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역사적 참패’를 불러온 네 장면
  • 김회권 기자 (khg@sisajournal.com)
  • 승인 2017.07.03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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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석→23석,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참패한 아베의 자민당

 

'역사적 참패'

 

지방선거에 불과하다고 위로하기엔 너무나 완벽한 참패였다. 그래서 일본 언론도 ‘역사적 참패’라고 규정했다. 7월2일 발표된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고이케 도지사가 이끄는 ‘도민퍼스트회’가 추천인사까지 포함해 55석을 차지하며 1당이 됐다. 신생정당이 엄청나게 약진한 결과가 나왔다. 고이케 지사와 연대한 공명당이 23석을 얻으며 이들은 총 127석 중 79석을 얻어 과반을 넘었다. 반면 자민당은 23석을 얻는데 그쳤다. 절대 강자로 질주할 것 같았던 아베 총리는 왜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야 했을까.

 

절대 강자로 질주할 것 같았던 아베 총리는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처참한 성적표를 받으며 국정 운영에 차질을 빚게 됐다. ⓒ 사진=AP연합

 

1. 수의대 발언에 당황한 총리 주변

 

이번 선거에서 뜨거운 감자는 수의대였다. 6월24일 고베 강연에서 아베 총리는 “이마바리시에 한정할 필요는 없다. 지역에 관계없이 2~3개의 수의대 신설을 인정하겠다”고 말했는데 이게 논란이 됐다. 수의대로 곤란을 겪는 아베의 입에서 나온 이 얘기는 주변과 논의된 적이 없던 내용이었다. “소나 돼지의 수는 해마다 감소하고 애완동물의 숫자도 정체 중이기 떄문에 수의사는 과잉공급이 될 우려가 있다. 그래서 학부 신설을 허가하지 않는다”는 게 소관 부처인 문부과학성의 기본 입장이다. 그런 부처의 입장과 반대되는 이야기가 총리의 입에서 나온 셈이다. 

 

왜 수의대가 문제였을까. 아베는 수의대 특혜 신설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5월17일 아사히신문은 오카야마(岡山)현에 위치한 학교법인 '가케(加計) 학원'이 이마바리시에 수의학부 신설을 허가 받는 과정에서 아베 총리의 개입이 있었을 지도 모르는 문서를 입수해 공개했다. 이 학원의 이사장은 아베의 친구다. 

 

“2018년 4월 개학을 전제로 가장 짧은 스케줄을 작성해주면 좋겠다”는 내용을 담은 이 문서에는 “관저의 최고 레벨이 말한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우리로 따지면 “VIP가 말했다”인데 결국 아베 총리의 뜻을 암시하는 내용이었다. 실제 일본 정부는 지난해 11월 52년 만에 수의학부의 신설을 허용할 방침을 결정했으며, 지난 1월 가케학원에 수의학부 신설을 허가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수의대 전체 지원자수가 입학 정원의 15배다. 계속 (허가를 위해) 손을 드는 학교가 있을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총리 발언을 지원사격했지만 야당들은 “그동안 정부의 설명을 전면적으로 뒤집는 발언이다”며 거세게 공격했다. 아베의 발언은 자신의 친구가 운영하는 학원 재단에만 우대했다는 비판을 비켜가기 위한 변명으로 인식됐다. 

 

도민퍼스트회를 이끈 고이케 지사(사진)의 높은 지지율과 개인적인 호감보다도 자민당이 자멸한 측면이 크다는 게 일본 언론의 분석이다. ⓒ 사진=AP연합

 

2. 자민당 내부도 모르는 개헌 플랜

 

아베는 도쿄도의회 선거 전 자민당의 헌법개정안을 “올 임시국회가 끝나기 전에 중의원 헌법심사회에 제출하겠다”고 말하며 개헌 일정을 앞당길 뜻을 내비쳤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들은 자민당이 당황했다. 자민당의 한 간부는 “사전에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내부 비판이 이어졌다. 아베의 측근인 시모무라 하쿠 자민당 간사장 대행은 “11월 초까지 (개헌안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지만 자민당 내부에서는 “당내 이견 조정을 할 수 없다”며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개헌 조급증에 대한 반박이 날아들었다. 후나다 하지메 자민당 개헌추진본부장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개헌세력이 3분의2를 차지하고 있을 때 빨리 발의해 버리자는 생각은 국민투표에서 부메랑이 돼 날아 올 가능성이 크다”고 썼다. 이시바 시게루 전 지방창생담당상은 예측하기 어려운 총리의 언행이나 추락하는 내각 지지율을 두고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무서운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들의 비판보다 타격이 컸던 건 일부 언론에서 제기된 건강 이상설이었을 거다. 수의대 발언, 개헌 발언 등 합의되지 않은 말들을 내뱉자 총리의 건강을 의심하는 눈길이 생겼다. 

 

 

3. 자민당 의원의 폭언․폭행 소란

 

또 다른 소란이 있었다. 6월22일 자민당의 중의원 의원인 도요타 마유코의 비서 폭행 사건이 언론에 보도됐다. 5월20일 운전석 뒷자리에 도요타를 태우고 운전 중이던 남자 비서는 도요타에게 욕설과 함께 폭행을 당했다. 이 내용의 녹음본은 인터넷에 공개됐고 파장이 확산됐다. 

 

도요타는 보도가 나온 다음날인 6월23일 탈당계를 제출했다. 하지만 호소다 히로유키 자민당 총무회장이 6월27일 기자회견에서 “(비서 폭행에도) 여러가지 사정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며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해 역풍을 맞았다. 특히 도요타가 아베와 같은 파벌인 호소다(細田)파 소속이기 때문에 옹호한 것 아니냐는 눈총을 샀다. 

 

6월22일 자민당의 중의원 의원인 도요타 마유코의 비서 폭행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며 자민당에는 악재가 겹쳤다.

 

4. 자위대를 향한 자민당 지지 요청

 

6월26일, 아베는 도쿄도의원 선거 지지 유세에 돌입했다. 다만 4년 전 같은 선거와 다른 점은 가두연설을 피했다는 점이다. 아베의 유세는 모두 실내에서 벌어진 연설회로 제한됐다. “길거리에 서서 총리가 응원 연설을 하는 게 오히려 야유가 집중될 수 있다” “총리가 와도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대신 자민당 집행부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아들이자 미남 정치인으로 유명한 고이즈미 신지로 중의원 의원을 적극 활용하기로 하며 활로를 찾아 나섰다. 그런데 이 모든 노력을 깨버린 건 6월27일 이나다 토모미 방위상의 한마디였다. 방위상인 그가 지지유세 중 “자위대에 (자민당 지지를) 부탁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비판의 포화가 쏟아졌다. 자위대의 정치 행위 제한을 무시하는 발언을 방위상이 직접 했기 때문이다. 자민당조차 "무지한 탓에 나온 발언"이라는 비판이 나왔고 스스로 발언을 철회했지만 야당은 방위상의 사임을 요구했다. 

 

이렇게 악재에 악재를 거듭한 아베의 자민당은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역사적 참패'를 맛봐야 했다. 최종 투표율은 51.27%로 2013년 직전 선거보다 7.77% 포인트 높았다. 높은 투표율이 여당을 응징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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