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신드롬에 담긴 남성 중심 사회 경고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6.21 16:12
  • 호수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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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월 만에 판매부수 10만 부 돌파…주장·대결 아닌 공감으로 접근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7개월 만에 판매부수 10만 부를 돌파했다. 최근 서점가에서 이렇게 단기간에 생긴 베스트셀러는 희귀한 일이다. 특히 소설이라는 분야에서는 더더욱. 단지 소설과 출판가라는 범주 안에서만 이 현상을 해석하기는 어렵고, 그래서 《82년생 김지영》을 신드롬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런데 이 신드롬에는 흥미로운 지점들이 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지만 100만 관객을 훌쩍 넘겨버린 《노무현입니다》 같은 다큐 영화나, 봄만 되면 마치 좀비처럼 되살아나 가요 차트에 올라오는 장범준의 노래들처럼, 최근 신드롬이 된 대중문화 콘텐츠들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양상들이 비슷하게 담겨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역주행·입소문·소외된 것들, 그리고 보편성 같은 것들이다.

 

ⓒ 민음사 제공


 

역주행·입소문·소외된 것들, 그리고 보편성

 

지난해 10월 출간된 《82년생 김지영》은 당시만 해도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지난해 말부터 조금씩 역주행하기 시작하더니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하고는 지금도 순항 중이다. 그 역주행의 진원지는 입소문이다. 소설을 읽어본 이들이 차츰 그 공감대를 넓혀 나갔고, 그래서 별다른 홍보 마케팅 없이도 이 소설은 누구에게나 회자되는 작품이 되었다. 이렇게 대중들 스스로가 입소문을 내게 되는 데는 이 소설이 던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하는 질문과 무관하지 않다. 지금까지 많은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겪어왔던 일들이지만, 그다지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외되었던 이슈를 이 소설은 끄집어냈다. 그리고 그것은 굳이 남녀와 세대를 떠나 ‘82년생 김지영’이 아니어도 보편적으로 공감을 얻을 수 있을 만큼 우리 사회에서 누구나 한 번쯤 겪었거나 목격했을 사건들을 담았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역주행·입소문·소외된 것들, 그리고 보편성이라는 키워드들은 한 가지 특별한 지점을 공통영역으로 갖고 있다. 그것은 권위에 대항하는 ‘대중’의 힘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차트는 그 권위를 통해 자본의 힘과 결탁해 노래들의 순위를 세우지만, 그 안에서도 역주행하는 노래는 그 권위를 거스르는 대중의 힘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 아닌 권위에 의해 소외된 것들이고, 그 권위의 방식과 대결하는 방식은 대중들이 자발적으로 나서는 입소문이다.

 

《82년생 김지영》은 다름 아닌 ‘여성’이라는, 지금껏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어 온 존재를 ‘김지영’이라는 대표성을 띠는 인물의 삶의 행적을 통해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조남주 작가가 《PD수첩》의 작가였던 전력이 있어서인지 마치 이 소설은 소설이라기보다는 ‘보고서’에 가까울 정도로 객관적인 문체를 유지하고 있다. 그것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건 호칭이다. 조 작가는 호칭을 지영 혹은 김지영, 이렇게 붙이지 않고 굳이 ‘김지영씨’라고 한 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불렀다. 물론 이것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 이 이야기가 한 정신과의사의 보고서 형식이었다는 것으로 설명되지만, 그것은 또한 작가가 우리 사회 현실에서 갖가지 일상적인 폭력에 처해 있는 김지영이라는 인물을 그리면서, 그것이 여성들만을 위한 토로나 눈물에 머물지 않고 보다 보편적인 공감대(남성과 다른 세대까지를 포괄하는)로 나아가기를 의도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보편성의 확보는 《82년생 김지영》을 그 많은 페미니즘의 목소리보다 더 크게 만든 중요한 요인이다.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가족재단 로비(왼쪽 사진)와 서울시청 시민청에 마련된 강남역 인근 공용화장실 살인 사건 피해자 추모 공간에서 여성들이 추모 글귀를 보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운 주장으로 읽히지 않아

 

물론 《82년생 김지영》이 현재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하나의 중요한 전례가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82년생 김지영》이 여성들만이 아닌 남성들까지 공감대를 확보하고, 책을 읽은 남성들이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고 말하게 된 데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이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운 ‘주장’으로 읽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페미니즘은 현재 우리 사회의 중요한 담론으로 자리했고, 지난해 벌어졌던 ‘강남역 살인 사건’은 일상적 폭력 속에 노출되어 겨우겨우 생존해 내고 있는 여성들의 문제를 더 이상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들의 문제로 확인시켰다. 그래서 여성에 대한 일상적 폭력이 자행되는 우리 사회의 문제는 올해 대선에서 후보자들이 중요하게 신경 쓰는 화두이기도 했다.

