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는 ‘노이즈 마케팅’의 귀재인가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7.05 13:17
  • 호수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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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설수의 아이콘’ 설리, 그녀가 일부러 대중의 질타를 자초하는 이유는

 

‘지켜왔던 신념만 믿고 다른 음악은 철저한 자본주의의 상술이라 믿었지. 하지만 이제야 깨달았다네.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다는 것을. 나는 지금 설리에게 빠져 있기 때문에.’

 

인디밴드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이 2010년에 발표한 《알앤비》의 한 대목이다. 입소문으로 퍼져나간 전설의 인디 히트곡으로, 밴드 멤버가 음악성을 포기하고 주류 상업문화에 투신한다는 자조적인 내용의 노래다. 여기에 설리가 등장한다. 인디 음악인에게 인생행로를 바꿀 정도의 충격을 안겨준 사람이 바로 설리라는 설정이다.

 

설리는 당시 걸그룹 에프엑스의 멤버였다. 데뷔하자마자 남성팬들 사이에서 ‘설리 신드롬’이 터졌다. 인기가 극에 달하면 고유명사가 대명사처럼 일반화되는 현상이 생긴다. 김태희·전지현은 미인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일반화됐다. 설리도 귀엽고 사랑스럽고 예쁜 아이돌 스타를 가리키는 대명사로 일반화됐다. 그러니 노래 가사에까지 나온 것이다. 그대로 활동을 이어갔으면 수지·아이유 등과 함께 국민여동생 트로이카 시대를 구가하며 3대 ‘백억 소녀’ 반열에 오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설리는 추락의 길로 갔다. 현재 그녀는 ‘구설수의 아이콘’이다. 부정적인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엔 김수현 주연의 신작 영화 《리얼》에 조연으로 출연했는데, 영화 홍보 과정에서 엉뚱하게도 최고의 한류스타 김수현이 아닌 설리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기현상까지 나타났다. 설리 논란이 다른 이슈를 압도한 것이다. 설리 기사가 포털에 걸리면 순식간에 비난 댓글들이 쌓인다. 불법 사건에 연루되지 않고도 이렇게 짧은 시간에 수직하락하며 대중의 질타를 자초한 아이돌 스타는 없었다. 처음 보는 유형의 연예인이다.

 

© 사진=뉴스뱅크이미지

 

‘설리 기행의 끝은 어디인가!’ 탄식도

 

설리는 2005년에 한 예쁜 어린이 선발대회 수상에 이어 드라마 《서동요》 아역으로 데뷔했다. 사극 장인 이병훈 PD가 “신인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연기를 잘한다”고 했을 만큼 높은 평가도 받았다. 연기를 하던 중 SM 오디션에 도전해 바로 합격했다. 2009년에 에프엑스로 초스피드 데뷔해 삼촌팬들을 사로잡았다. 그야말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최고의 스타였다.

 

그런데 태도가 이상했다. 데뷔 당시 인터뷰를 진행했던 기자에 따르면, 다른 멤버들이 모두 정상적으로 인터뷰에 임하는 동안 설리만 기대 앉아 하품을 하는 등 이상한 태도를 보였다고 회고한다. 그런 신인은 설리가 유일했다고 한다. 그러다가도 질문하면 너무나 귀엽고 발랄하게 말해 사람을 놀라게 하는 등 종잡을 수 없는 면이 있었다고 한다. 설리는 무대 위에서의 불성실 논란, 중국어 욕설 논란 등이 있었지만, 팬들의 압도적인 지원 속에 자리를 지켜나갔다.

 

결정적으로 그녀의 이미지에 금이 간 건 최자와의 열애였다. 2013년, 일반적인 열애기사에 댓글이 1000~2000개 정도 달리던 때 설리 열애설 기사엔 6400여 개의 댓글이 터졌다. 14살 차이와 최자의 이름에서 느껴지는 묘한 뉘앙스 때문에 사람들이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이다. 심지어 이슈를 덮기 위한 ‘정권 기획설’까지 제기될 정도였다.

