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잃어버린 10년’ 그린 영화 《공범자들》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8.14 16:15
  • 호수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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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방송 권력과 맞짱 뜬 저항의 기록

지난해 겨울 서울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 광장에서 벌어졌던 풍경을 떠올려 보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불거진 박근혜 정권의 부패를 심판하기 위해 대한민국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향했다. 각 언론사 취재차량 역시 광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곳에 모인 대다수 사람들의 분노는 청와대만을 겨냥하지 않았다. 공영방송 KBS와 MBC의 취재는 촛불을 든 이들에 의해 번번이 가로막혔다. 취재를 나온 인력들은 모진 욕설과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세월호 사건을 기점으로 완벽하게 신뢰를 잃은 공영방송을 향한 민심이 어느 정도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권부터 임기 도중 탄핵된 박근혜 정부까지 대한민국이 보낸 세월을 가장 압축적이고 자조적으로 표현한 문장은 ‘잃어버린 10년’이다. 그 10년간 잃어버린 것은 비단 죄 없는 생명들과 국가의 품격뿐만이 아니다. 언론의 역할과 자존심 또한 형편없이 망가졌다. 특히 공영방송의 신뢰도는 끝도 없이 추락했다. 어디에서부터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걸까. ‘기레기’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그리고 추하게 무너져 내리는 공영방송의 내부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영화 《공범자들》의 메인포스터 © 사진=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공범자들》은 공영방송을 망친 주범과 공범자들의 실체를 찾아 지난 10여 년의 잔혹사를 좇는 다큐멘터리다. 지난해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자백》을 선보였던 최승호 뉴스타파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우리는 어떻게 공영방송을 잃어버렸는가

 

이 다큐는 ‘점령, 반격, 기레기’라는 세 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다. 지난 10년간 공영방송이 어떻게 점령됐고, 그 안의 구성원들은 어떻게 반격을 펼쳤으며, 끝내 패배한 뒤 어떻게 기레기로 전락했는지의 과정이 담겼다. 시작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취임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임기 중 검찰총장과 KBS 사장에게는 전화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들었던 정연주 전 KBS 사장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해임됐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포함한 낙하산 인사들은 시사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그 자리에 4대강 사업 관련 이슈 등 MB 정부의 사업을 알리는 홍보 채널을 채워 넣는 역할을 자처했다.

 

MBC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PD 수첩》의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관련 보도로 대국민 촛불 집회의 포문이 열렸고, 이 열풍이 사그라드는 시점에 《PD 수첩》 팀은 허위 보도 혐의로 검찰수사의 대상이 됐다. 간판 시사 프로그램들은 줄줄이 난도질을 당했고 정부 비판적 PD와 기자들은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후 김재철·길환영 등 친정부적 낙하산 인사들이 공영방송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언론인이 제대로 질문할 수 없도록 입과 발이 묶이는 사이 공영방송은 착실하게 권력의 홍보 기지가 되어 갔다. 세월호 참사 전원 구조라는 역사적 오보와 편파보도는 이 모든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예고된 결과였다.

 

《공범자들》이라는 제목의 의미는 다큐가 진행될수록 점점 더 뚜렷해진다. 이명박 전 대통령, 이 행태를 그대로 물려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 권력의 하수인이 되기를 자처했던 모두가 공범이다. 최승호 감독은 권력의 부패한 칼이 닿은 KBS와 MBC가 망가져 내리는 모습을 끈질기게 추적해 일목요연하게 이를 고발한다. 이 다큐가 가장 중요하게 담고 싶었던 과정일 테다. 김재철·길환영·고대영·김장겸·안광환 등 ‘권력자’라는 말로 단순히 뭉뚱그려졌던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꺼내어 그들에게 책임을 묻는 태도 역시 잊지 않는다. 《자백》에서 김기춘·원세훈 등 핵심 인물을 거침없이 찾아가 질문을 던졌던 감독의 저돌적 취재 방식도 여전하다. 이번 다큐에서도 어김없이 MB가 등장하고, 그를 찾아간 최 감독은 묻는다. “언론을 망가뜨린 주범이라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최승호 뉴스타파 감독(왼쪽)이 김재철 전 MBC 사장을 상대로 인터뷰하고 있다. © 사진=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동시에 최승호 감독의 카메라는 ‘반격’ 챕터를 시작으로 ‘기레기’에 이르기까지 공영방송 종사자들이 벌인 저항의 기록 역시 충실히 좇는다. 이는 구성원들이 결코 손 놓고 이 사태를 바라보지만은 않았다는 증거다. 부당한 이유로 쫓겨난 KBS와 MBC의 수많은 해직 노동자들, 노조를 만들어 투쟁했던 이들의 지난날이 여기에 있다. 이 다큐는 표면적으로는 패배로 끝났지만, 안에서는 계속해서 부당한 처사에 목소리를 드높이며 투쟁을 이어왔던 동료들에 대한 최승호 감독의 헌사이기도 한 셈이다. 《공범자들》이 다큐가 좇는 사건의 충실한 기록일 뿐 아니라 영화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MBC의 대표적 해직 노동자인 최승호 감독은 ‘내부자’였던 사람이 사태를 바라보는 데 필요한 중립성을 비교적 잘 지켜낸다. 감독은 투쟁의 의미를 스스로 결론 내리는 대신, MBC 해직 기자 이용마의 한마디로 갈음한다. “우리 싸움의 의미는, 암흑의 시대에 침묵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최승호 감독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최승호 감독이 지금 《공범자들》을 만든 이유는 명확하다. 여전히 KBS와 MBC는 공범자들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으로부터 방송을 독립시키기 위해 만든 임기제도 등의 방어막은 이들이 자신들의 임기를 지키는 데 이용되고 있다. 김장겸 현 MBC 사장은 2020년 2월까지, 고대영 현 KBS 사장은 2018년 말까지 임기가 남아 있다. 극우 인사들이 다수 포진된 방송문화진흥회와 KBS 이사회에 이들의 해임 처분을 기대할 순 없다.

 

정권 교체 사실과는 별개로 그대로 두면 공영방송이 지금보다 더 처참하게 망가질 수 있다는 우려는 최승호 감독으로 하여금 카메라를 들게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다큐를 통해 공영방송의 잔혹사가 과거에 갇힌 사건이 아닌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역사임을 말한다. SNS 라이브로 “김장겸은 물러나라”라는 구호 운동을 전파시킨 김민식 MBC 드라마 PD를 비롯한 이들은 국민들에게 공영방송을 제대로 돌려주기 위한 반격을 다시 한 번 준비하고 있다.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이대로 지지 않겠다는 의지다. 《공범자들》이 관객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영화 《공범자들》의 한 장면 © 사진=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8월17일 개봉을 앞두고 MBC는 《공범자들》에 대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명예훼손 및 초상권 침해 등이 그 이유였다. 8월11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영화상영금지가처분신청 심리가 열릴 예정이었으나, 재판부가 관련 내용을 더 알아봐야 한다고 해 심리가 무기한 연기됐다. 최 감독은 “가처분 신청은 공영방송 회복의 염원을 품고 있는 국민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 시민들이 투자자로 나서 이 다큐의 제작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점을 생각해 보라”며 일침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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