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냐, 공부냐’ 갈등한 수재형 골퍼 유소연
  • 안성찬 골프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7.05 16:46
  • 호수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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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의 여왕’ 유소연, 세계랭킹 1위에 등극하다

 

“유소연은 예의 바르고 겸손하다. 유소연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5월까지 ‘톱10’ 밖으로 벗어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정말 인상적이었다. 유소연은 훌륭한 선수이고 좋은 라이벌이다. 그녀가 우승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작년에도 좋은 경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세계랭킹 1위가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시간문제였다고 생각한다.”

 

유소연(27·메디힐)이 세계여자프로골프랭킹 1위에 오르자 미국의 대표주자 스테이시 루이스가 극찬한 내용이다. 이에 대해 유소연은 “세계 1위가 된 것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특히 한 시즌에 2승을 거둔 것도 처음이다. 세계 1위까지 차지하게 돼 꿈만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첫 메이저대회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우승하며 ‘호수의 여왕’에 오른 그는 6월25일 월마트 NW 아칸소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선두 아리야 주타누간(태국)을 2위로 끌어내리고 1위에 오른 것이다.

 

유소연이 6월25일 LPGA투어 월마트 NW 아칸소 챔피언십에서 최종합계 18언더파 195타로 우승을 차지했다. ⓒ 사진=연합뉴스


 

“시즌 준비하며 퍼팅 중점적으로 연습”

 

이전까지 주타누간, 리디아 고(뉴질랜드)에 이어 세계랭킹 3위였다. 그는 “1위는 멀게만 보였기 때문에 이렇게 한 번에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다. 꿈을 이뤘는데 아직도 꿈속에서 사는 기분”이라며 즐거워했다.

 

이번에 유소연이 세계랭킹 1위에 오른 것은 한국 선수로는 신지애(29·스리본드), 박인비(29·KB금융그룹)에 이어 세 번째다. 박인비는 “지난해까지 유소연은 퍼팅이 말썽을 부렸는데 올 시즌 들어 퍼팅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아마도 세계랭킹 1위를 오랫동안 유지할 것 같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유소연은 퍼팅에 대해 “특별히 새로운 비결은 없었던 것 같다. 퍼팅을 잘하기 위해서 오랜 시간 동안 노력해 왔다. 올 시즌을 준비하면서 퍼팅을 중점적으로 연습한 것은 사실이다. 그것들이 조금씩 쌓이면서 잘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캐머런 매코믹 코치님께 기술적인 부분을, 조수경 박사님께 심리적인 부분을 배우고 있다. 이런 부분들이 좋은 균형을 이루면서 대회 때도 편안하게 퍼팅을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됐던 것 같다”고 했다.

 

특히 이번 아칸소 우승은 유소연에게 특별하다. 2라운드에서 10언더파 61타를 쳐 골프 마니아 및 대회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미국 애리조나주 로저스 피나클컨트리클럽(파71·6331야드)에서 열린 이 대회 2라운드에서 코스레코드를 작성한 것이다. 2라운드 합계 16언더파 126타로 대회 최저타 기록, 3라운드 18언더파 195타로 토너먼트 신기록을 작성했다. 이때 스테이시 루이스는 “충격적이었다”며 놀라워했다.

 

유소연은 “지금까지 LPGA 대회에서 시즌 중에 한 번 이상 우승해 본 적이 없다. 올 시즌 멀티 우승을 하게 돼서 정말 기쁘다. ANA 인스퍼레이션 우승 때도 물론 기뻤지만 렉시 톰슨 선수와의 이상한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유소연이 진정한 우승을 한 것이 맞는가?’ ‘우승을 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얘기들이 있었기 때문에, 꼭 우승을 더 많이 해서 제 스스로 그런 해프닝 없이도 우승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게 돼 정말 기쁘다”고 밝혔다.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톰슨은 오소플레이로 벌타를 받아 유소연과 동타를 이뤄 연장전에서 유소연에게 졌다.

 

유소연이 4월2일 LPGA투어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우승한 후 연못에 뛰어들며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 사진=PENTA PRESS


 

한발 더 다가선 ‘커리어 그랜드슬램’

 

사실 유소연의 세계랭킹 1위는 우연이 아니다. 세종초등학교 시절에 방과후 수업에서 조수현 전 국가대표 감독에게 골프를 배운 그는 두뇌플레이에 강점을 갖고 있었다. 대원외고 시절 국가대표에 발탁돼 2006년 아시안게임에 골프 국가대표로 출전해 여자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2관왕을 차지할 정도로 기본기가 탄탄했다. 연세대 체육학과를 졸업한 그는 무엇보다 수재형이다. 성적이 뛰어나 ‘골프냐, 공부냐’로 한동안 갈등을 할 정도였다.

