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재입북 막을 방법 없나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7.24 09:25
  • 호수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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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재입북 루트 3가지…정부 당국 관리 못해 속수무책

 

탈북자 출신으로 방송에서 이름을 알렸던 임지현씨(24·전혜성)가 재입북했다. 임씨는 지난 4월 중국으로 출국한 후 최근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산하 대남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에 출연해 남한 사회를 비판했다. 이것을 두고 임씨의 자진입북설과 유인납치설 등이 분분하다.

 

이처럼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들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은 또 어떤 경로를 통해 북한으로 들어가는 것일까.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는 3만 명을 넘어섰다. 1962년 최초 귀순자가 나온 이후 탈북자 수는 꾸준히 증가했다. 2006년 2월 1만 명을 돌파했고, 2010년 11월 2만 명을 넘었다. 그렇다고 탈북자들 모두가 남한에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다시 북한으로 넘어가는 재입북자들이 적지 않다. 탈북자들 사이에서 ‘탈남 현상’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 “누가 갑자기 사라졌다”거나 “북한에서 누구를 봤다”는 말도 심심찮게 나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북한에 남겨진 가족 찾아 떠나

 

탈북자들의 재입북은 그리 어렵지 않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북한으로 다시 넘어갈 수가 있다. 탈북은 어려워도 입북은 아주 쉽다는 뜻이다. 현재 재입북자들 대부분은 중국을 통해 북한으로 넘어간다. 중국에 잠시 다녀온다고 떠났던 탈북자들 중 행방이 오리무중인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 중 상당수가 북한으로 재입북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금까지 확인된 공식 재입북자는 225명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확인된 숫자’에 근거한 것이다. 우리 당국에 동선이 추적되지 않는 재입북자들까지 합치면 그 수가 이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 탈북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탈북자들이 남한에 오면 북한에 있는 가족들과 연락 채널부터 만든다. 중국 브로커를 통해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휴대전화와 돈을 보낸다. 브로커는 입금된 액수의 20%를 자기 몫으로 챙기고 나머지를 건네준다. 휴대전화를 통해 서울에 있는 탈북자와 북한에 있는 가족의 통화가 가능하게 된다. 아침저녁으로 안부도 묻고, 문안 인사도 주고받을 수 있다.

 

물론 북한에서 중국 휴대전화를 쓰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일이다. 당국의 추적도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남한의 탈북자와 연락하는 사람을 색출해 총살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고 할 정도다. 때문에 남한에 있는 탈북자와 북한의 가족은 위험을 감수하며 ‘비밀 통화’를 해야 한다. 북한 당국의 감시가 소홀하거나 최대한 안전하게 통화할 수 있는 시간을 정한 후 연락하는 방식이다.

 

북한에 있는 가족과 연락 채널이 만들어지면 그다음에는 탈북을 추진한다. 탈북자들은 가족을 탈북시키기 위해 악착같이 돈을 모은다. 탈북 브로커들을 통할 경우 1인당 약 1000만원이 들어간다. 그 이전에는 브로커를 통해 북한의 가족에게 일정 금액을 송금한다. 북한 당국도 탈북자들의 치명적인 약점이 가족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탈북자들의 입북 루트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중국·북한 접경지대로 가서 두만강이나 압록강을 건너는 것이다. 탈북 브로커 대신 가족들을 직접 탈북시키기 위해 주로 이용되는 루트다. 하지만 위험 부담이 뒤따른다. 북한 당국에 적발될 경우 목숨을 내놓거나 장기간 수용소 생활을 감내해야 한다.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경지역의 경계가 강화돼 현실적으로 어려운 방법이 됐다.

