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으로 빠진 미제 사건들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7.05 14:30
  • 호수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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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로 수사에 탄력…범인 검거 위한 경찰 추격전 속도 내야

 

지금 우리 사회는 하루에도 크고 작은 사건들이 수없이 발생한다. 대부분의 사건은 해결되고 있으나 공소시효가 지나 영구미제로 남은 사건도 적지 않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화성연쇄살인 사건, 대구개구리소년 사건, 이형호군 유괴살해 사건 등 3대 미제 사건도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았다.

 

1991년부터 1994년까지 충남 대천에서 잇달아 일어난 ‘영유아 실종·살해 사건’도 범인을 잡지 못하면서 15년 공소시효가 종료되고 말았다. 경찰의 수사는 진전 없이 헛바퀴만 돌았고 결국 미궁으로 빠졌다. 3년 동안 4명의 아이가 납치되고 1명의 아이가 살해됐는데도 ‘완전범죄’가 되는 것을 막지 못한 것이다.

 

1991년 9월21일 교통방송(TBS) 김은정 아나운서(35)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김 아나운서는 이날 오후 4시쯤 퇴근해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자신의 집으로 귀가했다. 그녀는 밤 9시에 집에서 나와 50여m쯤 떨어진 고모 집에 들러 저녁식사를 했다.

 

그런 다음 자신의 집에 돌아와 다시 외출 준비를 했다. 시내 한 병원에 입원 중인 친구의 병문안을 가기로 돼 있었다. 핸드백 안에는 월급으로 받은 현금 100만원이 있었다. 김 아나운서는 친구의 병문안을 가지 않았고, 그 뒤 행방불명됐다.

 

경찰은 김 아나운서의 ‘가출신고’가 접수된 후 다각도로 수사를 벌였다. △치정관계 은신 △교통사고 △강도 살인 △납치·인신매매 △자진 도피 등이다. 아무런 흔적도 발견하지 못하자 공개수사로 전환하고 전단지를 만들어 배포하고 제보를 기다렸으나 신빙성 있는 것이 없었다. 여러 정황으로 보면 범죄에 희생됐을 가능성이 컸지만 경찰수사는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영구미제로 남았다.

 


 

매년 1만 건 이상 증가 추세

 

1999년 11월5일 제주시 삼도2동에서 피살된 이승용 변호사(44) 사건도 범인을 잡지 못했다. 이 변호사는 예리한 흉기로 가슴(심장)과 배를 3차례나 찔리고 왼쪽 팔꿈치 부분은 흉기에 관통당한 채였다. 운전석에는 피가 흥건히 고여 있었고, 차량 밖 도로에도 핏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경찰수사는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사건 발생 1년 뒤 수사본부는 해체됐고, 6000여 쪽의 사건 기록만을 남겼다.

 

당시 유족 측은 “시간이 지나도 범인은 있다”라며 “경찰이 수사를 하지 않고 미제라며 손을 놓고 있다. 하소연할 곳도 없다”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영구미제 사건은 범인의 입장에서는 ‘완전범죄’에 성공한 것이다. 범인은 지금 어디에선가 또 다른 범죄를 꿈꾸며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2000년 이후 국내 미제 사건은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하거나 용의자가 해외 등으로 도피해 기소 중지된 것도 2010년 한 해에만 20만 건이 넘었고, 매년 1만 건 이상이 증가하는 추세다. ‘기소중지’는 수사를 일시적으로 중지하는 것을 말한다. 보통 피의자 소재 불명 등 수사를 종결할 수 없는 경우에 처분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15년 7월31일부터 2000년 8월 이후 발생한 모든 살인 사건의 공소시효가 폐지된 것이다. 일명 ‘태완이법’으로도 불린다. 경찰청은 2011년부터 전국 17개 ‘미제 사건 전담수사팀’을 설치해 운영해 오고 있다. 그러나 실제 성과에서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력 부족과 전문성 부족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경찰의 소극적인 수사의지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경찰은 최근 장기 미제 실종으로 남아 있던 2건을 한꺼번에 해결했다. 경찰이 낸 성과이기는 하지만 일각에서는 적극적으로 수사했다면 사건 해결이 더 빨라졌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범인 동거녀의 어머니가 실종신고를 했을 때인 2011년에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을 6년이나 끌었다고 보는 것이다. 사건 내막은 이렇다.