 

올 시즌 그는 경기를 잘 풀어갔다. 하지만 LPGA 볼빅 챔피언십에서 부진했던 데다 숍라이트 클래식에서는 컷오프되는 불운을 겪었다. 안 되겠다 싶어 대회를 접었다. 2주간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스스로 많이 생각해 볼 시간을 마련한 것이다.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 것일까를 고민했다. 메이저대회까지 우승했는데 갑자기 경기력이 멈춘 듯한 것이다. 이때 코치 캐머런 매코믹(호주)과 기술을 점검했다. 퍼팅에 대해 무엇이 문제인가를 집중적으로 검토했다. 결론은 집중력이었다. 스윙이나 기술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다만, 무엇에 대해 집중하느냐가 문제였던 것이다. 그리고 마음을 편안하게 갖는 것이 중요했다.

 

아칸소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이번 대회 우승의 원동력을 지난 2주간의 휴식으로 꼽고 싶다. 제 자신에 대해서 많이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진 것이 재충전으로 이어진 것 같다. 너무 급하게 경기를 준비하거나 뭔가를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경기를 준비하니 마음에 여유를 가질 수 있어서 경기를 치르며 더 즐거웠다”고 말했다.

 

2라운드가 끝나고 5타로 앞섰던 그는 “큰 타수 차로 앞서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마음이 편안했던 것은 사실이다. 반대로 ‘아 이렇게 큰 타수 차이가 나는데도 내일 잘못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1, 2라운드에서 잘했던 플레이와 비교하지 말고 그냥 해 왔던 그대로 플레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심리 담당 조수경 박사님이 ‘너무 완벽한 경기를 마음속에 그리지 말라. 그냥 하던 대로 해라’라는 좋은 말씀을 해 주셔서 압박감을 줄이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며 골프는 심리상태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메이저대회는 ANA 인스퍼레이션과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에 이어 7월 US여자오픈, 8월 브리티시 오픈, 9월 에비앙 챔피언십이 열린다. 2011년 US여자오픈 챔프인 유소연이 KPMG에서 우승하면 5대 메이저 가운데 3개 대회를 제패하며 ‘커리어 그랜드슬램’에 한발 더 다가서게 된다. 

 

유소연이 6월25일 LPGA투어 월마트 NW 아칸소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후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AP연합


 

유소연 간발의 차로 1위 등극

 

여자골프 ‘퀸’에 오른 유소연은 아리야 주타누간, 리디아 고에 이어 세계랭킹 3위였다. 시즌 2승을 챙겨서 단숨에 두 선수를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유소연은 지난 2006년 여자골프 세계랭킹이 도입된 이래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 로레나 오초아(멕시코), 미야자토 아이(일본), 크리스티 커(미국), 신지애, 청야니(대만), 스테이시 루이스(미국), 박인비, 리디아 고, 주타누간에 이어 역대 11번째 1위가 됐다. 한국 선수로는 신지애, 박인비에 이은 세 번째 경사다.

 


유소연 조련사 캐머런 매코믹

 

유소연을 세계랭커로 만든 일등공신은 국가대표 감독을 지냈던 조수현 골프 지도자다. 조 전 감독은 대학교를 다닐 때 대학연맹 대회를 휩쓸었던 유망주였으나 프로를 포기하고 아마추어로 남아 교수를 지냈다. 그러다가 후진양성을 위해 다시 교습가로 돌아왔다. 유소연이 미국에 진출한 이후에도 한동안 스윙과 멘털 지도자로서 역할을 해 줬다. 세종초교 때 유소연과 안병훈(26·CJ대한통운)을 지도했다.

 

유소연은 LPGA투어에서 장기레이스에 들어가며 코치를 캐머런 매코믹으로 바꿨다. 매코믹은 지난주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트래블러스 챔피언십 연장전에서 환상의 벙커샷으로 우승한 조던 스피스(24·미국)의 코치로 유명하다.

 

매코믹에게 특이한 것은 스피스의 우승과 유소연의 우승이 겹경사를 이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코믹은 둘 다 우승 자리에 없었다. 그는 유소연이 우승한 아칸소주에도, 스피스가 정상에 오른 코네티컷주에도 없었다.

 

매코믹은 “내 임무는 지도하는 선수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렇게 남녀 선수가 동시에 우승한 것은 처음”이라며 기뻐했다. 나란히 우승하는 시간에 매코믹은 선수를 지도하고 있었다. 스피스의 우승은 녹화 중계로 봤고, 유소연의 우승은 스마트폰으로 확인했다고 한다.

 

1997년 미국 텍사스공대를 졸업한 매코믹은 15살 때 골프를 시작했다. 코치 없이 독학한 그는 대학교 졸업 후 호주에서 두 차례 퀄리파잉스쿨에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미국 댈러스 지역의 한 골프클럽에서 일한 그는 아놀드 파머 골프아카데미에서 지도자로 첫발을 디뎠다. 그는 스피스를 12살 때부터 가르치기 시작했고, 유소연과는 지난해 초 인연을 맺었다.  

 

캐머런 매코믹 코치와 유소연 선수 ⓒ 사진=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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