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성적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6.13 09:23
  • 호수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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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號의 한계, 뿌리 약한 한국 축구의 현실

 

조별리그 초반 2연승을 달린 신태용호의 ‘신바람 드라마’는 열흘 만에 조기 종영됐다. 한국 축구는 1983년 세계청소년선수권(현 U-20 월드컵), 2002년 한·일월드컵, 2012년 런던올림픽에 이어 또 한 번의 4강 진출과 그 이상의 성적을 기대했지만 16강 진출에 만족해야만 했다.

 

기니와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멋진 승리를 거뒀던 신태용 감독과 U-20 대표팀은 잉글랜드와 포르투갈에 잇달아 패했다. 특히 C조 2위로 올라온 포르투갈과의 16강전에서는 1대3의 허무한 패배를 당했다. 잉글랜드에 패하며 조별리그 1위를 내준 전체 전략과 포르투갈전 맞춤 전술, 선수들의 컨디션 조절 등 다양한 패인 분석이 나왔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근본적인 기량 차에 있었다.

 

 

매주 뛰는 유럽·남미 vs 한 달 뛰는 한국

 

U-20 월드컵 개최국으로서 기대가 컸던 만큼 신태용호를 향한 대회 준비 지원도 A대표팀 수준으로 이뤄졌다. 최적의 평가전을 준비하고, 2명의 피지컬 코치를 붙였다. 지원 스태프도 성인 월드컵 본선에 준하는 수준이었다. 대회 6개월을 앞두고 감독을 교체하는 벼락치기 속에서도 홈 이점에 대대적인 지원이 더해지면 2002년과 같은 성적이 날 수 있을 거란 기대와 바람이 있었다. 하지만 지원이 경기력이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다 고칠 순 없었다. 그라운드 안의 격차가 잉글랜드·포르투갈전 연패로 이어졌다.

 

“성적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닌 거 같다”라는 신태용 감독의 발언은 패장의 변명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6개월의 제한된 시간 안에서 선수를 파악하고 다양한 전술을 준비했지만 실전 감각이 떨어진 선수들로는 완성도를 높이는 데 한계를 느꼈다는 게 그의 토로였다.

 

5월30일 2017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16강전 대한민국과 포르투갈의 경기에서 패한 한국 선수들이 침통해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번 U-20 월드컵에서 한국이 상대한 팀들은 대부분 수준 높은 자국 리그나 유럽 무대의 1군 혹은 B팀(2군)에서 확실히 자리를 굳힌 선수들로 구성됐다. 아프리카의 기니조차도 선수의 절반이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꾸준히 경기 감각을 유지하는 중이었다. 아르헨티나, 잉글랜드, 포르투갈의 선수층은 한국과 확연히 비교됐다. 특히 포르투갈은 3대 명문팀인 스포르팅, 포르투, 벤피카의 B팀 소속 선수들이 대거 출전했다. 잉글랜드도 첼시, 리버풀, 에버튼, 토트넘 B팀에서 활약하며 1군 진입이 예정된 선수들이 다수였다. 뛰어난 잠재력의 어린 선수들이 실전 경험을 꾸준히 쌓으면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실제 경기에서 역력히 드러났다.

 

반면 한국은 프로 소속으로 1군 엔트리에 확실히 들어간 선수는 한찬희(전남)뿐이었다. FC바르셀로나라는 화려한 타이틀에 가려졌지만 백승호와 이승우는 성인팀에 아직 진입하지 못했다. 백승호가 바르셀로나 2군인 B팀에 속해 있지만 지난 1년간 3경기에 출전했을 뿐이다. 신태용 감독이 바르셀로나 측과 담판을 짓고 지난 2개월간 한국에서 계속 체력을 끌어올려야 했을 정도로 몸 상태가 떨어져 있었다. 이승우는 주로 U-19 팀인 후베닐A 소속으로 뛰었다.

 

일본조차도 만 16세로 이번 대회에 참가해 화제를 모은 구보 다케후사가 FC도쿄 U-23팀 소속으로 3부 리그에서 성인들과 싸우는 중이다. 도안 리쓰, 오가와 고키 등 다른 주축 선수도 마찬가지다. J리그의 경우 23세 이하 선수들로 구성된 팀들을 3부 리그에 참가시켜 실전 감각을 끌어올리고 있다.

