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해효 “우리 민족 가르치는 조선학교, 일본 우익에겐 눈엣가시 같은 존재”
  • 홍주환 인턴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7.20 15:33
  • 호수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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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조선학교 지원단체 ‘몽당연필’ 권해효 대표… “우리 사회가 조선학교를 기억하길 바란다”

 

일제강점기 수많은 동포가 일본으로 끌려갔다. 1945년 해방이 됐지만 당장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대신 재일동포들은 우리말과 글을 모르는 자녀들을 위해 학교를 세웠다. 일본 전역에 500개가 넘는 ‘국어강습소’가 설치됐고 이는 1946년 ‘조선학교’로 발전했다. 이후 조선학교는 약 70년 동안 일본 땅에서 한민족의 역사를 가르쳐왔다. 

 

“눈엣가시 같았겠죠.”
조선학교를 돕고 있는 국내 비영리단체 ‘몽당연필’의 권해효 대표는 조선학교가 받아온 억압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일본 사회에서 조선학교는 우익 정치권과 단체들의 공격 대상이다. 2002년 일본 우익단체들은 조선학교 여학생들이 교복으로 입고 있던 치마저고리를 면도칼로 훼손하는 등 테러를 가했다. 몇몇 단체는 교정 앞에서 헤이트스피치를 하는 등 혐오를 이어갔다. 

여기에 아베 정권은 집권 후 일본 내 모든 고등학생이 수업료 지원을 받는 ‘고교무상화법’에서 조선고급학교(한국의 고등학교에 해당)만 제외하기에 이르렀다. 노골적인 차별이었다. 그러자 2013년 규슈·도쿄·오사카·아이치·히로시마 등지에 위치한 조선고급학교 학생들이 각각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한 첫 1심 판결이 지난 7월 19일 히로시마에서 있었다. 일본 재판부는 히로시마 조선학교 측의 청구를 기각했다. 히로시마 조선학교 측은 즉각 항소 의사를 밝혔다. 1심 판결은 오는 7월28일 오사카, 9월13일 도쿄에서도 나올 예정이다. 

 

조선학교와 이번 소송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몽당연필이 운영하는 카페 ‘연필1/3’에서 권 대표를 만났다. 배우로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그는 최근 홍상수 감독의 영화 《그 후》에서 주연을 맡기도 했다. 권 대표는 소송과 관련해 “패소하긴 했지만 희망을 잃지 않겠다”고 말했다. ​

 

조선학교 지원단체 ‘몽당연필’ 권해효 대표 © 사진=권해효 제공

 

언제부터 조선학교에 관심을 갖게 됐나. 

2002년 6·15 남북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 해외청년 공동행사에 남측 청년 대표단으로 참석한 적이 있다. 당시 북측 대표단으로 참석한 조선학교 출신 청년들을 만났다. 참 특이한 정체성이었다. 일본말도 우리말도 한다. 거기에 일본 땅에서 나고 자랐으면서 북한을 조국이라고 하고, 경상도·전라도를 고향이라고 부른다. 다양한 정체성이 섞인 그들의 모습에 끌렸던 것 같다.

 

몽당연필을 만든 것도 이런 관심의 연장선이었나.

조선학교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던 중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고 많은 조선학교도 피해를 입었다. 그래서 다른 문화예술인 등과 조선학교를 위한 모금을 하려고 몽당연필을 만들었다. 당시에는 1년만 하고 해체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국내 단체가 필요하다는 동포사회 등의 요구로 몽당연필을 지속하게 됐다. 

 

현재 일본에 조선학교가 얼마나 있나. 

조선 초·중·고급학교를 합해 총 60여 개교(2016년 5월 기준 66개교)가 일본 전역에 있다. 과거에는 160여 개교가 있기도 했지만 조선학교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이 워낙 빈약하다 보니 점점 줄어들었다.

 

재정이 많이 열악한가. 

