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 사각지대’에 군림하는 우리 동네 王, ‘도의원’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7.07.31 16:48
  • 호수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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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원 업무추진비 사실상 ‘쌈짓돈’…예산 심의권 휘둘러 사익 챙기는 사례 적지 않아

 

충북에서 쏘아올린 지방의원들의 외유성 연수 논란이 전국 시·도의회로 퍼지고 있다. 지역의 이례적인 수해 상황에서 해외 연수를 떠난 4명의 충북도의원에게 주민들은 돌아올 곳을 허락지 않았다. 주민의 고통을 외면하고 외유(外遊)를 떠난 도의원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김학철 도의원의 국민을 ‘레밍(lemming·쥐의 일종)’에 빗댄 발언 등 막말 사태가 더해져 비난 여론은 더욱 불붙었다. 공분을 산 도의원 3명이 속한 자유한국당은 발 빠르게 이들에 대한 제명을 결정하며 사태 진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당 차원의 제명을 넘어 이들의 도의원직 사퇴까지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들의 자리는 여전히 위태로운 상황이다.

 

7월24일 충북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이 충북도의회 입구에 사퇴촉구 항의 글을 붙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방의원들, 목적과 다르게 혈세 사용”

 

지역 안에선 이번 사태를 지켜보며 “결국 ‘여론’이 이들을 제명시킨 것”이라는 얘기가 오가고 있다. 김학철 의원의 막말로 인한 여론의 파장이 없었다면 이번 일도 이전처럼 유야무야 덮였을 거란 얘기다. 실제 지방의원들의 외유성 해외 연수로 인한 논란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불과 두 달 전인 지난 5월 서산시의회 시의원과 공무원 14명이 지역에서 발생한 최악의 가뭄 속에 싱가포르 연수를 떠나 주민들의 빈축을 샀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정국이 정점으로 치닫던 올해 초 전남도의회, 춘천시의회 등 여러 지역에서 의원들이 평소처럼 연수 길에 나서 연신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 별다른 징계 없이 의회 안에서 문제를 덮고 논란을 맺었다. 그 때문에 이번 충북도의회 사태에 대해 해당 지역 시민단체 관계자는 “이 정도의 징계도 보기 드문 극단적 사례”라며 “당사자들은 자신들이 운이 아주 나빴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지방의원의 해외 연수와 관련한 국민적 비판은 지역 안에서 이들의 권한과 의정활동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감시가 부실한 것 아니냐는 논의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루 이틀 나온 문제가 아닌 만큼 이를 단순히 개개인의 자질 미달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허술한 감시와 고질적인 봐주기로 인해 지역 내 이들의 권력이 한없이 비대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학철 의원은 7월19일 자신들을 향해 쏟아지는 비난에 “만만한 게 도의원이냐. 지방의원이 무소불위 권력을 가진 국회의원도 아니고…”라며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지방의원보다 훨씬 크고 막강한 권력을 지닌 국회의원과 똑같은 잣대로 비난하는 건 과한 처사라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지방의원의 권한과 권력은 물론 국회의원과 비교할 수 없다. 그 권한이 적용되는 지역적 범위도 중앙정치를 하는 이들보다 당연히 더 작다. 당장 연봉만 봐도 차이가 크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기준 광역의원(도의원)의 평균 연봉은 5700만원, 기초의원(시·군·구의원)은 3800만원으로 1억4000만원 수준인 국회의원과는 배 이상 차이가 난다. 이번에 문제가 된 의원들의 해외 연수 역시 지방의원의 경우 1인당 국회의원의 4분의 1 수준인 최대 250만원이 매년 의회에서 지원된다. 사실상 그 자체론 지원이 그리 넉넉하다곤 볼 수 없다. 그러나 지원되는 비용 크기에 관계없이 본래 목적대로 사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곳곳에서 혈세가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월급 외에 지방의원들에게 주어지는 업무추진비는 중앙정치권보다 더욱 감시가 허술해 사실상 쌈짓돈처럼 쓰인다. 일례로 지난 3월 정의당 강북구위원회가 강북구의회 의원들의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을 조사한 결과, 90% 이상이 이들의 밥값과 술값으로 사용됐다. 특히 주말 저녁 지역 라이브카페에서 50만원을 결제한 내역이 정책간담회라는 이름으로 둔갑해 보고됐으며, 직원 격려 목적으로 화장품을 40만원어치 구입한 내역도 있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업무추진비 사용에 대한 표준안을 각 의회에 여러 차례 내려보내고, 사용내역을 공개하는 조례 제정도 권고했다. 하지만 현재 조례를 만든 곳은 전국 지방의회 243개 중 절반 정도에 그치고 있다.

 

오롯이 혈세로 지원되는 이들의 이러한 의정비는 지난해까지 각종 비리로 구속 수감된 지방의원들에게 꼬박꼬박 지급되기도 했다. 2017년 2월 충북 참여연대가 지역 관급공사에 일감을 몰아준 혐의로 같은 해 1월 수감된 이종구 충주시의원에게 의정비가 들어간 사실을 파악하기 전까지 구속 의원들에 대한 의정비 지급은 계속 이뤄져왔다. 이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한 충북 참여연대 김혜란 생활자치팀장은 “이 사건이 불거진 후 충북 내 의회들을 살펴봤더니 3곳에만 관련 조례를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며 “올해 초 문제가 제기된 후에야 전국적으로 이를 중단하는 조례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이번에 문제가 된 지방의원들의 해외 연수 시스템이야말로 의회의 의정활동 감시가 얼마나 부실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한다. 전국 각 의회마다 공무원들의 국외연수를 심의하는 위원회(국외연수심의위원회)가 설치돼 있다. 그러나 심의 대상인 의원들 위주로 위원회가 구성돼 있으며 결정 과정을 보여줄 회의록도 외부에 공개되지 않아 사실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김수현 세종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누가 봐도 외유성 짙은 연수 계획서도 잘만 통과된다. 어떤 경우는 갈 준비 다 하고 출국 며칠 전 심의위원회에 계획서를 제출하기도 한다”며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시민이나 외부 전문가들 위주로 구성하자고 여러 번 성명서를 내봤지만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고 비판했다.

