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부모의 정신 건강은 안녕하지 못하다
  • 홍주환 인턴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8.0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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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 장애 자녀와 한시도 떨어질 수 없는 부모들...아이와 엄마 모두 고립돼

8월3일 오전 10시, 김우영(가명·16) 군이 탄 SUV 자동차가 서울의 한 특수학교 앞에 멈췄다. 운전석에서 우영이 엄마가 내렸다. 이선주(가명‧49) 씨는 바로 트렁크 문을 열어 발판을 꺼내 차와 바닥 사이에 댔다. 휠체어가 내려올 길이다.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도록 차 내부는 개조돼 있었다. 이씨는 차 안으로 들어가 휠체어를 고정하는 안전끈을 풀고 휠체어를 끌고 내렸다. 휠체어에 비스듬히 앉은 우영이를 일단 똑바로 앉혔다. 휠체어를 내린 뒤 다시 발판을 치우고 트렁크 문을 닫았다. 우영이의 외출에는 여러 단계가 필요하다. 요즘 같은 더위에는 이마에서 턱으로 흘러내리는 엄마의 땀은 필수다.

 

이씨에겐 두 명의 아들이 있다. 우영이의 형인 석진이는 8살이 많다. 두 아들 모두 중증 뇌병변 장애를 갖고 있다. 장애는 갑자기 찾아왔다. 석진은 3살 때 갑자기 입을 닫고 혼자 이동하지 못했다. 우영은 1살 때 같은 증상이 찾아왔다. 서 있다가 갑자기 꽈당 넘어지거나 눈에 초점이 흐려지는 일이 잦았다. 병원에서는 형과 똑같은 뇌변병 장애라고 했다.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2014년 장애인 실태조사’를 보면 뇌병변 장애인은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정도가 매우 높다. 특히 신체적인 어려움은 평생 이어지고 심지어 악화되기도 한다.  

 

중증 뇌병변 장애인의 경우 혼자서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항상 보호자가 옆에 있어야 한다. @사진=Pixabay


 

아이가 움직일 수 없다면 엄마도 어딜 갈 수 없다. 이씨는 직장을 그만둔 뒤 줄곧 아이들 옆을 지켰다. 벌써 20년간 그랬다. 이씨는 오전 5시에 하루를 시작한다. 우영이가 다니는 특수학교가 멀어 스쿨버스를 타려면 6시40분까지 준비를 끝마쳐야 한다. 일단 일어나면 우영이를 목욕시키고 밥을 먹인다. 우영이는 씹는 속도가 느리다. 아침 식사를 끝내면 1시간이 훌쩍 지난다. 혹시 음식물이 기도로 들어갈까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식사를 끝낸 우영이의 양치를 돕고 옷 입는 걸 돕는다. 그러면 6시40분이 다 돼 간다. 우영이를 스쿨버스에 태우면 끝이 아니다. 이제는 석진이의 하루가 똑같이 시작한다. 이런 하루가 매일매일 반복된다. 



73.1%의 장애인 부모, “1년간 혼자 두고 외출한 적 없다”

 

2015년 카톡릭대학교가 낸 보고서에 따르면 뇌병변 장애인의 보호자 중 73.1%가 최근 1년간 장애인을 혼자 두고 외출하는 횟수를 ‘0회’라고 답했다. 3.9%만이 5일 이상 장애인을 혼자 두고 외출했다고 답했다. “장애인 부모는 다 힘들겠죠. 거기에 등급을 매길 순 없을 거에요. 다만 저는 두 아들이 혼자 밥이라도 먹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저도 애들이 밥 먹는 동안만이라도 숨을 쉴 수 있을 테니까요.”

 

중증 뇌병변 장애인의 부모가 그나마 편할 때는 아이가 미성년일 때다. 학교가 낮 시간을 책임진다. 엄마는 휴식하거나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틈이 생긴다. 하지만 아이가 성인이 되면 이마저도 없다. 적당한 시설을 찾지 못한 아이는 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엄마는 집에서 아이 곁을 지킨다. 아이와 엄마는 그렇게 점점 고립돼 간다. 

 

성인 장애인을 낮 시간 동안 돌보는 주간보호시설이 있다. 서울에는 개인이나 사립재단이 운영하는 주간보호센터가 121개 있는데 이중 뇌병변 장애인이 갈 수 있는 곳은 106개다. 하지만 석진‧우영 형제처럼 중증 뇌병변 장애인을 받아주는 곳은 드물다. 2015년 보건복지부가 뇌병변장애인 3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최근 1년간 주간보호시설을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밝힌 뇌병변 장애인은 6.5%에 불과했다.

