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정부 ‘특수활동비’ 수술대 올린다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journal.com)
  • 승인 2017.06.19 10:18
  • 호수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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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필요한 곳에 쓰일 수 없는 구조”…방사청에 올해 처음 특수활동비 책정돼

 

특수활동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수활동비란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국정수행 활동에 쓰이는 경비’를 의미한다. 특수활동비에는 복잡한 증빙 절차가 필요하지 않다. 공무원이 특수활동비를 받았다는 서명만 하면 바로 지급되며, 용처도 묻지 않는다.

 

지난 4월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문제가 된 것도 이 ‘특수활동비’였다. 당시 두 사람은 서로 돈봉투를 주고받았는데, 이 돈의 출처가 ‘특수활동비’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 인해 “특수활동비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그동안 특수활동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많았지만, 최근엔 점점 폐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특수활동비 개혁에 나선다. 장인종 합동감찰반 총괄팀장(법무부 감찰관)이 6월7일 경기도 과천정부청사 법무부 브리핑실에서 돈봉투 만찬 사건 관련 감찰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올해 특수활동비 8939억 역대 최다

 

특수활동비는 해마다 증가해 왔다. 한국납세자연맹이 정보공개를 통해 기획재정부로부터 입수한 ‘2017년 소관부처별 특수활동비 예산금액’을 분석한 결과, 올해 특수활동비로 확정된 예산은 총 8939억원으로 지난해보다 68억9200만원 늘었다. 특수활동비는 총 19개 기관에 편성됐다. 전체 특수활동비의 55%는 국가정보원에 편성됐다. 국정원은 지출예산액의 100%가 특수활동비다.

 

국세청은 2007년 이후 10년 새 가장 많은 증가폭을 보였다. 2007년 9억8420만원에서 올해 54억원으로 늘었다. 이어 통일부는 1.6배, 국방부는 1.2배 증가했다. 국무조정실 및 국무총리실, 국가정보원, 법무부, 미래창조과학부, 청와대, 검찰청은 1.1배가량 늘었다.

 

올해 지출예산 대비 특수활동비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청와대였다. 청와대는 한 해 지출예산액 1794억원의 12.9%에 해당하는 232억원이 특수활동비로 책정됐다. 이어 감사원 3.1%(39억원), 국회 1.4%(82억원), 경찰청 1.3%(1302억원), 법무부 0.9%(286억원) 순으로 나타났다.

 

올해 처음으로 특수활동비를 배정받은 곳도 있다. 바로 방위사업청이다. 방사청의 특수활동비는 지난해 신설된 방위사업감독관실에 배정됐다. 방위사업감독관실에는 검사 출신 공무원 3명이 소속돼 있다. 방사청이 진행하는 방위사업을 관리·감독한다는 명목하에 총 3300만원이 배정됐다. 이 예산에 대해 국회에서 한 차례 논의된 적이 있다. 지난해 말 2017년 예산안 심사 당시 국회에서 방사청의 특수활동비를 전액 삭감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그동안 각 기관의 특수활동비가 계속 지적돼 온 데다, 수사 활동을 하지 않는 곳에 특수활동비를 줄 필요가 있냐는 의견이었다.

 

예산안 심사에 참여했던 한 의원실 관계자는 “예산안 심사 당시 방위사업감독관실 관계자들이 의원실을 찾아다니며 특수활동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관계자들은 ‘방위사업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비리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는 순기능을 강조했다. 그 논리가 먹혔는지 결국 특수활동비가 책정됐다. 감독관실로 옮겨간 검사가 3명인데, 1인당 1100만원씩 책정해 준 셈”이라고 말했다.

 

기밀유지가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거나 범죄 첩보를 얻어내는 데 있어 특수활동비가 유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특수활동비의 이 특성이 오히려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로 최일선에서 수사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특수활동비가 지급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위’에서 다 챙기고 ‘밑’에는 찔끔찔끔”

 

서울의 한 검찰 관계자는 “특수활동비를 없앨 수는 없지만, 시스템은 반드시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검찰의 경우 특수활동비를 법무부 검찰국이 배정받아 검찰총장에게 전달하고, 총장이 각급 검찰청별 인원과 수사 상황 등을 고려해 배분한다. 각급 검사장은 배분받은 특수활동비를 다시 일선 수사 검사들에게 수사 활동 비용보전 등 명목으로 지급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누수’가 발생한다는 지적이 많다. 한 검찰 수사관은 “일선 수사관들은 특수활동비를 구경조차 할 수 없다. 한번은 압수수색을 진행해야 하는데 비용을 받지 못해서 자비로 처리한 경우도 있다. 한 막내 검사가 압수수색 현장에 온 후에 밥을 샀는데, 이 검사도 특수활동비를 받지 못해서 자비로 해결하고 있더라”고 말했다. 그는 또 “위에서 챙길 돈을 다 챙기고 밑에 찔끔찔끔 내려주다 보니 결국 실제 필요한 곳에 전혀 쓰일 수 없는 구조”라며 “특수활동비가 정말 필요한 곳에 쓰일 수 있는 시스템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시스템 개혁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특수활동비를 대폭 삭감하고 사적인 생활비는 직접 부담하겠다며 특수활동비에 손댈 의지를 보였지만, 정작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할 국회에서의 진행은 아직까지 미진하다. 지난 19대 국회는 특수활동비의 유용을 근절하자며 ‘국회의원윤리실천특별법안’과 ‘예산회계에관한특례법 폐지법안’ 등을 발의했지만 하나도 통과되지 못했다. 결국 19대 국회의 임기가 끝나면서 이 법안들은 자동으로 폐기됐다.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특수활동비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다. 과연 어느 정도까지 특수활동비에 대한 ‘수술’을 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문 대통령은 취임한 지 2주가량 지난 5월25일 처음 주재한 청와대 수석비서관-보좌관 회의에서 고위공직자들이 사용하는 특수활동비에 대한 전반적인 실태점검을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특수활동비와 특정업무경비 127억원 중 42%에 해당하는 53억원을 절감하고 이를 청년일자리 창출과 소외계층 지원 예산에 보태기로 결정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5월30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특수활동비를 최소화하겠다는 솔선수범 원칙을 밝힌 만큼 국회도 예산 투명화에 나서야 한다”며 “국회 특수활동비에 문제점이 있다면 과감히 수술해 국민 앞에 개선된 국회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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