 

‘두만강 도강’으로 북한에 들어간 대표적인 두 사람이 있다. 유태준씨와 최승찬씨다. 유씨는 탈북자 중 ‘재입북 1호’다. 그는 1998년 11월 세 살배기 아들과 함께 탈북했으나 북한에 있는 아내가 마음에 걸렸다. 2000년 6월 유씨는 중국으로 들어간 뒤 북한 초소 경비병에게 중국 돈 400위안을 뇌물로 주고 두만강을 건넜다. 함경북도 무산에 도착한 후에는 다시 뇌물을 주고 위장 신분증도 빌렸다. 하지만 입북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국가보위부에 체포됐다. 유씨는 모진 고문을 받고 교화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다 석방됐고, 2001년 감시가 소홀해지자 사업소를 탈출한 뒤 압록강을 건넜다.

 

1996년 7월11일 탈북한 최승찬씨는 고무 튜브를 몸에 둘둘 말고 예성강을 따라 남한으로 귀순한 것으로 유명하다. 최씨는 북한에서 결혼해 딸 하나를 두고 있었다. 그는 하나원을 나와 농협에 취업했다. 번듯한 직장을 둔 중산층의 삶을 누리며 비교적 순탄하게 살았다.

 

하지만 최씨는 남한 생활에 적응할수록 북한에 있는 딸이 그리워졌다. 그는 북한에 있는 딸을 찾아 떠나기로 결심하고 퇴직금과 저축한 돈 1억원 정도를 챙겨갔다. 2004년 1월 두만강을 건너 북한으로 넘어간 최씨는 국가보위부에 자수했다. 그는 가지고 간 돈 일부를 북한 당국에 바치고 가족들과 만나 정착했다.

 

재입북한 탈북자 고경희씨의 오빠 고경호씨(왼쪽)와 아들 차성혁군이 2014년 3월23일 기자회견에서 고문 탄압 중단과 교화소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북한대사관 통해 재입북하기도 

 

둘째는 중국이나 제3국에 있는 북한대사관이나 영사관을 통해 공개적으로 넘어가는 방법이다. 중국이나 러시아로 출국한 뒤 북한 측 요원들과 접촉하거나 대사관 등 외교공관을 통해 쉽게 입북할 수 있다.

 

북한군 특수부대 장교 출신으로 1995년 4월 탈북한 남수씨가 이 방법으로 재입북했다. 남씨는 탈북 5년 만인 2000년 8월 7000만원을 마련해 중국으로 들어갔다. 두만강을 넘어 북한으로 들어가 남겨진 가족을 데려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장마철에 두만강 물이 불어나자 도강을 포기하고 베이징 북한대사관에 가서 입북 의사를 비쳤다.

 

남씨는 북한에 들어가 체제 선전에 이용됐고, 나중에 고급 휴양시설의 총괄지배인(사장)도 됐다. 그는 재입북 3년 후인 2003년 6월 중국으로 공사 자재를 보러 간다고 출장 신청을 하고 가족들과 베이징까지 나왔다. 남씨의 아내는 도중에 붙잡혀 북한으로 끌려갔다가 5년 동안 감옥에 있었고, 2009년 탈출해 남한으로 들어왔다.

 

2009년 남한에 정착한 김광호씨 부부도 ‘탈북-재입북-재탈북’을 했다. 김씨 부부는 북한에 남겨진 장모와 처제·처남을 한국에 데려오려고 마음먹었다. 1인당 1000만원에 달하는 브로커 비용이 부담되자 직접 북한에 들어갔다. 이들은 2012년 중순 중국 선양에 있는 북한대사관을 찾아가 재입북 의사를 전한 후 항공편으로 북한에 들어갔다. 김씨 부부의 재입북 사실은 이듬해 1월 북한이 마련한 공개좌담회에 나오면서 알려졌다.

 

김씨는 입북한 지 7개월 만에 아내와 한 살배기 딸을 데리고 중국으로 두 번째 탈출을 감행했다. 처남과 처제도 동행했다. 하지만 옌볜에서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 김씨 부부와 딸은 한국 국적을 갖고 있어 남한으로 송환됐지만 북한 국적의 처제와 처남은 생사가 불투명하다.

