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에 맞선 조선학교 학생들
  • 홍주환 인턴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7.20 16:16
  • 호수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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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일본에서 ‘공립고등학교 수업료의 불징수 및 고등학교 등 취학 지원금의 지급에 관한 법률’(일명 고교무상화법)이 시행됐다. 외국인학교를 포함한 모든 고교의 수업료를 무상화한 조치였다. 다만 10개의 재일조선고급학교는 예외였다. 

표면상으로는 조선학교가 일본의 일반고교에 준하는 수준의 교육을 하는지 알 수 없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외교적 이유에 따른 결과였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가 아직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 내 여론은 조선학교를 지원해선 안 된다는 쪽에 있었다. 조선학교가 친북한계라고 알려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산하에 있기 때문이었다.

 

김명준 ‘몽당연필’ 사무총장은 “문부과학성에 조선학교를 고교무상화 지원에서 제외할 것을 요청한 이는 나타이 히로시 북한납치문제담당상이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요청이 있은 얼마 후 일본 정부는 조선학교가 지원 대상으로 적합한지를 심사하겠다고 발표했다. 김 사무총장은 “교육에 대해 정치적 판단이 개입된 것이다”고 지적했다.

 

몽당연필 등 시민단체들은 매주 금요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모여 조선학교를 고교무상화에서 배제한 일본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심사는 얼마 가지 못했다.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사건이 터지면서 일본 내 반북 정서가 다시 고조됐다. 이를 계기로 당시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문부과학성 장관에게 조선학교에 대한 고교무상화법 적용 심사 절차를 중단토록 지시했다. 이후 심사는 무한정 연기됐다.

 

심사가 중단된 상태에서 2012년 12월 자민당이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했다. 자민당의 아베 정권은 고교무상화와 관련한 문부과학성 성령(省令·한국의 시행령에 해당)을 수정해 조선학교를 고교무상화 심사 대상에서도 완전히 제외했다. 아베 내각이 들어선 지 4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가장 분노한 것은 조선학교 학생·졸업생들이었다. 이들은 직접 원고가 돼 소송단을 꾸렸다. 2013년 1월 오사카를 시작으로 아이치, 규슈, 히로시마 조선학교 등 총 5개교 학생 약 250명이 각각 일본 정부에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은 4년간 이어졌고 7월19일 히로시마에서 첫 판결을 앞두고 있다. 7월28일 오사카, 9월13일 도쿄에서도 판결이 난다.

 

조선학교 측은 승소를 기대하고 있지만 패소할 경우 바로 항소한다는 계획이다. 후지나가 다케시 오사카산업대 교수(조선학교 고교무상화 연락회 소속)는 “일본 정부는 조선학교가 조총련의 부당한 지배를 받고 있어 지원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조선학교는 대부분 일본 학교의 교과 편제를 따른다. 일본 학교보다 교육 수준이 미달한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당연히 승소할 것이라고 변호인단은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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