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포스코는 왜 로비스트 박동선을 찾아야 했나
  • 박혁진 기자 (phj@sisajournal.com)
  • 승인 2017.07.10 11:21
  • 호수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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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국제도시 사업 韓·美 FTA 재협상 뇌관 떠올라…잭 니클라우스가 트럼프에 서한, 美 의원 40명은 FTA 주무 장관에 탄원서 보내

 

포스코가 그룹 최대 현안 중 하나인 송도국제도시 사업의 해결을 위해 ‘코리아게이트’의 로비스트로 잘 알려진 박동선씨를 접촉한 정황이 시사저널 취재 결과 드러났다. 미국 정부가 한·미 FTA 재협상과 관련해 송도국제도시 사업을 문제 삼으려 하자  포스코가 박씨를 동원해 분쟁을 해결하려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킬 만한 대목이다. 시사저널이 취재한 바에 따르면, 박씨는 권오준 포스코 회장과 한창건 포스코건설 사장 그리고 송도국제도시 사업 핵심 실무자인 포스코건설 측 강아무개 부장 등을 잇달아 만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직원은 포스코건설이 비자금을 조성해 불법정치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도 핵심 키맨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포스코가 우회적으로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사이 포스코 측 파트너인 미국 게일사(社) 역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미 의회 등을 통해 이 문제를 풀려고 하는 정황들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송도국제도시 사업은 한국과 미국이 합작한 규모로는 최대인 25조원이 투입되는 사업으로, 한때 한·미 경제동맹의 바로미터로 불릴 정도였다. 한국 정치권과 언론에서 송도국제도시 분쟁에 둔감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이 문제는 한·미 FTA 재협상 과정에서 한국 측에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보수정권 9년 동안 벌어진 일들이 문재인 정부에 부담이 되는 외교적 상황으로 비화하고 있는 것이다.

 

포스코와 미국 게일사(社)가 합작해 조성한 송도국제도시 전경. 작은 사진은 ‘코리아게이트’의 주역 박동선씨 ⓒ 시사저널 최준필·연합뉴스

시사저널이 미 하원의 한 의원을 통해 입수한 몇 개의 문건에는 미국 측이 이 사안을 외교 문제화하려는 노력들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한·미 FTA 재협상을 주장하는 의원들이 만든 모임의 대표 3인은 최근 한·미 FTA 미국 측 주무부처인 상무부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 모임에는 약 40명의 미국 하원 의원들이 소속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 직전인 6월23일 윌버 로스 미국 상무부 장관에게 전달된 이 탄원서에는 미국 회사인 게일이 한국에서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런 사례에 비춰볼 때 한·미 FTA 재협상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다음은 이들이 로스 장관에게 보낸 탄원서의 일부다.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의 공식 방문을 준비하며, 저희는 당신이 미·한 FTA에 주목해 주시길 바라며 편지를 보내드립니다. 국회의원으로서 저희는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을 바라고, 특히 수평적인 FTA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저희는 한국의 사업 관행에 얽매어 발전을 꺼리는 일부 한국 파트너들로 인해 미·한 무역관계가 저해되는 것을 더 이상 가만히 둘 수 없습니다. (중략) 한 가지 사례로 인천시 송도 IDB 부동산 개발 사업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사업은 미국 투자자들과 한국 기업(포스코E&C)이 협업을 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성공적인 사업으로 내다봤습니다. 그러나 한국 측 사업 파트너와 지난 정부의 일부 고위관료들이 정치 스캔들과 부패 논란에 휩싸여 이 사업 계획은 큰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미국 기업들이 송도 사업권을 잃었으며, 지금까지도 사업권을 되찾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명 전직 프로골퍼인 잭 니클라우스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낸 사실도 확인됐다. 잭 니클라우스는 송도국제도시에 위치한 골프장인 잭 니클라우스CC를 설계했다. 2015년 우리나라가 아시아에서 최초로 미국과 인터내셔널팀 간 골프대항전인 프레지던트컵을 유치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상 잭 니클라우스의 힘이었다. 잭 니클라우스는 트럼프 대통령과도 막역한 관계로 알려져 있다. 포스코는 지난해 말 잭니클라우스CC의 경영권을 가져오려다 실패한 바 있다. 그는 6월28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아래와 같이 언급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으로 한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가를 방문했습니다. 본 사업은 지난 2년 동안 한국 기업 파트너 중 하나인 포스코로 인해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포스코는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방문 당시 한국 기업 대표단에 포함되지 못한 것으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 송도 사업에 지분을 갖고 있는 다른 미국과 한국 회사들은 새로 들어선 한국 정부가 앞으로 사업 성공에 저해가 되는 불공정한 사업 방식이 만연한 환경을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미국 기업들은 송도 사업과 관련해 지난 몇 년간 ‘사취(詐取)’를 당했으며, 이러한 안타까운 상황은 미·한의 관계 발전을 위해서 분명히 바로잡아야 할 부분입니다.”

