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회의원들 거액 후원금 포스코건설 직원 개인이 줬다?
  • 박혁진 기자 (phj@sisajournal.com)
  • 승인 2017.06.20 15:28
  • 호수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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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건설 비자금 조성 및 정치자금법 위반 의혹’ 담긴 검찰 진정서 입수

 

포스코가 6월 첫째 주부터 감사실 직원 20여 명을 동원해 포스코건설 임직원들에 대한 대대적 감사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포스코는 이번 감사가 정기감사라는 입장이지만, 포스코건설 내부에서는 자사 임직원들이 비자금을 조성해 국회의원들에게 불법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감사를 받고 있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러한 의혹에 불을 붙인 것은 지난해 8월 포스코건설 계열사가 서울중앙지검 측에 낸 진정서다. 시사저널이 단독 입수한 이 진정서에는 포스코건설이 자사 임직원을 동원해 정치인들에게 후원금을 기부한 방법이 자세히 적혀 있다.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 배당됐으나, 실제 수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검찰 안팎에선 박근혜 정권 검찰에서는 수사로 이어지지 않았던 사건들이 문재인 정부에서는 대형 사건으로 비화될 수 있으며, 이번 진정 건도 그중 하나로 보는 시선들이 있다. 포스코 역시 이런 검찰 내부 분위기를 잘 알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진정서를 제출한 포스코건설 계열사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진정서에 나와 있는 내용은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고, 더 많은 사례가 있다는 확신이 들어 검찰에 관련 내용을 진정했으나 어찌 된 일인지 당시 사건이 특수2부에 배당됐단 얘기는 확인했으나 수사가 진행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진정인을 대리해 진정서를 작성한 변호사는 총 4명인데 이 중 한 명은 박근혜 정부에서 검사장까지 지내다 2016년 개업했고, 최근 검찰총장으로 거론되는 후보군 중 1명이다. 다른 한 명의 변호사 역시 2015년까지 검찰에 있으면서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부장까지 지냈던 인물이다.

 

인천광역시 연수구 포스코건설 사옥 © 시사저널 임준선

 

포스코건설의 조직적 개입 정황 포착돼

 

본지가 입수한 진정서에는 전직 포스코건설 임직원 2명이 업무상 횡령 및 정치자금법을 위반했다는 의혹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단순히 두 사람이 공모해서 벌인 일이 아닌 회사 차원의 조직적 개입이 의심되는 지점도 적지 않다.

 

두 사람 중 한 명은 포스코건설 이아무개 전 부사장으로, 당시 포스코건설 본사에 근무하면서 동시에 계열사와도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활동비 명목으로 돈을 받아갔다. 이 전 부사장이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 동안 계열사로부터 받아간 돈은 총 6499만원이다. 진정서에는 “이 전 부사장은 본 회사에서 아무런 직책도 갖지 있지 않았고, 근무도 하지 않았으며, 연봉 없이 활동비만 지급된 사실에 비춰볼 때 허위로 직원으로 등재해 활동비 명목으로 회사 자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말했다. 이 계열사의 지난 몇 년간 등기부등본을 확인해 본 결과, 이 전 부사장은 2010년 5월부터 2012년 4월까지 계열사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이에 대해 전직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사외이사의 경우 활동비 명목으로 지급하고 있지만, 모회사 임원이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리는 데 활동비를 지급하는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전 부사장은 2012년 이명박 정권의 대형 사건이었던 ‘파이시티 게이트’ 당시에도 이름이 거론되던 인물이다. 이 전 부사장은 포스코 내부에서 정준양 전 회장, 권오준 현 회장 라인으로 분류되는 사람이다. 권 회장 역시 정 전 회장 라인이다.

 

다른 한 사람은 포스코건설 강아무개 현직 부장으로, 2011년 1월부터 2013년 3월까지 계열사 전략기획실에서 파견 근무했다. 이 사이 포스코건설은 강 부장에게 총 8722만원의 활동비를 지급했다.

 

활동비를 지급한 것이 횡령인지 여부는 수사기관이 판단해야 할 사항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받은 활동비가 비자금일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은 이 돈이 국회의원들에게 쪼개기 후원금처럼 지급됐다는 정황이 함께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서에는 강 부장이 포스코건설의 후배 직원이자 계열사에 함께 파견 나갔던 서아무개씨로부터 받은 이메일이 첨부돼 있다. 서씨는 2012년 4월25일 14시45분 강 부장에게 ‘후원’이란 이름의 이메일을 보냈다. 이메일의 첨부파일에는 전·현직 국회의원 10명의 이름과 함께 총 3000만원의 정치자금을 지급한 내용이 담겨 있다. 엑셀로 정리된 첨부파일 명단에는 전·현직 국회의원들의 이름과 ‘소속 정당 및 출마 지역구’ ‘법적제한’ ‘해당지점 처리 불가’ 등의 항목도 함께 정리돼 있다. 강 부장은 4월26일 16시49분 이 첨부파일을 또 다른 이메일 주소로 전달하며 다음과 같이 적었다. ‘형님, 늦게 보내드려 죄송합니다. 후배들 시켜서 하다 보니 빵구가 좀 났습니다. 혹시 명단 중에서 추가로 필요한 분이 있으면 제가 별도로 약간씩 쏘겠습니다.’

