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지금 미쳤다 조금 기다려라”
  • 이진철 이데일리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6.14 09:18
  • 호수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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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재건축·직장 근처·전세비율 높은 지역 집값 ‘광풍’ 조만간 대대적 규제 나올 듯

 

“올해 초까지만 해도 잠잠하던 집값이 최근 일주일 만에 5000만원 이상 올랐어요. 내년에도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가 유예될 가능성이 크니 세금 걱정하지 말고 지금 사시면 큰돈 벌 수 있으실 거예요.”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서 만난 S공인중개업소 대표의 말이다. 서울 강남 재건축 시장에서 시작된 집값 급등세가 수도권 신도시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경기가 꾸준히 살아난 데다, 대선 이후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됐고, 여기에 새 정부 출범에 대한 기대감이 매수 심리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올 들어 나타난 집값 상승세를 주도하는 것은 서울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다. 서울시 재건축 심의를 통과한 단지를 중심으로 일주일 새 수천만원씩 호가(집주인이 부르는 가격)가 뛰는 이상 급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재건축 정비계획안이 통과된 강남구 개포주공5단지 전용면적 84㎡형(약 25평)은 현재 시세가 13억5000만원 선으로 심의 통과 이전보다 5000만원 넘게 올랐다. 서울시 건축 심의에서 재건축 설계안이 최종 통과돼 사업시행인가를 앞둔 송파구 신천동 진주아파트 전용면적 84㎡형의 경우, 6월 현재 매매값이 11억원으로 두 달 전보다 1억원이나 뛰었다. 신천동 S공인 관계자는 “매수 희망자 대부분은 거주 목적의 실수요자보다는 전매 차익을 노린 투자자들”이라고 전했다.

 

© 시사저널 고성준·이종현

 

개포주공, 심의 통과하자 5000만원 뛰어

 

강남·서초·송파구와 함께 ‘강남 4구’에 포함된 강동구는 둔촌·고덕 주공아파트 등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서울 전체 아파트값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 단지는 올해로 유예기간이 끝나는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를 피한 곳들이다. 둔촌주공3단지 전용면적 72㎡형(약 22평)은 5월초만 하더라도 8억원 초반대에서 거래됐으나 최근 9억원 선에서 팔리고 있다.

 

재건축 아파트 강세와 맞물려 분양권 거래도 활발하다. 지난 5월 강동구 분양권 거래량(입주권 포함)은 330건으로 전체 서울 거래량(1563건)의 21%에 달했다. 4월 전매 제한이 풀린 ‘고덕 그라시움’(옛 고덕주공2단지) 분양권은 현재 5000만~1억원 정도 웃돈이 붙어 거래되고 있다.

 

경기도 수원에서 전세로 살고 있는 김아무개씨는 오늘도 서울 여의도로 출근하기 위해 새벽 6시부터 집을 나섰다. 만원 버스에 두 시간을 서서 가면 회사에 도착했을 때 녹초가 되기 일쑤다. 김씨는 전세계약이 만료되면 회사와 가까운 서울 마포구의 아파트 단지로 옮길 생각이다. 김씨는 “대강 계산해 보니 일 년에 한 달은 광역버스 안에 있는 꼴”이라며 “전셋값이 더 높아져도 일단 삶의 질부터 높여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어 이사를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직장과 집이 가까운 ‘직주근접’(職住近接) 아파트가 몰려 있는 마포·서대문·종로구의 아파트 매매값은 꾸준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부동산정보 제공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마포구 아파트는 6월 기준 3.3㎡당 1938만원에 매매되고 있다. 지난 2015년 1분기(1716만원)보다 15.4% 오른 수치로, 같은 기간 서울시 아파트 매매값 오름세(14.8%)보다 0.6%포인트 높다.

 

지난해 11·3 대책이 발표된 지 한 달 후 분양된 마포구 대흥동 ‘신촌 그랑자이’는 최고 청약경쟁률 89대 1로 닷새 만에 완판됐다. 지하철 2호선 이대역 역세권 단지인 데다 광화문과 시청 등 도심까지 20분 안팎에 이동할 수 있어 젊은 부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게다가 입주까지 전매가 완전히 제외된 강남 4구와 달리 조정대상지역에서 빠지며 규제의 영향도 받지 않았다.

 

서울시 종로구 교남동 ‘경희궁 자이’는 강북권에서 보기 드문 10억원대 아파트다.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과 5호선 서대문역 사이에 위치한 이 아파트 전용면적 84㎡형은 10억~11억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도심 지역인 광화문·시청·을지로 등을 걸어서 출퇴근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인근 B공인중개소 관계자는 “광화문이나 을지로에서 일하는 30~40대가 주로 찾기 때문에 전세 물량이 금방 소진된다”고 말했다.

 

서울 성동구 왕십리동에 사는 정아무개씨는 요즘 서울 도심에서 전세를 끼고 1억원 안팎에 매입할 수 있는 아파트를 찾고 있다. 올해 초 장기 투자 개념으로 샀던 상계동 재건축 추진 단지에서 이주비로 1억2000만원가량을 받은 게 계기가 됐다. 정씨는 “1억원이 조금 넘는 재건축 이주비로 전세가율(매매값 대비 전셋값 비율)이 높으면서도 입지도 좋은 아파트를 잡으면 향후 시세 차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요즘 열심히 발품을 팔고 있다”고 말했다.

 

갭 투자는 전세 보증금을 제외한 차액만 투자해 아파트나 오피스텔 같은 임대물건을 매매하는 투자기법이다. 1억원 정도의 자본으로도 임대수익과 시세 차익을 노릴 수 있어 소액 자산가들의 재테크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갭 투자 유망지역은 서울 강북권과 수도권 신도시인 일산 등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이 높은 지역이다. 전세가율이 높은 지역은 전세금에 조금만 더 보태면 매매를 할 수 있어 초기 자본 부담이 적다.

 

 

대출 규제 강화 예고…집값 오름세 멈출 듯

 

문재인 정부는 오는 8월로 예고된 가계부채 종합관리방안을 발표하기에 앞서, 이르면 6월 중 주택대출 규제 강화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박근혜 정부가 부동산 경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내놨던 LTV(주택담보인정비율)와 DTI(총부채상환비율) 완화 조치가 7월말 끝날 예정이라 그동안 헐거웠던 대출 규제를 다시 조일 가능성이 커졌다. 모든 대출 원리금을 소득과 비교해 대출 한도를 정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도 당초 계획보다 앞당겨 도입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전문위원은 “LTV·DTI 규제가 강화되면 한동안 부동산 거래가 위축되고 집값도 하락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며 “내 집 마련 수요자라면 규제 시행 후 6개월 정도 간격을 두고 매매시장 상황을 살핀 후 주택 매입 여부를 결정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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