아직 외부에 드러나고 있지 않지만 포스코 측 역시 여러 경로를 통해 어떻게든 논란을 잠재우려는 것으로 보인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포스코 전 사외이사이자 현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으로 일하는 제프리 존스 미국 변호사의 이메일에는 이런 정황들이 자세히 나와 있다. 이메일은 제프리 존스가 미국 측 중재인에게 보낸 것으로 미국 의회에도 제출돼 있다. 이메일에는 ‘코리아게이트’ 로비스트 박동선씨가 여러 번 언급되고 있다.(기사 맨 하단 박스기사 참조) 이메일에는 포스코 측이 제프리 존스와 박씨를 통해 게일 측에 협상을 제안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메일 전문 중 몇 가지 핵심 부분은 아래와 같다.

 

유명 전직 프로골퍼 잭 니클라우스가 송도국제도시 사업과 관련해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왼쪽). 미국 하원 의원들이 송도국제도시 사업을 계기로 한·미 FTA 재협상을 해야 한다며 미국 FTA 주무부처인 윌버 로스 상무부 장관에게 보낸 탄원서. © 시사저널 최준필

 

포스코 수뇌부, 우회적으로 문제 해결 시도

 

- 박동선씨가 저(제프리 존스)에게 한 사장(포스코건설 사장)과 강아무개씨(포스코건설 측 송도국제도시 사업 담당자)를 만나보라고 전달해 직접 만났습니다.(I was asked by an individual known as Park Dong Sun to meet with President Han and Kang DeGaulle yesterday which I did.)

 

- 박씨는 미국 측 중재인과 그의 측근들을 알고 있으며, 한 사장과 권 회장(권오준 포스코 회장)도 박씨를 잘 알고 있습니다.(Mr. Park knows Mr.000 and others close to Mr.000 and he is also very well known by President Han and Chairman Kwon of POSCO. Mr.000은 미국 측 중재인으로 필요에 의한 익명처리.)

 

- 박씨는 내일(5월30일) 저녁 권회장과 식사를 할 예정이며, 스탠(게일 회장)이 포스코와의 갈등을 이하에 시사된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의사가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당신에게 연락하라고 나에게 부탁했습니다.(Mr. Park is scheduled to have dinner with Chairman Kwon of POSCO tomorrow evening and he asked that I reach out to you to determine whether Stan has any interest in resolving the conflict with POSCO along the lines suggested below.)

 

- 박씨는 한 사장이 말한 것이 실질적으로, 법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한 여부를 분명히 말하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설령 그 시나리오가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포스코에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미국 정치 관료들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현재 포스코를 상대로 반덤핑 규제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게 현명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입니다.(Mr. Park could not say whether such a scenario would be possible practically or legally, but he indicated that even if it is possible, doing so would not be wise for POSCO as it would irritate the political operatives in the U.S. which would not be good for POSCO in the long run, particular with the antidumping action going on against POSCO.)

 

“권 회장, 박동선 만날 예정이다”

 

제프리 존스는 현재 포스코와 게일 사이에서 중재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이 이메일이 허위사실을 바탕으로 작성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메일 내용대로라면 포스코가 박씨에게 게일사와의 분쟁에 있어서 최소한 자문 역할이나, 미국 측 창구 역할을 원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박씨는 여전히 트럼프 소속 정당인 공화당 주요 정치인들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어느 쪽이든 포스코가 우회적 방법을 알아보고 있다는 의미다. 또한 이 이메일이 사실을 바탕으로 작성됐을 가능성이 큰 이유는 말미에 언급된 내용 때문이다. 제프리 존스와 만난 포스코건설 측 강아무개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강씨에 따르면 패키지4가 집행될 것이며, 익일 정도에 패키지4에 대해 디폴트를 일으킬만한 사유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According to Kang, package 4 is due and the event of default may occur in the next day or so in respect of package 4.)