 

하지만 페미니즘이 여성의 틀을 벗어나 더 확장되기 위해서는 ‘주장’보다는 ‘공감’의 방식이 더 필요했다는 걸 《82년생 김지영》은 제대로 보여줬다. 소설이라는 양식은 주장하기보다는 거기 등장하는 인물에 공감시키는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장점을 가졌고, 게다가 이 소설은 보고서 형식이라 김지영이라는 여성의 관점으로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우리네 사회의 모습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게 통찰해 낼 수 있었다.

 

《82년생 김지영》을 패러디해 여혐 논란을 일으킨 《92년생 김지훈》이 나왔던 건, 이 소설의 공감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즉 《82년생 김지영》은 남성과 대결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저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여성이 겪어온 삶의 행적을 공감하자는 것이었다. 만약에 《92년생 김지훈》이 여성을 염두에 두고 대결하기보다는, 여성과 마찬가지로 가부장제 사회의 권위 속에서 겪게 되는 남성의 어려움을 담담히 담아내 어떤 ‘연대’로 나아갔다면 아마도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82년생 김지영》이 우리 사회의 여성 문제를 남녀 갈등의 차원이 아닌 보편적인 공감대를 통해 얻어내고 있다는 건 중요한 대목이다. 이것은 이제 지금의 대중들이 여성 문제를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소외와 차별의 문제’ 같은 보편성으로 읽어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권위가 세워지고 남성과 여성이 구별되고 했던 그 시대의 흐름에, 지금의 대중들은 ‘역주행’을 하려 하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입소문’을 통해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이며, 이런 소외를 없애는 문제가 궁극적으로는 우리 모두를 위한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 책에 끼어들어 있는 정치권의 미담과 거기에 보내는 대중들의 찬사는 이렇게 달라진 시대의 공기를 읽게 해 준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선물하며 건넨, ‘82년생 김지영을 안아주십시오’라는 문구에 대중들은 박수를 보냈고, 금태섭 민주당 의원이 국회의원 298명 전원에게 돌렸다는 미담은 이 책이 제기하는 여성 문제를 모두가 숙고하게 만들었다.

 

지난해 말 광화문 촛불시위(왼쪽 사진)와 올해 초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 유세 현장에 20~40대 여성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 시사저널 이종현·최준필

 

밀레니얼 세대가 꿈꾸는 다른 사회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될 것은 이런 정치권에 박수를 보내는 세대와 그 세대들을 유권자로 안고 가는 정치권의 공조다. 《82년생 김지영》의 주요 독자층은 30대를 중심으로 20대에서부터 40대에 걸쳐 있고, 그중에서도 여성이 80% 가까이에 육박한다. 올해 조기대선에서 문 대통령의 당선을 가른 세대 역시 바로 이 20대에서 40대에 이르는 세대였다(지상파 3사 출구조사에서 문 대통령은 20대 47.6%, 30대 56.9%, 40대 52.4%의 지지를 얻었다). 지역 갈등보다 세대 갈등이 더 컸던 대선이 말해 주는 건 뭘까. 달라지고 있는 세대의 생각을 말해 주는 건 아닐까.

 

20세기에서 21세기로 바뀌는 시점에 우리는 전 세계적인 불황을 겪었다. 특히 지난 2008년 말 미국에서부터 시작된 글로벌 침체기(Great Recession)는 젊은 세대들에게 취업난과 실직으로 고통받고, 학자금 융자로 인해 일찌감치 빚을 떠안은 채 살아가야 하는 경제적인 압박을 안겼다. 이들 세대를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라고 부른다. 198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출생자까지를 포함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어느새 우리 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세대로 자리 잡았다. 이 세대들이 갖고 있는 박탈감은 기성세대가 만들어낸 후유증이라는 점에서, 그것을 깨치기 위해서는 기성세대와는 다른 생각과 시스템을 요구한다.

 

《82년생 김지영》은 바로 이 밀레니얼 세대들이 갖고 있는 다른 생각과 시스템을 ‘여성’이라는 관점에서 끄집어낸 작품이 되었다. 그간 기성세대들에 의해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었고, 그래서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그 바위처럼 단단했던 생각들에 균열을 냈다. 그리고 바로 그 밀레니얼 세대들에 의해 향방이 갈리고, 마치 ‘운명’처럼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그저 말이 아닌 실천으로 이 생각들을 실현시키려 하고 있다. 이는 최근의 새 정부 출범 인사에서 잘 드러난다.

 

물론 여전히 이 ‘유리천장’을 깨려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이들이 존재하지만, 대체로 대중들은 이 흐름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과거라면 방탄유리처럼 견고했을 남성중심사회(특히 정치권 같은 경우는 더욱 공고하다)의 반발은 흐릿해졌다. 그 든든한 지지자들로서 82년생 김지영으로 표징되는 밀레니얼 세대들이 서 있어서다. 《82년생 김지영》 신드롬은 그래서 여성주의의 한 챕터를 연 것 그 이상의 의미로 읽힌다. 이 책이 추구하고 있는 ‘연대’는 또한 여성에서 나아가 이 땅에 소외된 많은 존재들을 향해 어깨를 내밀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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