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지금 文 대통령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 박영철 편집국장 (everwin@sisajournal.com)
  • 승인 2017.08.09 17:13
  • 호수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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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은 1451호 커버스토리로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을 다뤘습니다.

 

8월17일이 딱 100일이라서 그렇습니다. 여러 분야가 있지만 일단 정치·경제·사회 분야에 초점을 맞춰 조명했습니다.

 

기사 내용은 잡지를 보면 아실 테니 여기서는 언급을 생략하겠습니다. 특이한 점은 최근 발표된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77%로 굉장히 높은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인수위도 없이 출범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경이적인 지지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이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라 ‘시끄러운 아침의 나라’가 된 지 오랩니다. 이런 나라에서 국민들의 현재 만족도가 높다는 것은 어찌됐든 다행입니다. 그가 계속 잘해서 임기를 잘 마치기 바랍니다.

 

© 사진=연합뉴스

 

오늘 여기서는 그가 취임 1년을 행복하게 맞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거론할까 합니다. 한국인의 시간관념상 남녀관계든 뭐든 100일 다음에는 1년이 중시돼서 그렇습니다. 여기에 참고가 될 만한 우리의 고사성어를 소개합니다. 바로 조선 태종의 ‘책내재여(責乃在予)’ 정신입니다. 책내재여는 ‘책임은 내게 있다’는 뜻입니다. 태종판 ‘내 탓이오’라고 해석하시면 되겠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태종 3년(1403년) 5월5일 경상도 조운선(물길을 통해 조세를 한양으로 운반하는 배) 34척이 침몰해 1000여 명이 죽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이때 생존자 한 명이 도망가다가 붙잡혔는데, 머리를 깎고 이 조세를 운반하는 힘든 일에서 벗어나려고 했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를 듣고 태종은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책임은 내게 있다. 만인을 몰아서 사지(死地)에 나가게 한 것이 아닌가? 닷샛날은 음양에 수사일(受死日)이고, 또 바람 기운이 대단히 심하여 행선(行船)할 날이 아닌데, 바람이 심한 것을 알면서 배를 출발시켰으니, 이것은 실로 백성을 몰아서 사지로 나가게 한 것이다.”

그리고 “쌀은 아까울 것이 없지만 사람 죽은 것이 대단히 불쌍하구나. 그 부모와 처자의 마음이 어떠하겠는가”라고 탄식하면서 조운하는 작업이 힘들어서 도망치는 사람이 나오는 것도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신하가 “그렇다고 조세를 육로로 옮기면 어려움이 심합니다”라고 발언하자 태종은 “육로로 운반하면 소나 말이 수고를 할 뿐이지, 적어도 사람이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고 합니다.

 

흔히 태종은 권력을 위해 이복형제와 사돈까지 가차없이 죽인 비정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이 태종의 큰 핸디캡으로 작용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종이 롱런한 비결이 뭘까요. 원인이 다양하지만 태종의 이런 책임감도 한몫했다고 봅니다.

 

문 대통령은 당선 직후 적폐청산과 국민통합을 국정의 양대 축으로 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취임 후 행보를 보면 적폐청산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적폐청산,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적폐청산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가능하면 ‘적폐’라는 말을 쓰지 않고 묵묵히 할일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적폐청산의 대상인 사람이 너무 많이 장관급으로 임명돼 이 말에 대한 기대감이 많이 낮아진 탓입니다.

 

앞으로 남은 9개월 동안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대형 사건·사고가 많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잘 쓰기 쉬운 변명이 ‘전 정권의 적폐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러면 발전이 없고 사건·사고만 되풀이됩니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 당시 ‘개발시대의 적폐 때문에 다리가 무너졌다’는 식의 책임 떠넘기기형(型) 기사가 많았습니다. 그 결과는 현재진행형 ‘부실공사 공화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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