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기’에서 시작되는 그리스 문명사
  •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7.12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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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아의 지구 위 인류사(유럽사 편)] ‘바다 사람들’이 고대 그리스 문명에 남긴 흔적들

 

찬란하기로 소문난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시작되는 시기는 의외로 ‘암흑기(Greek Dark Age)’로 규정되고 있다. 역사학자에 따라 연대 추정에 약간 차이는 있어도 대략 기원전 1100년부터 기원전 800년까지의 기간이다. 

 

이 암흑기는 앞서 이집트를 뒤흔들었던 ‘바다 사람들’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고고학적 증거는 미케네 문명이 꽃피던 발칸 반도 남부 지방 인구가 이 기간 동안 적어도 10분의 1 정도로 줄었음을 보여준다. 집요하게 쳐들어와 짓밟고 빼앗고 불태우는 바다 사람들을 피해 원주민들은 높은 산으로, 아니면 내륙 깊숙이 들어갔을 것이다.

 

사실 발칸반도에서 이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현재 발칸반도에서 그나마 평야가 많은 부분을 점하고 있는 그리스 공화국을 기준으로 봐도 산지가 80%가 넘는다. 이 비중은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커진다. 암흑기 직전에 발칸반도 남부 해안 지방 가까이 산맥 사이로 흐르는 강 주변에 형성된 얼마 안 되는 평야지대를 미케네 사람들이 장악했었고, 바다 사람들이 그걸 공략했던 것이다.

 

미케네 문명권의 지형도(왼쪽). 유물에 기초해서 복원한 미케네 크노소스 궁전 일상 상상도 ⓒ 사진=이진아·Antiquated Antiquarian 제공

 

지금까지 역사학에서는 이렇게 바다 사람들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거의 버려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바로 전 시기인 미케네 문명이 보여줬던 화려한 궁전문화의 예술품 같은 건 아예 기대도 할 수 없고, 간단한 생활토기조차 별로 많이 발견되지 않는다. 인구가 크게 줄었고 저급한 생계유지형 생활을 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이 시기에 기술적으로 크게 비약한 부분이 있는데, 바로 철기를 제작, 사용했다는 점이다. 바다 사람들이 짓밟고 간 땅을 되살려가며 근근이 먹고 살아갔을 것 같은 소수의 사람들이, 일상적인 도구는 철을 손수 제련해서 만들어 썼다. 이 때문에 이 시기를 ‘암흑기’라는 이름 대신에 ‘그리스 철기 시대’라고 부르는 역사학자들도 많다.  

 

 

암흑기 시기에 발달한 그리스 철기 문명

 

그런데 또 이상한 점은 이 철기는 주로 농기구나 기타 생활용구이며, 무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무기라고 볼만한 것은 고작 작은 동물을 사냥하고 손질하는 데 쓰였을 정도로 단순한 것이며, 이전의 청동기 시대와 비교해보아도 상당히 후진적인 것이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암흑기엔 바다 사람들이 설쳤을 텐데, 이 정도 철을 다룰 줄 알았다면, 당연히 효율적인 무기도 만들어야 했을 것 같다. 왜 이 시기 유물 중에 제대로 된 무기가 없는 것일까?

 

이처럼 고대 그리스의 역사는 의문부호 투성인 채로 시작한다. 여기에 기후변화라는 요인과 통합해서 보기로 하자.

 

클리프 해리스Cliff Harris & 랜디 맨Randy Mann, ‘Global Temperature’ 게재 그래프로부터 재구성. ⓒ 사진=이진아 제공

 

오른쪽 그래프에서 보는 것처럼, 후기청동기 붕괴 이후 시작되는 고대 그리스의 역사는 크게 4시기로 나뉜다. 대략 기원전 1100년부터 기원전 800년까지 그리스 암흑기, 기원전 800년부터 기원전 500년까지 ‘아케익 그리스’라고 불리는 시기, 기원전 480년에서 기원전 360년 정도까지가 유명한 ‘고전 그리스’, 기원전 360년부터 기원전 30년대까지가 헬레니즘 그리스다.