조선학교는 일본에서 정규학교인 ‘1조교’가 아닌 ‘각종학교’로 분류돼 있다. 이로 인해 일본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한다. 일부 지자체에서 해당 지역의 조선학교에 보조금을 주는 정도다. 그래서 재정 상황이 늘 안 좋다. 다만 정규학교가 아닌 대신 일본 정부의 교육 지침으로부터 자유롭다. 일본 땅에서 일본군 위안부와 독도 문제 등 한·일 간 민감한 역사에 대해 가르칠 수 있는 이유다. 

 

조선학교가 북한의 지원을 받는다는 이유로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역사적 맥락을 잘 알아야 한다. 재일동포들은 1950년대만 해도 일본 사회의 최하층민이었다. 그들이 학교를 세웠으니 환경이 열악한 것은 당연했다. 그러던 중 북한이 막대한 재정 원조를 제안했다. 당시 한국의 지원은 없었다. 조선학교는 생존하기 위해 북한의 원조를 택했을 뿐이다. 

 

북한 사상 교육을 받는다는 것도 부정적 시선의 원인이다. 

북한의 지원을 받으면서 북한 사상 교육도 이뤄지게 됐다. 이 사실을 알고 흠칫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조선학교는 북한 이념이 아니라 우리 민족에 대해 가르치기 위해 세워진 곳이다. 학생들도 우리 민족에 대해 배우고 싶은데 주위에 마땅한 학교가 없으니 조선학교에 온다. 또한 조선학교 학생들은 세계 2~3위의 자본주의 국가인 일본에 산다. 그들은 일본 TV 프로그램을 보고 일본 상점에 간다. 단지 학교에서 잠시 북한의 이념에 대해 배울 뿐이다. 당장 그들이 표면적으로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배척하지 말고, 그들의 상황 내면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생각하길 바란다. 

 

일본 정부가 고교무상화법에서 조선학교만 배제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일본의 우익 정치권에 있어 조선학교란 일본의 수치스러운 전쟁 범죄의 역사를 매일같이 각인시키는 존재다. 조선학교가 위안부, 독도, 일제강점기에 대해 그것도 우리말로 가르치고 있으니 말이다. 또한 조선학교는 재일동포들이 교육을 통해 뭉칠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한다. 눈엣가시 같지 않겠나. 이런 조선학교가 생존하도록 지원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확실히 우익 정권인 아베 총리가 집권한 이후 고교무상화법 제외도 급속도로 이뤄졌다. 

아베 정권은 일본 사회의 방향을 과거 군국주의 시대로 돌리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이를 위해선 ‘우리 사회가 위험하다’는 신호를 계속 국민에게 보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조선학교를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조선학교를 ‘북한을 추종하는 학교’로 낙인찍고 ‘일본 사회에 북한을 추종하는 집단이 있다’ ‘북한을 추종하는 집단을 지원할 수는 없다’며 일본 사회 내에 공포와 긴장을 유도하는 것이다. 

 

아베 정권이 고교무상화법에서 조선학교를 제외하자 조선학교 학생들이 직접 원고가 돼 일본 정부를 제소했다.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을 텐데. 

조선학교 학생들은 지난 70년 동안 각종 사회적·제도적 차별을 받으면서도 ‘너희가 아무리 차별해도 우리는 지지 않는다’는 정신으로 버텼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일본 정부가 가하는 억압에 숨지 않고 직접 맞서고 싶은 것이다. 

 

같은 민족의 일이지만 한국에는 조선학교나 이번 소송에 대한 정보가 적다. 

한국에서도 적지 않은 단체가 조선학교를 돕고 있다. 다만 언론이 해외동포의 소식과 이들의 상황에 대해 잘 전달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재일동포뿐 아니라 중앙아시아 지역에 있는 고려인 등 동포에 대한 정보를 알기 어렵다. 안타깝다. 

 

7월19일 있었던 히로시마 조선학교와 일본 정부 간 소송의 1심 판결에서 조선학교 측이 패소했다. 이번 판결을 어떻게 생각하나. 
현재 일본 사회의 방향성에 대해 알 수 있는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사회가 자신들의 역사적 잘못이 만들어낸 소수자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사회가 이번 소송의 결과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 

 

조선학교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본 정부가 조선학교를 두고 ‘너네는 별것도 아니다’며 억압할 때 제일 힘이 되는 것은 ‘당신들은 가치 있다’는 응원이다. 우리 사회가 재일동포 사회와 조선학교에 관심을 갖고 그들을 기억하길 바란다.  

