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 보면서 납품한다’는 조달청의 이상한 기획조사
  • 차성민 인천취재본부 기자 (sisa312@sisajournal.com)
  • 승인 2017.08.08 15:08
  • 호수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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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부처 간 ‘엇박자’로 폐아스콘 재활용 정책 ‘먹통’

 

조달청은 3월20일부터 4월28일까지 순환(재생) 아스콘을 생산하는 업체 48곳을 상대로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3월16일 순환 아스콘을 일반 아스콘으로 속여 300억원의 부당이익을 챙긴 업자가 경찰에 적발된 데 따른 후속 조치였다.

 

한 달여 후인 5월22일 결과가 발표됐다. 조달청은 48개 조사업체 중 21곳이 부당 납품행위를 했다고 밝혔다. 순환 아스콘을 일반 아스콘으로 속여 납품한 업체 1곳이 추가로 적발됐다. 불법 하청을 줘서 물량을 생산한 업체도 여러 곳 적발됐다. 주목되는 사실은 일반 아스콘을 순환 아스콘으로 속여 판 업체도 있었다는 점이다. 일반 아스콘의 생산 단가는 순환 아스콘보다 비싸다. 아스콘을 납품하면 할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인 것이다. 그럼에도 적발된 21곳 중 16곳이 손해를 보면서 비싼 자제를 납품했다는 것이 조달청의 조사 결과였다.

 

 

300억대 부당이익 챙긴 아스콘업자 적발

 

업계 일각에서는 “일부 업체들이 자료를 조작해 조달청 조사를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번 조달청 기획조사에 투입된 인원은 모두 4명이다. 한 달 동안 2인 1조로 48개 업체를 조사한 것이다. 한 조당 하루에 업체 두 곳의 자료를 들여다봐야 했다. 그 때문에 제대로 된 전수조사가 진행됐겠느냐는 것이다.

 

조사를 앞두고 조사 계획을 알리는 공문을 미리 보내거나, 전화로 조사 착수를 통보한 사실도 확인됐다. 자유한국당 엄용수 의원실 관계자는 “사기업이 손해를 보며 납품했다는 것을 어느 누가 믿을 수 있겠냐”며 “현재 조달청에 조사 방법과 데이터를 따로 요구하는 등 조사 과정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폐아스콘을 이용해 생산한 재생아스콘을 일반아스콘으로 속여 판 아스콘업체 부회장 이모(44)씨 등 2명을 구속했다. © 사진=뉴시스

조달청 측도 일부 조사가 미진했다는 점은 인정했다. 조달청의 한 관계자는 “실제 매입·매출 장부와 회사별로 아스콘 생산에 쓰인 컴퓨터 기록 등을 확인하는 식으로 조사를 진행했다”며 “조사 인원이 적어 실제 반입량과 남아 있는 폐아스콘 양을 육안으로 확인하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미리 업체에 공문을 보낸 것은 행정조사기본법 제17조에 따라 조사의 사전통지를 시행한 것”이라며 “조달청에 조사권한이 없어 자료 조작 사실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도대체 아스콘 업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관급공사에 아스콘을 납품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정부의 폐아스콘 재활용 정책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정부는 2009년 폐아스콘의 음성적 불법매립과 공사비용 증가, 환경오염 등 악순환을 막기 위해 ‘건설폐기물의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을 정비했다. 이 법률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 공기업, 정부출연기관 등이 발주하는 공사에 의무적으로 순환골재 아스콘 제품을 사용해야 한다. 2016년부터는 순환골재 비율을 40% 이상으로 강제했다. 이를 지키지 않은 지자체 등에는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정부는 업체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지자체, 조달청, 한국도로공사, 재생아스콘업계 등과 함께 ‘재생아스콘 사용촉진 자발적 협약서’까지 체결했다. 재활용이 목적일 경우 협약기간 동안 아스콘 공장들이 처리비용을 별도로 받지 않고 무상으로 처리한다는 내용이었다. 시행 초기만 해도 어느 정도 정부 지침이 먹혔다. 하지만 국가기관의 발주는 좀처럼 늘지 않았다. 각종 도로공사 현장에서 발생하는 폐아스콘은 연간 1200만 톤가량으로 추정된다. 반면 폐아스콘을 재활용한 순환골재 발주량은 평균적으로 200만~250만 톤에 불과하다. 결국 업체들이 폐아스콘을 수거해가면 손해를 보는 구조로 변질된 것이다.

 

실제로 법에 명시된 의무사용량을 지키지 않은 지자체 등 공공기관이 최근 무더기로 적발됐다. 환경부는 4월 광역지자체의 순환골재 및 순환골재 재활용제품 의무사용 대상 사업 778곳 중 위반이 의심되는 164개 사업을 선정해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118개 사업장에서 순환골재 등을 의무로 사용하지 않았다. 지자체별로는 강원도와 경남도가 위반율 77%(37개 위반/48개 사업)로 가장 높았고, 경기도가 70%(26개 위반/37개 사업), 인천시가 58%(18개 위반/31개 사업)로 나타났다.

 

 

“폐아스콘 써라” vs “품질 확보 안 됐다”

 

정부 부처의 엇박자 행정이 이어지면서 폐아스콘 수거량은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업계는 정부 부처가 발주한 공사 기간 연장에 따른 추가 비용은 물론 폐기물 처리비용도 따로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아스콘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폐아스콘을 무료로 수거해가던 업체들이 줄어들면서 공사기간이 연장되고 폐아스콘 수거비용도 따로 지출하고 있다”며 “정부의 엇박자 행정으로 업계만 속병을 앓고 있다”고 말했다. 조달청 관계자도 “환경부와 국토교통부의 법령 자체에 충돌이 있어 폐아스콘 재활용 정책이 엇박자를 보이고 있는 것 같다”며 “법령 개선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 안상수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환경부와 국토부, 조달청 등의 정책방향이 한곳으로 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이번 기회에 순환골재 사용에 대한 법적 근거를 명확히 만들어 업체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며 법률 개정의 필요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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