 

즉 그리스 민족의 역사가 시작된 것으로 간주되는 시대에 있어서, 처음 300년 동안은 암흑기였고, 그 다음 300년은 문화가 빠르게 발흥하던 시기였다. 올림픽 게임이 열리기 시작하고 그리스 알파벳이 만들어지며, 그리스 남부 해역의 섬들은 물론 멀리 시실리까지도 식민지로 만들고, 여류 시인 사포, 철학자 탈레스와 피타고라스가 활동했으며, 솔론이 법전을 만들고 화폐 및 저울 등 교환 시스템을 확립했다. 그리스 문화의 기초가 다져진 시기였던 것이다. 이때를 아케익 그리스라고 하는데, 이 아케익(archaic)이라는 단어를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상고(上古)’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고대 문화 이전의 시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두 시기는 위 오른쪽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온난기에 속해있다. 후기 청동기 붕괴가 온난기 정점을 향해 치달아가던 시기에 있었다는 것은 앞서도 보았다. 바로 그 정점 부근에서부터 그리스 암흑기가 시작돼서 가장 기온이 따뜻했던 시기 내내 지속된 것이다.

 

이 부분에서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리스 사람들은 해양족이다. 발칸반도에 위치한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이고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며 지중해 한가운데 있다. 이런 지형·지리적 조건은 아주 오랜 옛날, 인류가 처음 이곳에 정주하기 시작할 때부터 바다를 이용해서 살게 했을 것이다. 해양족은 대체로 온난기가 되면 세력이 확장된다.

 

그런데 이 그래프를 보면, 온난기가 되면서 후기 청동기 문명 붕괴에 이어 그리스 암흑기라는 어두운 시기가 되었고, 오히려 기온이 내려가는 하강 국면에 아케익 그리스로서 발돋움했으며, 한랭기 주기로 들어가서는 근현대 서양문화의 원류로 꼽히는 고전 그리스 시기가 됐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보게 될, ‘온난기=바다 사람 득세’, ‘한랭기=육지 사람 득세’라는 공식에 전혀 맞지 않는 것 같다.

 

 

온난기에 외려 후퇴한 그리스 문명

 

이런 모순과, 또 지금까지 이 글에서 드러났고 아직 역사학에서 논쟁의 화두가 되고 있는 몇 가지 미스터리를 같이 생각해보자. ‘바다 사람들은 이집트를 떠나 어디로 갔을까?’ ‘왜 한참 해양족으로서 살기 좋은 시기에 문명생활을 보여주는 흔적이 없는 걸까?’ ‘왜 철 제련법을 알고 철기를 사용했으면서도 그 험악한 시기에 철제 무기를 만들지 않았을까?’ 등등의 의문이다. 

 

이 모든 모순과 의문을 다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있다. 지금까지 역사학에서 추정해왔던 것과는 달리, 그리스 암흑기동안 발칸반도의 곡창지대인 남부 해안 지방은 버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다 사람들이 쳐들어와 원주민을 쫓아내고 새로운 주인으로 살아왔다는 것이다. 전투 속에서 망쳐진 땅을 철제 농기구로 열심히 일구어 생활기반을 만들었으며, 심지어 해양활동도 활발하게 했다는 것이다. 

 

바다 사람은 얼마 전까지 역사학의 주된 추정대로 지중해 동쪽 소아시아에서도 일부 왔을 것이다. 물론 소아이사 쪽에서 그리스 쪽으로 오려면 온난기 동안에는 해류가 흐르는 방향을 거슬러야 한다. 하지만 소아시아와 그리스 사이에는 폭이 1킬로미터도 안 되는 보스포러스 해협만 있으니까, 그 정도 건너는 데 해류가 문제되지는 않는다. 