 

유럽 연수에서 돌아온 김학철(왼쪽), 박한범 충북도의원이 7월23일 충북도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제 식구 감싸기’ 바쁜 유명무실 윤리위

 

다녀온 후 제출해야 하는 연수 보고서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의회 규정에 따라 대개 연수를 다녀온 후 15일 이내에 보고서를 제출하지만 문제는 내용이다. 평균 20쪽 안팎으로 작성되는 보고서는 분량의 80% 이상이 현지에서 찍은 단체사진과 해당 국가나 지역의 기본 정보로 채워진다. 그나마 그 정보마저 ‘복사·붙여넣기’로 도배된 글이다. 해당 글을 포털 사이트에 그대로 옮겨 검색하면 블로그나 카페, 여행사 사이트에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올라와 있다. 보고서 내용이 부실하다고 해서 이후 정정하거나 다시 제출해야 한다는 규정 역시 없다.

 

지역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지방이라는 특성상 중앙정치와 거리가 있어 지방의원들을 철저히 견제·감시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지역 내 연고가 깊고 다선(多選) 의원일수록 더욱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며 사실상 지역 내 ‘왕’으로 군림하는 일이 다반사라고 이들은 지적한다. 김남규 전북참여자치연대 정책위원장은 “지역의 폐쇄적 특징 때문에 서로 형님·동생으로 얽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의원의 잘못도 지역에서 눈감아주는 일이 많다”고 지적했다.

 

지역 안에서 이들이 강력한 입김을 낼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는 다름 아닌 예산 심의권이다. 지방의원들이 이 권한을 앞세워 집행기관 공무원들에게 이권 관련 청탁을 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2015년 대구시의회 소속 한 의원이 자신의 땅 주변에 도로가 개설되도록 관련 공무원들을 끊임없이 압박한 사실이 드러나 처벌받기도 했다. 남기헌 충청대 행정학과 교수는 “사익을 위해 권한을 잘 악용하면서도 정작 필요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지 않아, 예산심의 전에 전문가를 섭외해 한두 시간 급히 과외수업을 받고 심의에 들어가는 의원들도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상당수 지방의회에서 여전히 의원들의 겸직이 허용되고 있어 자신이 운영하거나 이름을 올리고 크고 작은 이권을 챙겨주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김혜란 충북 참여연대 팀장은 “자신이 일하는 협동조합 회의를 시의회 회의실에서 진행한 시의원도 있었다”며 “사익 추구로 인해 의정에 소홀해지는 일을 막기 위해 현재 권고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겸직 금지를 국회처럼 강하게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역 안에서 감시 사각지대를 오가며 보이지 않는 권력을 행사하는 의원들을 제재할 일차적 역할은 의회마다 설치된 윤리위원회에서 해야 한다. 그러나 기껏해야 며칠간 의회 출석 정지 처분을 내리고 대부분 별다른 조치 없이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번 충북도 사태에 연루된 박한범 도의원은 2015년 술자리에서 공무원에게 술병을 집어던져 윤리위원회에 회부됐지만 징계할 정도가 아니라고 판단해 아무런 조치를 받지 않았다. 김학철 도의원 역시 지난 2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한 국회의원들을 ‘미친개’라고 표현해 논란이 됐지만 윤리위원회에서 ‘직접적 피해를 입은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혐의 없음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윤리위원회 구성을 보면 이 같은 처분이 당연할 수밖에 없다. 위원회 역시 대부분 의원들로 구성돼 각 사안에 대해 이들끼리 자체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솜방망이 처벌이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특정 정당이 사실상 의회 의석을 독점하고 있는 영·호남 지역의 경우 다른 정당 의원들 간의 최소한의 견제도 불가능해 제 식구 감싸기 행태가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2011년 9월26일 대전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회원들이 외유성 해외 연수를 다녀온 대전 유성구의회 의원들의 사퇴를 촉구하는 소환장을 만들어 구의원실에 전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권한 강화 앞서 주민 신뢰 회복 우선

 

애초에 선거 과정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당공천제가 시행되다 보니 정당을 향한 충성도나 인맥에 의해 공천이 주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정작 인물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이 이뤄지지 못할 뿐 아니라 주민들 사이에서도 ‘지방의원은 정당이 뽑는 인물’이라는 인식이 퍼져 선거 자체에 무관심해지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

 

지방분권이 한창 화두인 지금, 지방의회는 의회 자체 권한을 키워야 한다는 필요성이 강조되는 한편 일부 지방의원들의 권한 남용으로 인한 거센 비판도 받고 있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의원들의 부당한 행태를 비판하는 시민단체 관계자들도 의회 권한 강화엔 대체로 공감한다. 그래야 지방자치단체를 좀 더 확실히 견제해 투명한 지방자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기헌 교수는 “현재 중앙과 지방의회 간 권한과 기능 비중은 8대2로 쏠려 있으며 지방으로 이양된 2의 권한도 대부분 의회보단 지방자치단체에 기울어 있다”고 지적했다. 차준택 인천시의원 역시 “장기적으로 의회가 좀 더 강력한 권한을 가져야 하는 건 맞다”면서 “그 전에 스스로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 국민을 설득하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즉 모든 권한과 권력은 이를 위임한 주민의 공감이 전제됐을 때 비로소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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