 여기서 강씨가 말한 패키지4는 총 6개로 구성돼 있는 송도국제도시 사업권 중 하나다. 이 이메일이 작성된 시기는 5월30일로 패키지4에 대출을 내준 금융회사들은 6월 중순, 실제로 패키지4 사업에 대한 디폴트를 선언했다. 그리고 디폴트 선언 다음 날 포스코건설은 3600억원을 대위변제해 사업권을 가져갔다. 즉 강씨의 말에 따르면, 포스코건설은 금융기관들이 디폴트 선언을 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고, 강씨가 제프리 존스에게 밝힌 계획이 3주 뒤 현실화된 것이다. 이러한 이메일 등은 미국 회사가 한국에서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의심을 가질 만한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미국 정치권도 이러한 몇 가지 사례를 근거로 FTA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시사저널은 이메일에 언급된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포스코건설 홍보실, 강씨 그리고 박동선씨와 접촉을 시도했다. 포스코건설 홍보실에서는 “제프리 존스가 우리와 게일 간 조정자 역할을 수행했고, 관련 회의에 참석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고, 강씨에게서는 문자메시지 답변도 오지 않았다. 다만 박씨 사무실 관계자는 “이사장님이 (송도신도시 사업과 관련해)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한 것도 아니고, 이 문제가 언론에 거론되는 것은 나라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박씨가 포스코 측 인사들을 만난 사실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았다. 포스코는 권 회장과 박씨의 만남에 대해 묻는 질문에 “CEO 개인 일정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송도국제도시 사업이 한·미 외교 분쟁으로 비화하고 있는 것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 때문만은 아니다. 시사저널은 이미 3월5일과 6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렸던 한·미 FTA 장관회의에서 송도국제도시 사업을 미국 측이 의제로 꺼낸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미국은 트럼프 정부 취임 이후 우리 측에 계속해서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당시 우리 측 대표였던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국의 뜬금없는 문제제기에 우리 시각으로 한밤중에 산업통상자원부, 인천경제자유구역청, 포스코건설 담당자들을 찾아 이 문제를 묻는 해프닝도 벌어졌었다.

 

미국 측이 첫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송도국제도시 문제를 부각시키려 한 이유는 두 가지로 해석된다. 하나는 송도국제도시 사업이 처음 시작됐을 때와는 전혀 다르게 진행되고 있고, 이 과정에 지난 9년간 보수정권이 개입돼 있다는 의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권 교체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만큼 이 문제가 공정하게 해결되길 바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왼쪽 두 번째)이 6월30일(현지 시각) 워싱턴 백악관 국무회의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 두 번째)과 확대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박동선씨 “언론에 거론되는 것이 좋은 일 아니다”

 

송도국제도시 사업은 참여정부 때인 2004년 한국 기업 포스코와 미국 기업 게일인터내셔널이 합작해 세계적 물류도시를 만들어보자는 계획 아래 시작된 사업이다. 게일이 시행사, 포스코가 시공사 격으로 참여했다. 이 사업을 위해 만들어진 송도국제도시유한회사 지분은 미국 게일이 70%를  가지고 있고, 포스코가 30%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2~3년간 양측이 여러 가지 문제로 갈등을 빚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양측 간 10여 건의 송사로 번졌다. 사업도 사실상 중단된 상황이다.

 

양측의 입장이 팽팽하게 엇갈리고 있는 만큼 누구 말이 맞는지는 사법기관의 판단을 기다려봐야 한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 기관들의 일처리가 미국에 공격의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 일례로 두 기업의 사건을 수사 중인 이금로 전 인천지검장(현 법무부 차관)이 포스코 측 임원과 부적절한 골프를 친 사실이 시사저널 보도로 밝혀진 바 있다. 당시 인천지검은 경찰에서 포스코건설 임직원들의 사문서 위조·횡령 등의 혐의에 대해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것을 무혐의 처분하며 사실상 포스코건설에 유리한 결론을 내렸다. 사문서 위조 사건은 포스코건설이 미국 측의 동의 없이 여러 사업 및 대출과 관련해 임의로 도장을 찍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혐의 자체는 사문서 위조로 가볍게 볼 수 있지만, 사안은 사업 전체에 영향을 줄 만큼 파급력이 크다. 양사 모두에 중요한 사건이다. 그런데 경찰이 분명하게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사안을 검찰이 손바닥 뒤집듯 뒤집고, 관계자들이 골프까지 친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것이다.