 

일본 정부에 맞선 조선학교 학생들

 

2010년 4월 일본에서 ‘공립고등학교 수업료의 불징수 및 고등학교 등 취학 지원금의 지급에 관한 법률’(일명 고교무상화법)이 시행됐다. 외국인학교를 포함한 모든 고교의 수업료를 무상화한 조치였다. 다만 10개의 재일조선고급학교는 예외였다. 

표면상으로는 조선학교가 일본의 일반고교에 준하는 수준의 교육을 하는지 알 수 없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외교적 이유에 따른 결과였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가 아직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 내 여론은 조선학교를 지원해선 안 된다는 쪽에 있었다. 조선학교가 친북한계라고 알려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산하에 있기 때문이었다.

 

김명준 ‘몽당연필’ 사무총장은 “문부과학성에 조선학교를 고교무상화 지원에서 제외할 것을 요청한 이는 나타이 히로시 북한납치문제담당상이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요청이 있은 얼마 후 일본 정부는 조선학교가 지원 대상으로 적합한지를 심사하겠다고 발표했다. 김 사무총장은 “교육에 대해 정치적 판단이 개입된 것이다”고 지적했다.

 

몽당연필 등 시민단체들은 매주 금요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모여 조선학교를 고교무상화에서 배제한 일본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심사는 얼마 가지 못했다.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사건이 터지면서 일본 내 반북 정서가 다시 고조됐다. 이를 계기로 당시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문부과학성 장관에게 조선학교에 대한 고교무상화법 적용 심사 절차를 중단토록 지시했다. 이후 심사는 무한정 연기됐다.

 

심사가 중단된 상태에서 2012년 12월 자민당이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했다. 자민당의 아베 정권은 고교무상화와 관련한 문부과학성 성령(省令·한국의 시행령에 해당)을 수정해 조선학교를 고교무상화 심사 대상에서도 완전히 제외했다. 아베 내각이 들어선 지 4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가장 분노한 것은 조선학교 학생·졸업생들이었다. 이들은 직접 원고가 돼 소송단을 꾸렸다. 2013년 1월 오사카를 시작으로 아이치, 규슈, 히로시마, 후쿠오카 조선학교 등 총 5개교 학생 약 250명이 각각 일본 정부에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은 4년간 이어졌고 7월19일, 소송을 제기한 조선학교 중 처음으로 히로시마 조선학교에 대한 1심 판결이 나왔다. 


히로시마 지방 재판소는 조선학교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조선학교가 조총련과 관련돼 있다는 점, 고교무상화 지원금을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쓸지 의심된다는 점을 이유로 일본 정부의 결정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이 읽히는 약 15분 동안 아이들의 학습권 혹은 교육권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히로시마 조선학교 변호인단은 즉각 항소하겠다는 계획이다. 19일 판결이 나오자마자 변호인단은 즉시 성명서를 내 항소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성명서에서 변호인단은 “고교무상화법에서 조선학교를 제외한 일본 행정부의 자의성을 바로잡아야 할 사법부가 무비판적으로 행정부의 판단을 따랐다. 이는 소수자의 인권보장을 임무로 하는 사법부의 역할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변호인단은 오늘 재판부가 내린 판결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조선학교는 7월28일 오사카, 9월13일 도쿄에서도 판결을 앞두고 있다. 이미 패소했고, 또 패소한다면 조선학교의 지난한 싸움은 한층 더 고되질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웃었다. 히로시마의 판결 이후 히로시마 조선학교의 학생과 학부모들은 이렇게 말했다. “웃을 수밖에 없어요. 마지막 저항은 웃음이니까.” 그들은 다시 힘내야 한다는, 싸워야 한다는 말을 그렇게 웃음으로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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