 

2010년 11월18일 경남 창원 마산합포구 현동의 야산에서 백골 상태인 시신이 발견됐다. 벌목공이 이곳을 지나다 시신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신원확인이 안 돼 무연고 처리됐다. 시신이 백골 상태라서 사망원인도 알 수 없었다.

 

약 1년 후인 2011년 12월 부산 북부경찰서에 “딸이 보이지 않는다”며 실종신고가 접수됐다. 경찰은 처음에는 수사에 착수하지 않다가 나중에야 담당자를 배정했다. 경찰이 탐문 수사에 나서면서 동거남 박아무개씨(48)의 존재가 파악됐다.

 

경찰은 박씨의 금융계좌를 추적하다가 그가 모친의 재산을 모두 챙긴 뒤 기초연금까지 가로챘다는 것을 확인했다. 박씨 모친의 적금 1800만원이 실종 직전 해약돼 박씨 계좌로 이체된 것이다. 또 83회에 걸쳐 모친의 기초연금 1100여만원도 받아 챙겼다. 더욱이 박씨의 모친은 7년 이상 금융거래와 전화통화 등 일상생활을 한 흔적이 없었다. 경찰은 모친과 동거녀의 실종에 박씨가 관여돼 있을 것으로 보고 그의 행적을 추적했다.

 

박씨는 가명을 쓰고 노숙자로 행세하며 경찰의 추적을 피해 다녔다. 그러다 지난 6월1일 마산합포구 창동의 한 교회 인근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박씨는 경찰의 추궁에 “모친과 동거녀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박씨에 따르면 2009년 6월18일 마산합포구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던 모친(66)을 다른 병원으로 가자며 자신의 승합차에 태운 후 야산에 데려가 차 안에서 목 졸라 살해했다. 박씨는 숨진 모친의 시신은 야산에 유기했다.

 

박씨는 또 2011년 8월말 오후 11시쯤 마산합포구 해안도로의 차 안에서 8년 동안 함께 살았던 동거녀(당시 44세)를 생활비 문제로 다투다 격분해 목 졸라 살해한 후 시신은 바다에 버렸다. 동거녀의 시신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박씨는 2건의 살인과 시신유기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04년 2월9일 실종됐다 숨진 채 발견된 여중생 엄아무개양의 어머니가 빈소를 찾아 오열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범인 미검거에 두 번 우는 피해자와 가족들

 

강력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과도한 불안, 공포 등 장기간의 정신적 후유증을 경험한다. 본인들도 이런 고통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쉽지 않다. 기자가 만난 수많은 범죄 피해자들과 가족들도 “순간적으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가눌 길이 없다”고 호소했다.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작점은 범인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다. 문제는 가족이 살해당하는 등 회복 불가능한 범죄피해를 입었는데도, 범인이 잡히지 않아 미제 사건으로 남는다면 피해자와 가족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수많은 미제 사건 피해자 가족들은 지금도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2003년 11월5일 오후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소재 동남중학교 2학년이던 엄현아양(15)이 귀가 길에 실종됐다. 경찰은 단순가출이나 교통사고, 유괴 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였다. 엄마에게 전화한 후 실종된 엄양을 ‘단순가출’로 본 것 자체가 난센스였다. 금품을 요구하는 전화도 없었고 엄양이 귀가하던 도로는 폭이 2m에 불과한 농로임을 감안하면 유괴나 뺑소니 교통사고의 가능성도 거의 없는 상태였다.

