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산들바람 불고 있지만 봄은 언젠가 지나간다”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7.06.26 16:44
  • 호수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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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정·협치 서둘러야 한다” 강조한 박지원 前 국민의당 대표

 

지난 19대 대선 과정에서 박지원 전 국민의당 대표는 문재인 당시 후보를 향해 그 누구보다 날카롭게 각을 세웠다. 매일 문 후보를 비판하는 일로 아침을 맞이한다고 해 ‘문모닝’이라는 별명이 따르기도 했다. 대선 직후 박 전 대표는 선거 패배의 책임을 안고 국민의당 대표직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자신의 SNS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문재인 정부에 대한 입장을 가감 없이 쏟아내며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6월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박 전 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국민을 향해 ‘감동 정치’를 하고 있다”면서도 최근 진행되고 있는 인사에 대해선 깊은 아쉬움을 쏟아냈다. 한때 일부 국민의당 지도부 사이에서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로 문 대통령의 행보를 칭찬했던 박 전 대표는 이후 인사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면서 다시금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는 높은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는 문재인 정부를 향해 “산들바람 불고 있지만 봄은 언젠가 지나간다”며 “정부가 지금의 박수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선 연정과 협치를 서둘러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박지원 前 국민의당 대표 © 시사저널 박은숙

 

문정인 외교안보특보의 발언에 대해 6월19일 ‘시기와 장소가 부적절했다’고 말했다가 6월21일 ‘문 특보가 옳았다’며 번복했는데.

 

6월20일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CBS 인터뷰나 같은 날 리처드 하스 미국 외교협회장의 연설 내용을 보면 문 특보와 똑같은 발언을 하고 있다. 결국 문 특보 발언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될 내용의 예고편이었던 거다. 그러므로 내가 ‘시기와 장소가 적절치 못했다’고 말했던 건 ‘틀렸다’는 의미였다.

 

 

미국과는 아직 사드 문제도 걸려 있다.

 

환경영향평가를 받으라는 정의용 안보실장의 말대로 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후보 땐 반대했지만 결국 찬성할 거다. 대통령이 사드 배치 동의해 국회로 보내면 민주당이 반대하겠나.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도 이미 다 찬성한다 하지 않았나. 그럼 배치되는 거다. 별로 민감한 문제 아니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하는 등 새 정권 길들이기 중인 것으로 보이는데.

 

그들은 늘 ‘벼랑 끝 작전’을 구사한다. 그것에 우리가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어떻든 결국 G2 국가 중 하나인 중국이 제재에 동참하면 북한은 끝나는 거다. 아무리 러시아가 도와줘도 북한은 손들 수밖에 없다. 이때 우리는 대화 기회를 놓치지 말고 나서야 한다. 이번에 문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과거 김대중 대통령과 빌 클린턴 대통령이 만났을 때처럼 남북 문제를 주도할 수 있는 운전석을 차지하고 온다면 그야말로 대성공이라고 본다.

 

 

남북 정상회담은 시기상 언제가 적절하다 보는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다만 지금 미국 등 국제적 여론이 조성되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한·미 정상회담이 굉장히 중요하고 또 그런 의미에서 내가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를 빨리 통과시켜주자고 했던 거다. 그러다가 우리 당에서 뭇매 맞기도 했지만.

 

 

“남북 정상회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정부에서 대북특사를 제안하면 받을 의향 있나.

 

협력할 수 있는 건 분명히 협력한다. 다만 과거 경험에 의하면 대북특사는 대통령이 가장 신임하는 사람이 돼 왔다. 내가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싱가포르에서 북측 송호경 특사를 만났을 때 그쪽에서 내 얘기를 듣더니 ‘마치 김대중 대통령 음성을 듣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순간 정상회담이 성공할 것임을 느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문 대통령이 가장 신임하는 사람이 아니지 않나. 그러니 만일 정부에서 날 필요로 한다면 하겠지만 내가 먼저 가겠다 할 순 없다. 나도 내 분수를 안다.

 

 

18대 국회 법사위원이었던 의원들과 어제(20일) 저녁 회동을 했다고 들었다.

 

18대 때 법사위 4인방이었던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 이춘석 민주당 사무총장, 박영선 의원과 만났다. 우 사무총장의 주선으로 그때를 회상하며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우리가 한때는 인사청문회 ‘킬러’지 않았나.

 

 

법무부 장관은 누가 될 것 같나. 우윤근 사무총장 얘기도 있고 박영선 의원 이름도 거론됐는데.

 

글쎄. 둘 다 본인은 아니라고 한다.

 

 

지금 인사청문회를 둘러싼 갈등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대통령이 인사 배제 5대 원칙을 직접 얘기하고 약속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이 5대 원칙을 지키지 못할 것 같으면 먼저 ‘못 지킨다’ ‘어렵다’ 혹은 ‘원칙 어긋나는 부분 있으면 이실직고하겠다’고 설명을 해 줘야 순서가 맞다. 그런데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 낙마 때도 그렇고, 충분한 설명이 없지 않았나.