 

다음 해 에프엑스의 컴백 활동 당시 설리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활동을 태만하게 해 팬들을 실망시켰다. 에프엑스의 다른 멤버들이 활동과 연습에 전념할 때 설리만 참여하지 않고 음악 외적인 뉴스로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결국 팀을 탈퇴한 후 SNS에 본격적으로 설리의 사진이 공개됐는데, 그 내용이 아이돌 요정으로선 상상초월 점입가경이었다. 팬티 노출, 노브라, 장애인 비하, 남성의 성기를 연상하게 하는 음식 등 선정적인 사진을 비롯해 자신의 이미지를 완전히 망가뜨리는 엽기적인 모습까지 거침이 없었다.

 

팬들은 설리에게 ‘모든 걸 용서할 테니 제발 예쁘고 사랑스러운 모습과, 무대 위에서 3분 동안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 달라’고 했지만, 설리는 마치 침이라도 뱉듯이 정반대의 모습만 보여줬다. 엄청난 비난이 가해졌다. 그래도 설리는 태연히 엽기적인 사진들을 공개했다. 최근 《리얼》 홍보 기간엔 장어가 불판 위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희화화하는 영상을 올려 질타를 받았다. 비난하는 네티즌들을 향해 설리는 ‘니네가 더 못됐다’라며 반말로 응수했다. 분위기가 흉흉한데 설리는 태연히 노래방 기계 앞에서 엉덩이춤을 추는 영상을 올려, ‘설리 기행의 끝은 어디인가!’라는 탄식을 불러일으켰다.

 

설리가 자신의 SNS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 설리 인스타그램 캡처

 

‘콘텐츠 없는 스타’의 길 가는 할리우드형 스타

 

네티즌들 사이에선 설리 ‘관종’(관심종자의 줄임말)설, 노이즈 마케팅설 등이 제기된다. 관심 받고 뜨기 위해서 일부러 잡음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설리 노이즈가 영화 《리얼》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였고, 결과적으론 《리얼》도 더욱 유명해졌다. 결국 설리의 영악한 노이즈 마케팅에 모두가 놀아났다는 지적이다. 정말 그런 것일까.

 

설리가 관심을 바라고 영악하게 계산을 하는 사람이어서 치밀한 마케팅을 할 정도라면, 굳이 국민여동생 걸그룹의 길을 ‘걷어찬’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당시 설리는 정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었다. 그런데도 자기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태연히 모욕하고 무시하며 엽기적인 행각을 펼쳤다. 사람들이 돌을 던지면 더 이상한 모습으로 응수해 집단 조리돌림을 자초했다. 바로 그래서 설리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유형이라는 것이다. 본인의 실수나 잘못으로 욕을 먹은 사람은 있어도, 일부러 욕을 찾아 먹는 아이돌 소녀스타는 없었다. 심지어 설리는 자신의 망가짐, 추락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그녀를 대중은 단죄했다. 설리가 불법 행위를 하거나 남을 해치지 않았는데도 대중에게 설리는 유죄였다. 음주운전보다도 설리의 기행이 더 질타를 받았다. 이것은 한국 사회의 보수성을 말해 준다. 예쁘고, 사랑스럽고, 순수한 모습에서 벗어나는 여성 아이돌을 용납 못하는 것이다. 팀 활동을 원하면 하고, 싫으면 탈퇴하는 것인데 대중은 거기에도 도덕적 가치판단을 개입시켰다. 설리의 탈퇴는 ‘악’이라는 낙인이다. 아이돌이 무대 위에서 열심히 뛰는 모습만을 보길 원하는 욕망은 ‘선’으로 포장했다. 이러다 보니 설리를 옹호하는 사람도 나타난다. 배우 김의성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선택한 방법으로 스스로를 표현하는데 거기 쫓아가서 ‘감 놔라 배 놔라’ 하고 ‘인생 이렇게 살면 안 된다’ 식의 충고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네티즌을 비난한 것이다.

