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구속 180일’ 삼성에 무슨 일 있었나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17.08.16 09:34
  • 호수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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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자사주 소각, 뒤로는 지주사 전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순실 게이트’로 구속된 지 반년이 지났다. 구치소와 재판정을 오가며 재판을 받아온 그에게 특검은 8월7일 징역 12년의 중형을 구형했다. 운명을 가를 1심 선고 공판은 오는 8월25일로 예정됐다. 이날 실형이 확정될 경우 이 부회장은 힘든 수감생활을 이어가야 한다. 그가 이처럼 고난을 면치 못하게 된 것은 경영권 승계 작업 때문이다. 2015년 단행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이 부회장 구속의 결정적 계기였다.

 

삼성그룹은 그동안 ‘이재용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벌여왔다. 삼성전자를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그림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이 바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다. 제일모직 지분 23.2%를 보유했던 이 부회장은 두 회사의 합병을 통해, 통합 삼성물산 지분 16.5%(2017년 1분기 현재 17.08%)를 보유한 최대주주가 됐다. 그러면서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 4.25%를 우호 지분으로 확보하게 됐다.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월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결심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이 부회장 출소 후 승계 작업 본격화

 

업계에서는 다음 순서로 삼성전자의 지주사 전환설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삼성전자를 투자법인과 사업법인으로 인적분할한 뒤 투자법인을 삼성물산과 합병한다는 것이 골자다. 합병이 마무리되면 ‘통합 삼성물산’의 삼성전자 지분율은 18%대까지 늘어난다. 삼성전자 지분이 0.6%에 불과한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구조가 완성되는 것이었다. 여기에 삼성생명(7.55%)과 삼성화재(1.32%)가 보유한 지분 8.87%까지 더하면 계열사들이 보유한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우호 지분율은 27%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뿐만 아니라, 작업이 마무리되면 이 부회장은 통합 삼성물산에 부친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으로부터 상속받게 될 지분을 매각해 증여세를 마련할 수도 있었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 지분 3.57%와 삼성생명 지분 20.76%를 각각 보유 중이다. 그러나 막대한 증여세가 상속의 걸림돌이었다. 이 회장의 지분을 시가로 환산하면 16조원대에 달하는데, 이 중 절반인 8조원 정도가 증여세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에 상속 지분을 매각하게 되면,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에 대한 지배력은 유지하면서 막대한 규모의 증여세도 마련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

 

예상대로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지주사 전환계획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올해 2월 이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승계 작업에 제동이 걸렸다. 두 달 뒤인 4월에는 삼성전자가 지주사 전환을 포기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그러면서 삼성전자는 자사주 전량을 소각하겠다는 결정도 내렸다. 삼성전자가 소각하는 자사주는 전체 발행주식 수의 13.3%로 40조원 규모다. 또 연내 9조3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는 계획도 제시했다.

 

삼성전자의 자사주 소각 방침은 ‘지주사 전환 의지가 없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사 전환을 할 경우 의결권이 살아날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앞서 많은 재벌기업들이 자사주를 지주사 전환과 승계 작업에 이용해 왔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자사주 소각이 완료되면, 이 부회장이 지주사 전환을 하게 되더라도 의결권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다면 삼성전자가 이처럼 이 부회장에게 불리한 결정을 내린 까닭은 무엇일까. 일단 삼성전자는 ‘경영상 판단’이라는 입장을 내놓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의 재판을 유리하게 이끌어가기 위한 결정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편의를 제공받는 대가로 최순실 일가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이 부회장 측은 합병이 경영권 승계가 아닌 순환출자 구조 정리를 위한 목적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주사 전환이 강행될 경우 경영권 승계가 ‘현재진행형’임을 자인하는 형국이 된다. 삼성전자가 지주사 전환 폐기를 밝힌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재 지주사 전환은 중단됐지만, 업계에서는 향후 어떤 방식으로든 이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승계 작업이 재개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그렇다면 여기엔 어떤 방법이 동원될까. 현재로선 삼성물산이 삼성전자를 대신해 지배구조의 핵심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가장 유력하다. 현재 삼성물산은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올라 있다. 올 1분기 말 기준 삼성물산은 삼성전자(4.25%)·삼성엔지니어링(6.97%)·삼성SDS(17.08%)·삼성바이오로직스(43.44%)·삼성생명(19.3%) 등 주요 계열사들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룹 내 7개 순환출자 고리의 중심에 있기도 하다. 사실상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삼성물산이 향후 삼성전자 지배력 강화를 위해 지분 매입에 나설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문제는 매입 자금이다. 8월10일 현재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297조원 규모다. 지분 1%를 확보하는 데 3조원 가까운 자금이 필요한 셈이다. 반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삼성물산의 현금성 자산은 2조1860억원 정도다. 따라서 삼성물산이 단기간 내 삼성전자 지분을 늘리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로 자금 마련책으로 보유 자사주(13.8%)를 활용한 교환사채(EB) 발행이 거론된다. 그러나 자사주는 이 부회장의 삼성물산 지배력을 공고히 해 주는 것이어서, 자금 조달에 활용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평가된다.