 

 

시스템 변화 없이는 열매도 없다

 

반면 한국은 21명의 선수 중 12명이 대학팀 소속이었다. 그중에서도 절반인 6명은 올해부터 대학 리그에 적용 중인 C제로룰(전년 평균 학점 C 미만일 경우 경기 출전 금지)에 묶여 있었다. 지난 2월 끝난 춘계대학연맹전 이후 훈련만 해야 했다. 매주 꾸준히 경기 감각을 올리는 유럽, 남미, 심지어 일본팀과도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한국 축구의 가능성은 묶여 있다. 유럽은 17세에서 18세 사이의 선수들과 프로 계약을 맺는다. 반면 한국은 만 19세 이하의 선수는 프로에서 뛸 수 없다. 미성년자 근로기준법의 강화 때문에 프로팀들은 고등학교 졸업까지 입단 계약을 마냥 기다려야 한다. 

사실상 17세부터 18세 사이가 프로 선수로서 가능성을 확인하고 집중적인 경험이 주어지는 시기인데 중요한 2년이 허비되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프로 2종 계약을 통해 미성년자 선수와 가계약을 맺는 대안을 마련했다. 반면 대한축구협회와 K리그는 정부 부처만 바라볼 뿐이다.

 

19세 미만의 육성 체계도 뒤처진다. 유럽의 경우 8세 팀부터 19세 팀까지 한 살 간격으로 팀을 구성한다. 16세까지는 월반 없이 연령별로 리그제를 운영하며 꾸준히 경기를 가질 수 있게 해 놨다. 스페인의 경우 16세 이후부터는 1·2군 형태로 A팀, B팀을 나누며 육성을 더 체계화한다. 이 시기는 사실상 프로 선수로 키우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이다.

 

반면 한국은 학제 단위로 팀이 구성된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3개 카테고리에 불과하다. 그나마 2011년부터 저학년 대회가 도입돼 중·고등학교 1학년의 숨통이 틔게 됐지만 여전히 능력보다는 나이 순으로 기회를 받는다. 프로 선수로서의 육성보다는 진학을 목표로 하는 팀이 대다수다 보니 고학년 선수의 영향력이 크다. 한 고교 축구부 감독은 “1학년 중에 돋보이는 선수가 있어도 그 아이를 기용하면 3학년 학부모들이 반발한다. 자기 아이들 진학이 어려워진다는 거다”라며 한국 축구 육성 시스템의 현실을 전했다.

 

잉글랜드 3부 리그 찰턴 애슬레틱 14세 팀의 전력분석을 맡고 있는 김종원씨는 “잉글랜드는 16세가 되면 팀에서 선수의 가능성을 의논한다. 구단이 여기까지가 한계라고 조언한 선수는 일반 학생으로 전환한다. 만일 다른 팀으로 가고 싶다면 구단에서 그동안의 자료를 취합해 이적을 돕는다. 가능성이 큰 선수는 그때부터 프로에서 뛸 준비를 하는 거다”라고 말했다.

 

U-20 잉글랜드 대표팀 공격수 아데몰라 루크먼은 중등과정 졸업시험에서 3개의 A+와 5개의 A를 받은 수재로도 유명하다. 그가 프로 선수의 길을 택한 것은 만 16세인 2015년이었다. 반면 한국은 선수들이 일찌감치 대학 진학, 프로 진입에 올인하지만 경험도 기량 발전도 더디다.

 

신태용 감독은 이번 U-20 대표팀에서 자율적으로 사고하고 본인이 대처하는 선수는 유럽에서 뛰는 백승호와 이승우뿐이라고 말했다. 만 20세면 사실상 성인에 근접한 선수들인데 경기 중 계속 벤치를 쳐다보는 일이 많았다. 감독의 지시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뿌리가 약한 나무에 비료만 뿌린다고 열매가 맺히지는 않는다. 한국 축구도 벼락치기로 성과를 내는 도전을 멈추고 근본적 시스템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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