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택배, 집배원 사망에도 강행하는 ‘죽음의 우체국’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7.06.22 15:5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근 5년간 70명 목숨 잃어 내부 반발…우정사업본부 “세입 확보 차원서 중단 불가”

 

지난해 12월 가평우체국 집배원 김 아무개씨가 한 다세대주택 계단에서 택배 상자를 든 채 쓰러졌다. 급히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김씨는 결국 숨을 거뒀다. 지난 2월에는 가평우체국의 또 다른 집배원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두 명의 공백이 생겼음에도 인원 충원은 없었다. 결국 6월9일, 이들의 빈자리를 메우며 일해야 했던 같은 우체국 집배원 용 아무개씨가 우체국 휴게실에서 쓰러졌다. 전날 비를 맞으며 늦게까지 우편물 배달을 하던 용씨는 이 날도 꼭두새벽에 출근해 잠시 휴식을 취하다 뇌출혈로 쓰러진 후 다시 일어나지 못한 것이다. 

 

올해 들어서 11명의 집배원이 목숨을 잃었다. 심근경색, 뇌출혈 등으로 숨진 집배원들도 있고, 업무의 과중함을 토로하며 목숨을 끊은 이도 있었다. 지난해 순직한 집배원의 수도 6명에 이른다. 경인서수원우체국 정 아무개씨는 우편물을 정리하다 급성 뇌출혈로 사망했고, 서울 도봉우체국 임 아무개씨는 사무실에서 쓰러져 뇌사 판정을 받은 뒤 사망했다. 부산 동래우체국 송 아무개씨는 우편물 정리 중 갑자기 호흡 곤란 증세를 보이다가 결국 세상을 떠났다. 배달 도중 사망한 집배원들도 있었다. 전북 익산함열우체국 유 아무개씨는 배달을 하다 심정지로, 경북 청송현동우체국 배 아무개씨는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집배노조 소속 집배원들은 6월15일 전국 우체국 앞에서 1인 시위를 열고 열악한 근무 환경 호소에 나섰다. 이어 6월18일 에는 전국우체국노동조합·전국집배노동조합 노조원들이 서울 도심에서 집회를 열고 “수많은 집배원이 과도한 장시간 노동에 희생당했다”며 “지난해와 올해 숨진 집배원 27명 가운데 가장 많은 9명이 뇌심혈관 질환으로 목숨을 잃었고 6명이 ‘일이 너무 힘들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주장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5월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집배원들은 하루 평균 우편물 1000통을 배달한다. 매주 13시간이 넘는 연장근무를 하고 있고,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해 오후 8시까지 13시간을 일한다. ‘토요일 택배’가 배송되는 토요일에는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격주로 근무한다. 연차휴가 사용 일수는 연 평균 2.7일 밖에 되지 않는다.

 

6월18일 서울 세종로 소공원에서 열린 전국집배원노조 등 전국우정노동자 총력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집배인력 충원 등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우정사업본부 “처우 개선 위해 근로 시간 단축하겠다”

 

집배원들이 근무환경 개선과 증원 요구에도 우정사업본부는 이를 외면해왔다. 법위반 사항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고용노동부가 대전유성·아산·세종·서청주 우체국 4곳을 실태 조사한 결과 집배원들의 근로시간은 주 13.2시간(월 평균 57시간)으로 나타났다. 근로기준법상 허용된 연장근로 12시간 보다 1.2시간 많다. 그러나 근로기준법 위반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공무원인 집배원은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니며, 공무원이 아닌 집배원은 이 법의 근로시간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 특례업종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집배원의 연평균 노동 시간이 2531시간, 주 48.7시간으로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52시간을 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다만 개인과 관서 간 업무량 차이로 인해 주당 52시간을 초과해 근무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신도시 등 업무가 몰리는 곳에 근무하는 집배원 7300여 명(전체 집배원의 46%)이 주당 52시간을 초과해 근무하고 있다.

 

위법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던 우정사업본부는 최근 집배원 과로사 방지법이 발의되고 집배원 장시간 노동 실태조사가 시행되는 등 논란이 일자 내년까지 전국 모든 우체국에서 일하는 집배원의 근로시간을 연장 근무를 포함해 주 52시간 이내로 단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행법상 주 52시간을 초과해서 근무를 해도 위법은 아니지만, 집배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근무시간을 단축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또 올해 하반기 추경사업을 반영해 집배원 100명을 증원해 신도시 개발 등으로 업무량이 늘어난 지역에 배치하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그러나 ‘생색내기’ 대책이라는 뒷말이 여전히 우정사업본부 안팍에서 나오고 있다. 현재 부족한 인력은 4500명인데, 100∼200명 증원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주먹구구·보여주기식 대책이라는 비판이다. 최승묵 전국집배노조 위원장은 최근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를 통해 “굉장히 실효성이 낮다. 문재인 정부 집권 초기 때 마중물 역할을 한다고 해서 백 명을 메우긴 했는데 굉장히 미비하다”고 말했다.

 

6월15일 국회 정론관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집배노동조합원과 정의당 추혜선 의원,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이 고용노동부집배원 장시간 노동 실태조사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토요일 택배, 적자 부담 집배원에게 떠넘겨 

 

연이은 집배원들의 사망 사고가 알려지면서 ‘토요일 택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우정사업본부는 노조가 요구하는 토요일 택배 폐지에 대해 ‘현행대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세입 확보 차원에서 택배 사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장시간 노동에 시름하는 집배원들의 처지는 외면한 채, 우체국 측이 적자부담을 집배원에게만 떠넘기려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2014년 7월 집배원들의 주5일 근무 보장과 업무부담 경감 차원에서 토요일 택배를 중단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토요일 배달을 원하는 민원이 지속적으로 제기됐고 서비스 경쟁력 약화로 매출과 이용 고객이 감소했다는 이유로 1년 2개월만인 2015년 9월 다시 토요일 택배를 시행했다. 당시 우정사업본부는 전국 우체국 노조 지부장을 대상으로 토요배송 재개와 관련해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투표에 참석한 지부장 230명 가운데 182명이 반대, 39명이 찬성 입장을 보였다. 토요일 택배 당사자인 전국 집배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견 수렴 역시 반대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것으로 알려져 조합원의 의견을 무시한 ‘밀실합의’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