 

그런데 설리가 이렇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막 나가는’ 삶을 살자, 그것이 결과적으로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불러일으킨 건 맞다. 이렇다 할 활동이 없기 때문에 침체기로 접어드는 것이 상례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여전히 핫스타로 유지시킨 건 노이즈의 힘이었다. 국민여동생 자리를 걷어찰 땐 스스로 명성을 포기한 것이지만, 최근 들어 대중의 비난이 빤한 영상을 지속적으로 올리는 건 그런 관심을 원해서이기 때문 아닌가라는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어쨌든 스타였던 사람은 소외되는 걸 싫어하는 법이니까.

결국 설리는 남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본인 하고 싶은 대로 막 나가다, 그게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돼 논란으로 스타성이 유지되고, 스스로 그 효과를 의식해 더욱 논란을 일으키며, ‘콘텐츠 없는 스타’의 길을 가는 할리우드형 유명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교포 출신이 아닌데도 할리우드적으로 살아가는 자생적 할리우드형 스타인 것이다. 

 

 

노이즈 마케팅의 힘…이름만 알리면 ‘악명’도 ‘유명’이 된다? 

 

설리 사례에서 ‘노이즈 마케팅’의 힘을 알 수 있다. 설리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노이즈는 별다른 활동도 하지 않는 설리의 톱스타 자리를 지켜줬다. 최근 《섹션 TV연예통신》이 새 코너를 시작하며 2주 연속으로 설리를 다뤘다. 제작진이 설리가 지금 가장 핫하다고 본 것이다. 미국에선 킴 카다시안, 패리스 힐튼 등이 논란으로 스타덤에 오른 사례다. 트럼프 미 대통령도 기행과 논란으로 화제의 중심에 선 결과 대권까지 거머쥐었다.

 

과거 영화 《디워》의 흥행도 그렇다. 심형래 감독은 애국심 마케팅만 의도했지만, 그것이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결과적으로 노이즈 마케팅 효과가 생겨났다. 막장드라마도 노이즈를 먹고 산다. 대표적으로 《아내의 유혹》이 얼굴에 점 찍고 다른 사람이 된다는 설정으로 비난을 초래하며 이름을 떨쳤다. 영화제 레드카펫에서 노출 사고를 일으키는 신인 여배우도 비슷한 경우다. 오인혜는 레드카펫 노출로 질타를 받았지만 결국 이름을 알렸고, 이병훈 PD의 사극에 캐스팅됐다. 결사적으로 이름을 알려야 하는 신인 걸그룹들도 노출 논란을 일으킨다. 방송에 못 나갈 걸 뻔히 알면서 뮤직비디오와 안무를 선정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스텔라가 그렇게 이름을 알렸다.

 

클라라·오인혜 ⓒ 사진=연합뉴스

이런 사례들은 너무나 많다. 클라라·이태임 등 연예인부터 《슈퍼스타K》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 낸시랭 같은 미술계 인사 등 수많은 사례들이 논란으로 이름을 알렸다. 교통사고 소식이나 음원유출 소식을 컴백 시기에 맞춰 내는 경우도 있다. 최근엔 넷플릭스가 《옥자》 논란으로 톡톡히 효과를 봤다. 극장가와 충분히 협의하지 않고 상영일정을 통보한 것에서 넷플릭스가 극장 측의 반발을 예상했을 거란 주장이 있다. 그 반발 덕에 넷플릭스는 유명해졌다. 지난 대선 때 홍준표 후보는 연일 막말 논란을 일으키며 한 자릿수 지지율을 20%대까지 끌어올리기도 했다.

 

경쟁이 심해지면서 이름 알리기가 힘들어지자 사람들은 인지도 높이기에 사활을 건다. ‘악명’이라도 상관없다. 일단 이름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알리기만 하면 악명도 결국 유명이 된다. 그래서 악명을 무릅쓰고 논란을 일으켜 기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논란과 기사로 유명해지는 것이 콘텐츠와 홍보에 투자하는 것보다 훨씬 싸게 먹힌다. 대중이 점점 ‘유명’ 그 자체를 선망하기 때문에 유명해지려는 노이즈는 앞으로 더욱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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