 

석진이가 특수학교를 졸업하기 전인 2014년 이씨도 주간보호시설 곳곳을 돌아다니며 아이를 받아줄 수 있는지 알아봤다. “혼자서 신변 처리가 안 되는 아이는 받기 힘들다”, “이미 자리가 꽉 찼다”는 대답을 들어야 했다. 보건당국에 호소해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돌아왔다. 서울시 관계자는 “개인이나 사립재단이 운영하는 주간보호시설에 대해서 권고조치는 할 수 있어도 아이를 받으라고 강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서울에는 뇌병변 장애인이 갈 수 있다고 돼 있는 주간보호센터가 106개지만 실질적으로 뇌병변 장애인을 받아주는 곳은 6개에 불과하다. @사진=Pixabay

 

아이 돌보는 엄마들의 정신적 고통은 심각하다 

 

맡길 곳도 없이, 아이와 온 종일 붙어 있고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일을 반복하면 엄마는 외롭고 우울해진다. 2015년 카톨릭대가 펴 낸 연구보고서 ‘뇌병변장애인 지원서비스 현황 분석 및 지원 정책 방향’에 따르면 뇌병변장애인 보호자의 우울지수는 평균 22.98점이었다. 일반인 평균(5.03)보다 4배 이상 높았다. 우울증을 의심하는 기준인 16점을 훌쩍 뛰어넘는다. 발달장애인 보호자의 평균(19.43)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다른 유형별 장애인 보호자와 비교해도 최고 수준이었다. 

 

이씨는 친구를 거의 만나지 않는다. 만날 시간도 부족했지만 만날 의지도 사라졌다. “저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 같더라고요. 아이가 이번에 시험에서 몇 점을 받았다, 어디를 놀러 갔다 왔다...이런 평범한 이야기만 들어도 질투가 나고 박탈감이 들었어요. 자존감이 떨어져서 같이 있을 수가 없었어요. 결국 점점 모임에 안 나가면서 친구들과 멀어지게 됐어요.”

 

그러다보면 엄마도 결국 아프다. 이씨는 정신과 약을 복용했다. 10년 전 갑자기 숨이 막히는 증상이 생겼다. 괜찮아질 줄 알았지만 어느 순간 숨을 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길을 가다가 이씨는 그대로 쓰러졌다. 공황장애, 그리고 폐소공포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솔직히 “도망가고 싶었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그러면 아이들은 누가 돌보지’라는 걱정으로 버텼다. “몇 년 전에는 우영이가 다니는 특수학교의 한 학부모가 자살했어요. 그 집 아이도 뇌병변 장애였어요.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그 집 아이 생각이 먼저 나더라고요. 혼자 떠나면 아이는 어쩌라고….”  

 

공황장애와 폐소공포증 약을 10년 동안 먹었다. 약 덕분인지 증상은 차츰 나아졌고 지금은 약을 먹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같은 증세는 불현듯 찾아올 때가 있다. “지금도 가끔 정신과에 가봐야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시사저널 디지털뉴스팀


아이를 향한 근심은 모두 부모의 몫 

 

석진이는 이씨가 다니던 교회에서 도움을 받았다. 2015년 석진이는 특수학교를 졸업하고 교회 시설로 왔다. 아이 관리는 부모들의 몫이라 이씨는 매일 시설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하지만 이 시설은 임시로 교회에서 내준 것이라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 우영이가 졸업한다면 어디로 가야할지도 고민이다. 교회 시설은 이미 포화상태다. 그래서 벌써 이씨는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우영이를 맡아 줄 시설을 알아보고 있다. 서울에 6개에 불과한 뇌병변 전문 주간보호시설은 이미 대기번호가 30~40번이다.

 

2015년 11월 시행된 발달장애인법에서도 뇌병변 장애인은 빠졌다. 발달장애인법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지원센터‧직업훈련센터 등을 여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법안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강조됐던 ‘뇌병변장애’는 포함되지 못했다. 법안에서 빠진다는 건 법적·제도적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결국 모든 노력은 부모의 몫으로 넘어갔다. 이씨는 지금 사이버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있다. 아이들이 자는 심야 시간을 이용한다. 10시 이후에야 책을 펴고 공부할 수 있다. 벌써 3학년이다. 졸업한 뒤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따면 주간보호시설을 운영할 수 있다. “나중에 내가 세상에 없어도 석진이와 우영이는 남을 거 아니에요. 그전에 아이들이 안전하게 있을 곳을 두 눈으로 꼭 확인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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