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한·미 정상회담서 돌출발언 할까
  • 김원식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6.26 17:10
  • 호수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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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한·미 공동 성명 잘 조율돼도 공동 기자회견이 제일 불안”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의 주도권(initiative)을 쥐려 할 것이다.” 

“상호 기(氣)싸움이라기보단 긴밀한 협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6월29일 열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과 한국 정부의 소식통이 익명을 전제로 기자에게 내놓은 전망이다. 양국 정부 관계자들은 처음으로 개최될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에 관해 상당히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하지만 양쪽 소식통의 이런 전망은 현재 미국과 한국이 처한 각국의 국내 상황을 그대로 대변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가장 괴로워하는 것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가 아니라 미국 언론 보도’라는 말이 워싱턴 정가에서 가끔 회자된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 시험을 하면 미 CNN 방송 등 미국 언론들이 앞다퉈 보도한다. 미 국방부는 그때마다 “미 본토에는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발표하지만, 방송 보도에 불안을 느낀 미국 국민의 눈은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다. 가뜩이나 ‘러시아 스캔들’로 인해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지르기’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6월29일 열릴 한·미 정상회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회담 전망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나온다. © 시사저널 최준필·Xinhua 연합

사드 문제 등 거론 않기로 했지만…

 

지난 2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야심 차게 개최했던 미·일 정상회담도 북한의 미사일 한 방에 분위기가 역전됐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새로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을 처음 만나면서 자신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점을 명백히 보여주고 미국 국민들을 안심시켜야 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다. 북한이라는 공동의 ‘골칫거리’를 앞에 놓고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정상 간의 불협화음을 노출할 돌발 행동이나 발언을 자제할 것이라는 예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동맹도 돈을 내야 한다”는 신념이 확고한 트럼프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이번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사드 비용’ 문제 등 돌출발언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문 대통령이 자신을 확고하게 지지하고 있다는 모습을 미국 국민들과 지지층에 보여주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 국무부나 백악관 실무진들 사이에선 예측할 수 없는 트럼프의 성격으로 정상회담 과정에서 어떠한 돌발 사태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한·미 실무 당국자들이 ‘사드 문제’ 등 양국 간에 민감한 사항은 가급적 공식 회담 테이블에 올려놓지 않기로 했지만, 공동 기자회견 과정에서 질문이 나오면 모두 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만 쳐다봐야 하는 불안감이 존재한다. 공동 성명이 잘 조율되더라도 공동 기자회견이 제일 불안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은 사전에 실무진들이 준비한 보고서를 보지 않거나 무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각국 정상과의 전화통화에서 버럭 화를 내며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은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기도 했다. 백악관 실무진들이 뒷수습에 애를 먹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들은 ‘트럼프의 노련한 협상 전략’이라면서 실무진들을 다독거리는 풍경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북한 문제’라는 매우 예민한 문제를 최우선 순위로 다뤄야 하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선 트럼프 대통령도 자신의 돌출행동을 억제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평소에도 한·미 동맹을 강조해 온 트럼프가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엇박자를 낸다면 그나마 30%대 중후반을 유지하고 있는 지지율에도 치명타를 입기 때문이다.

 

 

文 대통령, 한·미 동맹 과시할 필요성 커져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한·미 정상회담이 ‘국내용’의 의미가 더 크다는 분석이 많다. 후보 시절 “당선되면 북한에 먼저 가겠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한국 보수층과 미국의 불안을 야기한 문 대통령이 미국을 첫 방문지로 택하면서 한·미 동맹과 북한의 위협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해소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선은 한·미 간의 이상 없는 긴밀한 공조를 과시할 필요성이 커졌다.

 

워싱턴 외교가에선 오히려 문 대통령의 ‘수(手)싸움’에 더 관심이 쏠린다. 한·미 양국이 북한을 제재하는 것에는 동의하고 있지만, 이른바 ‘관여’로 일컬어지는 북한과의 대화 시작을 놓고는 상당히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북한의 확고한 ‘핵 폐기’ 의지와 이에 관한 ‘분명한 행동’이 선행돼야 북한과 대화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이전 정권 동안 남북한 간에 막혔던 협상이나 대화의 틀을 다시 복원한다는 공약을 이행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문 대통령이 방미 전에 미국 언론을 통해 일차적으로 ‘핵과 미사일 동결’을 통해 북한과 대화에 나서자는 이른바 ‘단계적 해법’을 제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의 ‘핵동결’을 통해 대화에 나서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피력하고 이에 관한 협조와 이해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북·미 대화가 성사돼 외톨이가 될 수 있는 상황을 방지하고 남북 대화에 먼저 나설 수 있는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한국 정부의 외교 관계자들은 이러한 전망에 관해 매우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놓고 있다. 한국 외교부의 한 당국자는 “양 정상의 첫 만남인 이번 회담을 ‘기싸움’으로 전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면서 내심 한·미 간에 불협화음으로 비치는 해석을 경계했다. 통일부 당국자도 “문 대통령이 남북 대화 재개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문제 때문에 이번 정상회담에서 엇박자가 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전망했다.

 

워싱턴의 한 외교 전문가는 “표면적으론 긴밀한 공조를 내세우겠지만, 사드 문제 등 예민한 사항들이 많아 물밑으론 치열한 논란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그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또 다른 변수는 이른바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북한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전망했다. 이 전문가는 “최근 북한이 공개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으로 양국 정상의 의지를 테스트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의 한 외교 전문가는 이러한 전망에 관해 “북한이 갓 정권교체를 달성한 문 대통령의 입지를 크게 축소시킬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 “북한은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를 지켜볼 것”이라는 상반된 의견을 내놨다. 또 다른 전문가도 한·미 정상회담 전망에 관해 “최근 북한에서 송환된 미국 대학생 사망 사건 등 변수가 많아 현재는 지켜보고 있을 뿐”이라며 말을 아꼈다. 한·미 정상회담이 한·미 간의 긴밀한 공조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지에 온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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