 

두 번째는 미국 측이 이 사안을 한·미 FTA 재협상 카드로 사용하기에 좋은 소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 하원 측 관계자는 “이번에 상무부에 의견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한국에 진출한 필립모리스 등 미국 회사의 세금추징 문제와 송도국제도시 사업 등을 논의했으나 세금 문제는 일단 정상회담 관련 의제에서는 제외했다”며 “하지만 송도국제도시 사업은 게일 측이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정황이 확실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사안은 참여정부에서 처음 추진했으나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여러 계획이 변경되고 논란이 일었다. 미국 측 입장에서 보면 참여정부의 맥을 잇는 정부가 탄생한 만큼 공정한 해결을 기대해 보자는 마음이 클 수도 있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지난 보수정권에서 촉발된 문제로 인해 한·미 FTA재협상에서도 어려움을 겪게 된 셈이다.

 

미국 측이 물밑에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가운데 우리 정부는 사실상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일단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에 FTA 주무 장관인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인사청문회 통과 전이어서 불참했다. 뿐만 아니라 송도국제도시 사업과 관련한 고소·고발 사건을 인천지검과 서울중앙지검이 핑퐁 게임하듯 떠넘기고 있어 미국 측의 오해를 부르고 있다. 주한 미 대사관 측에서는 이 문제를 실시간으로 확인해 미 정부 측에 전달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민의당 한 의원은 “정부나 사법기관이 원칙적으로 처리하면 될 일이었는데, 오히려 한국 측에서 미국에 공격 빌미를 주고 있다”며 “미국 측이 이것을 무기 삼아 다른 분야에 있어서도 재협상을 해 올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게 생겼다”고 우려했다. 

 

 

‘코리아게이트’ 박동선은 누구?

헌정 사상 최대 스캔들 주인공…박근혜 출판기념회에 모습 드러내

 

1978년 4월3일 최초의 미 하원 윤리위의 공개증언에 앞서 선서하는 박동선씨 ⓒ 사진=연합뉴스

박동선은 1976년 박정희 정권 당시 중앙정보부에서 미국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제공한 ‘코리아게이트’ 사건의 핵심 인물이다. 1976년 10월24일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박동선이라는 한국인이 한국 정부 지시에 따라 연간 50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 상당의 현금으로 90여 명의 미국 정치인에 대해 매수공작을 했다”고 특종 보도했다. 당시 미 정가에서 박정희 독재정권하의 인권 상황을 문제 삼고 주한미군을 철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이를 회유·매수하려던 시도였다는 것이다. 미국 언론은 이 사건을 닉슨 대통령의 몰락을 부른 ‘워터게이트’에 빗대 ‘코리아게이트’로 부르며 연일 대서특필했다. 이로 인해 1970년대 후반 한·미 관계는 사상 최악의 길로 치달았다.

 

사건 당시 박씨는 미국에서 미국산 쌀을 한국으로 수입하는 사업을 하던 재미(在美)교포 실업가였다. 서울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후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타운대학을 졸업한 그는 1960년대부터 워싱턴 시내에 ‘조지타운 클럽’이라는 고급 사교장을 운영했다. 박씨는 이곳을 미국 유력 정치인들과 교류하는 장(場)으로 활용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높였다.

 

박씨의 불법 로비 사실이 밝혀지자 1978년 미국 하원은 윤리위원회 청문회를 열어 그를 소환했다. 사면을 대가로 증언대에 선 그는 32명의 미국 전·현직 의원에게 약 85만 달러를 선거자금으로 제공했다고 자백했다. 그러나 이러한 자신의 행동은 모두 개인적이었을 뿐 한국 정부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결국 청문회는 박씨로부터 돈을 받은 일부 의원만 징계를 받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이후에도 박씨는 일본, 대만, 도미니카공화국 등 세계 곳곳에서 로비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던 중  2005년 그는 유엔의 ‘이라크 식량을 위한 석유(oil-for-food)’ 프로그램 채택을 위해 이라크로부터 최소 200만 달러를 받고 불법 로비를 벌인 혐의로 미국 검찰에 기소됐다. 2007년 2월 징역 5년형을 선고받은 그는 이후 건강 등의 이유로 감형조치를 받아 2008년 9월 석방됐다. 석방 후 귀국해 한국에서 생활한 그는 한동안 세간에 노출되지 않다가, 지난 2013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의 중문 번역판 출판기념회에 돌연 모습을 드러내 축사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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