 

이 부회장이나 삼성물산이 이 회장 소유의 지분을 증여받아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이 16조원대의 이 회장 지분을 직접 상속받을 경우 상속 및 보유 지분 처분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많다. 이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보유 중인 삼성SDS 지분 9.2%를 매각해 상속 재원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삼성SDS 지분 가치가 1조원대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속세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회장이 수증자(受贈者)를 삼성물산으로 돌릴 수도 있다. 이 경우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에 대한 간접 지배력을 추가 확보할 수 있지만, 삼성물산이 증여세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물론 변수도 존재한다. 현재 국회에 발의돼 있는 경제민주화법안이 그것이다. 지주사의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긴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지주비율이 50%를 넘는 삼성물산은 지주사로 강제 지정된다. 지주비율은 지주사의 자산총액 가운데 계열사 주식가치의 비율을 말한다. 기존 법률은 지주사가 1대 주주인 자회사 지분만 지주비율 계산에 포함했다. 그러나 개정안은 보유한 계열사의 주식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물산이 3대 주주인 삼성전자와 2대 주주인 삼성생명이 새로 지주비율의 분모에 포함되는 것이다.

 

삼성물산이 지주사로 강제 지정될 경우, 현행 공정거래법에 명시된 자회사 최소지분율(상장사 20%·비상장사 40%)을 맞춰야 한다. 삼성전자나 삼성생명 등 계열사 지분을 추가로 매입해야 하는 것이다. 삼성물산의 자금 여력을 감안하면 이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당장 15%대의 삼성전자 지분 매입 비용만 40조원대에 달한다. 특히, 개정안에는 지주사의 자회사 최소지분율을 늘리는 방안(상장사 30%·비상장사 50%)도 포함돼 있다. 이 법안도 통과될 경우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 추가 매입에 투입해야 할 자금은 70조원대로 늘어나게 된다.

 

© 시사저널 임준선

 

국회 발의된 경제민주화법안 ‘최대 변수’

 

지주사 지정을 피하기 위해 지주비율 비중이 큰 삼성전자나 삼성생명의 지분을 매각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들 회사가 그룹의 핵심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각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평가된다. 반대로, 합병 등을 통해 삼성물산의 자산총액을 늘려 지주사 지정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등 핵심 계열사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기 어려워진다는 한계가 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현 공정거래법은 지주사의 금융사 지분 보유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비금융사가 금융사를 소유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중간금융지주회사법이 추진됐지만, 현 정부 들어 사실상 폐기됐다. 따라서 삼성물산이 지주사로 전환될 경우, 소유 중인 삼성생명 지분 19.34%를 처분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삼성생명을 외부에 매각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 7.55%를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삼성카드·삼성화재·삼성증권 등 금융계열사들의 핵심주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국 삼성생명 지분을 그룹 내에서 정리해야 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향후 삼성전자의 지주사 전환 카드를 다시 꺼내들 것이라는 견해도 많다. 자사주가 없더라도 지주사 전환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대내외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나면 언제든지 지주사 전환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지주사 전환은 여전히 IB 업계에서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를 장악하기 위한 최고의 시나리오로 꼽히고 있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삼성그룹이 안팎의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삼성전자가 자사주를 활용하지 못하더라도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하는 계획을 여전히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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