 

강아무개 포스코 부장이 회사 관계자로 추정되는 인사에게 보낸 이메일 본문(위 사진)과 첨부된 국회의원 후원금 내역(아래 사진)

 

포스코건설 직원이 국회의원 10명 일괄관리

 

진정서에는 이런 파일들과 함께 “자사(계열사) 활동비를 공식적으로 지급받지도 않는 직원에 불과한 서씨가, 국회의원 10명의 명단을 일괄관리하고 있고, 의원별로 후원금을 달리하며, 그 집행상황을 상사인 강 부장에게 보고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이는 서씨 개인의 행위가 아닌, 조직적으로 자금을 모아 국회의원들에게 정치자금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적혀 있다. 또한 “서씨가 피진정인 강 부장 지시에 따라 정치후원금을 지급했다면, 그 자금원은 피진정인 이 전 부사장과 강 부장 등의 활동비로 지급된 비자금일 것으로 의심된다”며 “이 같은 의심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피진정인들의 개인 행위가 아니라 포스코건설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도 담겨 있다.

 

만약 진정인들의 주장처럼 포스코건설 직원들이 보낸 후원금이 개인이 아닌 회사 차원에서 보낸 것이라면 이것은 정치자금법 위반이 된다. 현재 정치자금법은 법인과 단체의 정치자금 제공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정치자금법 제31조 제1항은 “국내외의 법인 또는 단체는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제31조 2항 역시 “누구든지 국내외의 법인 또는 단체와 관련된 자금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다”고 적혀 있다.

 

진정서 내용이 한쪽의 일방적 주장일 수도 있다. 하지만 △활동비를 받지 않고 있는 서씨가 왜 이런 명단을 관리하고 이것을 직장 상사인 강 부장에게 보고하고 있는지 △강 부장이 ‘추가로 필요한 분’에게 왜 사비(私費)까지 전달하려 하는지 △강 부장이 이런 내용을 보고한 장본인이 누군지 등에 대해선 의문이 남는다.

 

진정서를 제출한 측도 현재까지는 자신들의 일방적 주장이란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검찰수사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이 계열사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개인이 받는 돈에다 활동비 명목으로 돈을 얹어주고 이것을 정치인들에게 주는 것으로 보인다”며 “포스코건설이 이런 식으로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있다는 의혹에 대해 더 정확한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법적 판단을 받기 위해 진정을 넣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검찰에서 판단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자는 진정 내용을 복수의 검찰 관계자와 변호사 등에게 보여주고, 이들이 제기한 내용이 실정법 위반인지 여부를 물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검찰에 제출한 자료가 정확하다고 한다면 적어도 정치자금법 여부는 분명하다고 본다”며 “이들에게 조성된 돈이 비자금인지 여부는 수사를 통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직 포스코건설 핵심부서 직원 역시 전화통화에서 “충분히 가능한 방법”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 직원은 “지난 정권에서 제기됐던 의혹에 대해 정권이 바뀌자마자 (포스코에서) 감사에 들어가는 것이 꼬리 자르기가 아닌가 의심된다”며 “감사를 통해 임직원들 개인 일탈로 마무리할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2015년 3월13일 검찰이 비자금 조성 의혹 건으로 인천시 연수구 포스코건설 본사 사옥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포스코 “상시로 하는 감사일 뿐”

 

그렇다면 지난해 8월에 전직 검사장 출신 변호사가 직접 검찰에 제출해 특수부에 배정까지 된 사건이 왜 수사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사건 담당 검사가 다른 곳으로 파견 나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수의 검찰 관계자들은 “수사 검사가 파견을 나갈 경우 사건은 같은 부서 내 다른 검사들이 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이런 일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많지 않다”고 말했다. 검찰 내에서는 정황증거가 분명한 사건인데도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던 배경으로 정치적 이유를 꼽는 시선들이 적지 않다. 한 서울중앙지검 검사는 “최순실 게이트 과정에서 많은 연루 의혹을 받았던 기업이 포스코란 점과, 사실상 민정수석실의 수사지휘를 받았다는 의혹을 샀던 중앙지검 특수부에 사건이 배당됐던 점이 석연치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정권에서 다시 들여다볼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기자는 진정서에 언급된 강아무개 포스코건설 현직 부장과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답변이 오지 않았다. 또한 “검찰에 제출된 진정 내용 및 본사 감사 관련한 사실 확인과 답변을 듣고 싶다”고 메시지도 남겼으나 이 역시 어떠한 답도 오지 않았다. 

포스코 본사 관계자는 “감사를 진행하는 것은 맞지만, 감사내용에 대해서는 확인해 줄 수 없고 다만 비자금 조성 의혹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자세한 감사 내용은 포스코 본사 측에 확인해 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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