 

사건 발생 96일 만인 2004년 2월8일 오전 소흘읍의 한 배수로에서 엄양의 시신이 발견됐다. 실종 당시 입고 있던 교복과 속옷 등이 모두 벗겨진 채 알몸 상태였고, 양손은 얼굴 쪽으로, 다리는 배 쪽으로 웅크린 자세를 하고 있었다. 시신은 얼굴에서부터 가슴까지 부패가 심해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데 엄양 시신의 손톱과 발톱에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다. 매니큐어는 매우 조잡한 상태로 칠해져 있었고, 손가락과 발가락에도 번져 있는 상태였다. 바로 범인의 짓이었다. 경찰은 수사본부를 꾸려 1년간이나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으나 현장 근처에 폐쇄회로(CCTV)가 없는 데다 다른 단서나 제보도 없어 수사는 장기 미제로 남았다. 이 사건은 태완이법 적용을 받아 범인을 검거하면 처벌이 가능하다.

 

2008년 9월22일 경기도 의정부시 녹양동의 한 주택에서 최아무개양(14)이 성폭행당한 후 살해됐다. 범인은 최양이 외출했다 들어오자 그 뒤를 따라 집 안으로 침입했다. 무방비 상태였던 최양에게 흉기를 들이대며 위협했고, 겁에 질린 최양을 성폭행했다. 집 안에는 당시 최양 혼자밖에 없었다. 외출했던 어머니가 들어오는 인기척이 들리자 범인은 최양의 왼쪽 가슴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의정부 여중생 성폭행 살인 사건 용의자 수배 전단 © 의정부 경찰서 제공


 

범인 못 잡으면 ‘완전범죄’

 

경찰은 수사본부를 차리고 형사 60여 명을 투입해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다. 최양 어머니에게 최면을 걸어 몽타주도 만들었다. 하지만 수사는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결국 경찰은 수사본부를 결성한 지 50일 만에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해체하기에 이른다. 당초 이 사건은 오는 2033년 9월22일을 기점으로 영구미제 사건이 될 뻔했으나 살인죄 공소시효가 폐지되면서 수사가 재개됐다.

 

유일한 단서는 범인이 남긴 유전자(DNA)다. 이것만 일치하는 용의자가 나타나는 순간 사건이 해결될 수 있다. 현재 이 사건은 경기북부경찰서 장기미제 사건 전담수사팀에서 맡고 있다.

 

2014년 1월29일 청주 모 고등학교 3학년 이다현양(18)이 행방불명됐다. 졸업을 앞둔 이양은 이날 낮 12시10분쯤 친구를 만난다며 집을 나섰다. 하루가 지나도 이양이 돌아오지 않자, 가족들은 다음 날 오후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경찰은 수사전담팀을 꾸려 이양을 찾기 시작했다. 이양은 2013년 8월부터 12월까지 4개월 동안 청주의 한 고시텔에서 생활했다. 실종 당일 이양의 모습은 오후 1시쯤 고시텔 인근 커피숍 앞 CCTV에 마지막으로 포착됐다.

 

경찰은 이양이 택시에 두고 내린 것으로 추정되는 휴대전화를 확보했으나 통화 및 문자메시지 기록이 모두 삭제돼 별다른 단서를 얻지 못했다. 이양이 삭제한 것인지 아니면 제3의 인물이 의도적으로 그런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이양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평소 자주 연락을 주고받던 고시텔 관리인 한아무개씨(50)를 수사 선상에 올렸다. 그런데 이양 생사의 열쇠를 쥐고 있던 한씨가 인천의 한 공사장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한씨의 죽음으로 이양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 밖에도 전 국민을 분노하게 했던 많은 사건들이 아직도 ‘미제’로 남아 있다. 비록 공소시효가 없어졌다 해도 범인을 잡지 못하면 ‘완전범죄’가 된다. 범인을 검거하기 위한 경찰의 추격전에 속도를 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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