 

셋째는 중국이나 제3국을 경유하지 않고 남한에서 북한으로 월북하는 경우다. 2013년 4월 탈북자 이혁철씨는 꽃게잡이로 위장해 연평도에서 어선(8t급)을 타고 북한으로 넘어갔다. 이씨는 어선 선원으로 일을 시작한 뒤 선장이 배를 모는 걸 지켜보고 작동법을 익힌 뒤 배를 탄 지 사흘 만에 NLL을 넘어 월북했다. 이씨는 2007년 3월 탈북한 뒤 무려 네 차례나 북한을 드나든 것으로 알려졌다.

 

한창권 탈북인단체총연합회 회장은 “북한에서는 탈북자들의 동향을 손금 보듯 훤히 알고 있다”고 밝혔다. 탈북자 명단 등이 모두 넘어간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남한에 있는 탈북자들을 이용하거나 재입북 공작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탈북자는 철저하게 막지만 재입북자는 용서하고 대대적으로 환영하는 모양새다. 특히 당비를 가져오거나 고급 정보를 가져오는 탈북자에게는 노동당 입당이나 ‘좋은 자리’를 보장해 주기도 한다. 남한에서 가져온 돈의 상당액은 본인 소유로 인정해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탈북자들은 재입북에 앞서 남한에 있는 재산을 먼저 정리한다. 집을 팔고, 전세금을 빼고, 은행에 저축한 돈을 찾아서 목돈을 챙긴다. 그런 다음 중국으로 건너가 북한으로 들어간다. 재입북한 탈북자가 자진입북인지 아니면 유인책이나 납치에 의한 것인지는 ‘재산 정리’가 기준이 될 수 있다.

 

탈북자들에 대한 북한 당국의 비밀공작은 더욱 치밀해지고 있다. 재입북자 중에는 북한의 ‘입북 공작’에 의한 경우도 상당수다. 중국에는 북한의 탈북자 ‘유인조’와 ‘체포조’가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탈북자를 포섭해 이중간첩으로 활용하거나 북한으로 재입북시켜 체제 선전용으로 이용한다. 재입북자 중 90% 이상이 중국에서 활동하는 북한 측 요원들의 함정에 빠졌을 확률이 높은 것이다.

 

특히 탈북자들이 북한에 있는 가족을 탈북시키기 위해 중국으로 들어가면 북한 공작조가 쳐놓은 덫에 걸릴 수 있다. 북한의 공작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남한에 있는 탈북자를 중국으로 유인하기 위해 가족이나 친인척 등을 동원하기도 한다.

 

2013년 12월20일 북한 고려동포회관에서 재입북한 탈북자들이 좌담회를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 사진=조선중앙통신 연합

 

체계적 관리 시스템 만들어야

 

이에 반해 탈북자들의 재입북을 막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뒤따른다. 재입북자 숫자는 점점 늘어가고 있지만 정부 당국에서 취할 뚜렷한 대책이 없다. 탈북자들의 범법행위가 뚜렷하지 않은 이상 여권을 가지고 중국으로 나가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탈북자라고 해서 결격사유가 없는데 중국 등지의 해외여행을 제한할 수도 없다. 그랬다가는 당장 인권침해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그렇다고 중국에 들어간 탈북자들 개개인을 따라다니며 감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탈북자가 중국을 경유해 재입북하면 속수무책이다.

 

경찰력의 한계도 있다. 현재 국내에 정착한 탈북자들에 대한 관리는 관할 경찰서에서 맡고 있다. 담당 경찰관들은 탈북자들의 감시자 겸 보호자 역할을 한다. 보통 보안과 형사 한 명이 관리하는 탈북자 수는 50~70명 정도인데,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세밀하게 챙길 수 없는 실정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한창권 회장은 “탈북자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마다 탈북자들의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탈북자 관리에 허점이 드러나고 구멍이 숭숭 뚫린 상태라면 제2, 제3의 임지현은 계속 나올 것이다. 탈북자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재입북을 막을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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