 

 

야당의 ‘발목 잡기’란 비판도 있다.

 

우리나라만 청문회가 이렇게 철두철미한 게 아니다. 미국의 경우 사전검증이 아주 철저하다. 그런데도 청문회로 넘어가 고등학교 때 마리화나 하나 피운 걸로 낙마하고 불법 체류자 가정부 채용한 걸로 또 낙마한다. 우리는 지금 자꾸 대통령 코드대로 인사하다 보니 통과가 어려워지고 있는거다. 그걸 탓해야지 왜 야당을 탓하나.

 

 

문재인 정부의 인사 문제가 많다고 보나.

 

내가 며칠 전 “문재인 인사 ‘그물망’에 걸렸다”고 말한 적 있는데 딱 맞는 말 아닌가. 이번에 문 대통령이 황교안 전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 당시 임명한 김용수 방통위원을 미래부 제2차관으로 이동시킨 것도 난 ‘꼼수 인사’라고 본다. 황 전 총리가 김 위원 임명했을 때 얼마나 비판했었나. 그런데 지금처럼 방통위 그 자리에 자기 사람 한 명 더 박아서 방송 장악하고 KBS·MBC 사장 바꾸려고 하면 되겠는가.

 

 

조기대선 등 현실적 한계를 무시할 수 없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그러니까 웬만하면 다 봐주고 넘어가는 거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통과시켜주지 않았나.

 

 

연정·협치에 대한 아쉬움도 있는 것 같다.

 

여당인 민주당은 지금 고작 120석을 갖고 있다. 청문보고서 하나 혼자 처리 못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민주당 120석에 국민의당 40석, 바른정당 20석, 정의당 6석이 힘 합쳐 총 186석의 개혁벨트를 구성해 바로 연정과 협치를 해야 했다. 그랬다면 문재인 정부는 지금의 감동적인 정치를 유지하면서 법과 제도 개혁까지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겠나. 사이다 인사와 국민 감성을 자극하는 감동의 기념사 같은 드라마식(式) 정치만으론 길게 박수 받지 못한다.

 

 

문재인 정부 태도가 좀 달라져야 한다고 보는 건가.

 

문재인 정부는 이전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촛불혁명의 산물로 탄생했다. 따라서 높아질 대로 높아져 있는 국민의 기대 수위를 봤을 때 ‘이전에는 이렇게 했으니까’라는 식의 관행은 이제 절대 통할 수 없다. 과거 정권 관행 얘기 하지 말고 김대중·노무현 뛰어넘어 국민 대통합 이루는 대통령이 돼야 한다.

 

5월10일 제19대 대통령 취임식을 위해 국회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국민의당 대표실을 찾아 박지원 전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바른정당과 정책 연대는 가능하다”

 

바른정당과의 합당은 여전히 의미 없는 얘기인가.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고 지금도 박 전 대통령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는 정당이다. 따라서 우리가 그곳과 손잡는 건 안 될 일이다. 그런데 바른정당은 이들과 다르다. 과오를 인정하고 탄핵에 찬성했으며 박 전 대통령을 못 돌아오게 하고 있다. 그러니 합당은 어려워도 정책 연대는 가능하다고 본다.

 

 

내년에 지방선거가 있다. 그런데 지금 국민의당 지지율은 호남에서도 낮다.

 

호남에선 현재 ‘국민의당이 잘 싸워주니까 문재인 대통령이 호남을 배려한다’는 정서가 많다. 즉 지금의 국민의당과 민주당, 이 양당제를 굉장히 높이 평가하고 있는 거다. 앞으로 이것이 영남까지 확산되면 지역정당 없어지고 좋은 방향으로 정치가 발전하리라고 본다.

 

 

호남에선 그래도 현 정부 좀 도와야 한다는 정서 있지 않나.

 

있다. 있으니까 지금 우리가 오로지 국민만 보고 정치하겠다고 하는 거다. 협력할 건 협력하고 견제할 건 견제하고 그러다 보면 세월은 간다. 문 대통령도 국민 지지도 높으니까 지금 그냥 가는데, 앞으로 지지율 떨어지면 어떡할 건가. 지금 뭐라고 할 수 없지만 앞으로 계속 다 잘할 순 없다.

 

 

문 대통령의 현재 지지율이 전부가 아니라는 의미인가.

 

그렇다. 정치는 생물이다. 처음부터 못하는 사람 어딨나. 현 지지율로는 모든 걸 설명할 수 없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호남 지지율이 99%였다. 지금 잘하니까 박수쳐주는 거다. 우리도 잘하면 박수도 치고, 그러다 그물에 걸리면 잡기도 하고, 다 그러는 것 아니겠나. 산들바람 불고 있지만 봄날은 간다. 태풍은 강하지만 길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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