 

또 최근 밝혀지고 있듯 지중해 중서부 해역에서 왔을 가능성도 높다. 온난기를 맞아 인구가 폭발한 남서 유럽(사르디니아가 있는 곳), 그러나 그곳의 농경지는 조금만 과잉경작해도 쉽게 침식이 된다. 먹고 살기 힘들어진 사람들이 마침 산에서 잘 자란 나무를 이용, 배를 만들어 살 길을 찾아 떠났을 것이다. 마침 온난기 동안에는 해류가 남동동(南東東) 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에 이집트까지 가기는 아주 쉽다. 나일 강 하류의 비옥하고 방대한 토지를 본 바다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그곳을 점령하여 안정되게 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100년이 넘도록 애를 써도 이집트를 수중에 넣을 수 없자, 방향을 돌려 발칸 반도 남부의 미케네 문명을 집중 공략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왕도를 불태우고 모든 문자 기록을 파괴하며 사람들을 쫓아내고 자기들이 들어선 것이다. 

 

앞 이집트 사례를 돌이켜보면, 기원전 1178년 크소이스 전투를 끝으로 바다 사람들은 이집트 전쟁의 역사에서 자취를 감춘다. 기원전 1178년은 그리스 암흑기가 시작되기 직전의 연대다. 이집트 기록이 주장하듯, ‘섬멸’되어서가 아니라, 전략을 바꿔 좀 더 쉬운 상대를 집중 공격했을 가능성이 크다. 

 

스페인의 화가 벨라스케즈의 1632년작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을 방문한 아폴로.” 대장장이인 헤파이스토스를 위대한 신의 하나로 꼽을 만큼, 그리스 사람들은 금속 제련술을 중시했다. 그리스 철기시대의 대장간은 아마 이런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 사진=위키미디어

 

새로운 땅의 주인이 된 그들은 전투로 망쳐진 땅을 개간하기 위해 철제 농기구를 만들었을 것이다. 철 제련법은 소아시아 쪽에서 온 사람들이 잘 알고 있었을 것이고 (아시아에는 이 시기 이미 철기 사용이 꽤 확대되어 있었다), 철 제련의 필수 요건인 다량의 연료(나무)는 온난기 발칸 반도에서라면 충분히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미 경쟁상대가 될 만한 사람들은 다 쫓아낸 상태라 무기는 크게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풍부한 목재로 배를 만들어서 인근 해역으로 세력을 확대해갔을 것이다. 

 

그리하여 바다 사람들은 지중해 이곳저곳에 꽤 식민지도 건설하고, 문명국임을 보여주는 이런저런 문화적 성취도 쌓아가는 아케익 그리스 시기의 주역이 된다. 페니키아와 나란히 이 시기 지중해의 리더였을 뿐 아니라, 나중에는 영토 면에서 페니키아를 압도한다. 

 

 

아케익 그리스 시대 주역으로 떠오른 바다 사람들

 

다음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이집트와 리비아, 그리고 로마 반도의 에트루리아 등 비교적 강국이었던 나라들의 영토 해안지역을 제외하면, 그리스와 페니키아가 거의 나누어먹기 식으로 해안지역을 차지했었다. 이들이 영토를 차지하고 국가를 운영하는 방식은 전형적인 해상국가의 패턴을 보여준다.

 

ⓒ 사진= 이진아 제공

 

이상 본 것처럼, 그리스 암흑기는 쫓겨난 원주민의 입장에서만 보면 의문투성이 역사가 된다. 하지만 바다 사람이 그리스 해안지역의 새 주인이 되었다고 보면 모든 것이 명쾌하게 설명이 된다. 지금까지 역사학이 그렇게 보지 못했던 것은 아마 이집트 기록의 영향을 받아, 바다 사람을 기본적으로 지중해의 해적 정도로 간주해서가 아닐까? 최근에 와서 이 부분이 다시 조명되기 시작하고 있으니까, 조만간 새로운 설명이 나올지도 모른다.

 

한 가지 의문은 남는다. 왜 해양족인 그리스 사람들이 온난기가 아니라 한랭기 중인 고전 그리스 시대 최고의 문명을 꽃피웠을까 하는 점이다. 이 부분은 기후변화만이 아니라 역사 왜곡, 혹은 역사 만들기에 주로 관련이 되는데, 이 연재 《세계사편》의 결론부분에서 좀 더 자세히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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