡하고 파리 협정 이탈로 해외에서는 빈축을 사고 있다. 트럼프를 둘러싼 세계적 포위망이 형성되고 있는 이 때, 그 중심에 마크롱 대통령이 대등하게 존재감을 드러냈고 이게 표로 연결되면서 프랑스 총선은 ‘마크롱을 위한 선거’가 됐다. 그리고 이번 압승으로 프랑스와 유럽은 트럼프 대통령과 만날 때 또 한 번 대등하게 논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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