웜비어 사망과 북핵도 막지 못한 북한 관광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7.08.21 11:54
  • 호수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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웜비어 북한행 주선한 중국 여행사 여전히 성업…현지에서 본 북한 주민들 분위기 평온

 

북한에 17개월 동안 억류돼 있다가 풀려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사망한 지 약 2개월이 지났다. 그는 올해 6월13일 혼수상태로 본국에 돌아왔고, 결국 6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미국 내에서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북한 여행을 통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결국 미국 국무부는 “9월1일부터 북한 방문을 위한 미국 국적 여권의 사용을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반면 유럽에선 여전히 북한을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는 것으로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됐다. 주체 트래블 서비스(Juche Travel Services)는 북한 여행을 전문적으로 알선하는 영국의 여행사다. 이 회사는 매년 여름마다 외국 학생들이 북한에서 관광을 하며 한글을 배울 수 있는 ‘한국어 여름 스쿨투어’ 프로그램을 주최하고 있다.

 

주체 트래블 서비스의 ‘2017 한국어 섬머 스쿨투어’를 인솔한 영국인 벤자민 그리핀이 기자에게 보내온 현장 단체사진. 스쿨투어 참가자들은 북한 최고 교육기관으로 꼽히는 김형직 사범대학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왼쪽 일곱 번째 안경 낀 사람이 기자와 이메일로 인터뷰한 김영일씨(31)다. © 사진=김영일 제공

 

북한 전문 여행사 “미국인은 여전히 관광 제한”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7월2일부터 24일까지 3주 일정으로 북한에 다녀왔다. 웜비어가 숨을 거둔 지 불과 2주 뒤였다. 한국계 네덜란드인 김영일씨(Young-il Kim·31)도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는 현재 네덜란드 위트레흐트(Utrecht)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이다. 김씨는 “호기심이 북한을 찾은 가장 큰 이유였다. 북핵 문제 등으로 언론에 나오는 현지 상황을 직접 둘러보고 싶었다”고 북한 방문 이유를 밝혔다.

 

웜비어가 최근 사망한 사실에 대해서도 그는 알고 있었다. 웜비어가 사망한 뒤로 미국은 북한 여행을 통제하는 분위기지만, 김씨가 북한을 방문하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인들도 북한을 방문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지금도 여전히 북한 관광 프로그램이 많이 운영되고 있다. 주체 트래블 서비스는 내년에도 (한국어 스쿨투어와)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어 한다. 내가 아는 바로는 다른 여행사들 중에서도 북한 관광 프로그램을 취소한 곳은 없다.”

 

실제로 중국에 본사를 둔 북한 전문 여행사 ‘영 파이오니어 투어(Young Pioneer Tours)’는 지금도 북한 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여행사는 웜비어의 북한행을 주선한 곳이다. 영 파이오니어 투어는 현재 홈페이지를 통해 북한 관광 참가자들을 모집하고 있다. 중국에 있는 또 다른 북한 전문 여행사 ‘고려투어(Koryo Tours)’도 북한 관광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들 여행사 두 곳에 이메일을 보내 북한 관광에 대해 문의했다. 모두 “미국 시민만 아니라면 북한을 방문하는 데 제한이 없다”는 취지의 답변을 보내왔다.

 

미국 국무부는 9월1일부터 북한 방문을 제한한 상태다. “미국 시민이 체포되거나 오랫동안 구금당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웜비어의 경우 호텔에서 정치 선전물을 훔쳤다는 이유로 노동교화형 15년을 선고받았다. 김영일씨 역시 이러한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

 

“사실 한국어 스쿨투어 참가자 가운데 북한이 위험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가 북한으로 떠나기 직전에 웜비어 사망 사건이 터졌다. 스쿨투어 참가자 모두 그 사건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웜비어가 했던 어떤 행동이 문제가 됐는지에 대해서도 모두 들었다. 우리가 규칙을 잘 지키면 그 어떤 문제도 생기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당시 북한은 바깥 세계에 대한 위협도 이어갔다. 김씨가 북한에 머물렀던 7월 한 달 동안 북한 당국은 ICBM급 미사일을 두 차례나 발사했다. 급기야 8월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을 향해 “미국을 위협하면 ‘화염과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북한도 “괌의 미군기지에 대한 포위사격을 검토 중”이라고 받아쳤다. 북·미 관계가 명백히 긴장 국면에 들어선 모양새였다.

 

하지만 김씨가 묘사한 북한의 모습에선 긴장된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북한 평안도에 위치한 묘향산에 올랐을 때였다. 북한 주민들이 춤을 추는 자리에 우연히 어울리게 됐다”며 “우리 가운데 미국인은 없었지만 외모를 봤을 때 몇몇 일행은 보통의 미국인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적개심도, 불신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들에게 술을 권하며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줬다”고 말했다.

 

금수산태양궁전에 걸린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사진을 향해 북한 주민들이 허리를 숙이고 있다. © 사진=김영일 제공

 

‘미국놈’ ‘일본놈’…반면 “남한 사람은 달랐다”

 

김씨는 “서양 언론에서 북한은 항상 악(惡)의 축으로 묘사됐지만 그곳 주민들의 모습은 달랐다”며 “북한의 빈곤은 대북제재의 영향도 일부 있는 것 아니냐. 서양 언론은 빈곤을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도구로 이용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 주민들이 남한에 우호적이라는 얘기도 했다. 김씨는 “나의 아버지가 남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북한 주민들은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았다”며 “그들은 미국인이나 일본인을 언급할 때 ‘미국놈’ ‘일본놈’(김씨는 이 부분만 한글로 적었다)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남한 사람들에 대해선 그런 식으로 부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남한과 북한이 발전적인 관계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전문가가 아닌 개인 의견을 전제로 이렇게 말했다.

 

“북한 주민들이 남한에 적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남한 사람들이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남한의 젊은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점점 더 모르는 것 같다. 북한 때문에 군복무를 해야 한다는 점이 결국 남한 사람들이 북한을 증오하는 원인이 된 것 같다. 아니면 현재 상황에 만족하고 통일에 찬성하지 않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이는 서로의 관계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라고 생각한다.” 

 

7월4일 ICBM급 미사일 ‘화성-14형’ 시험발사 성공을 축하하기 위해 7월7일 평양 시내에서 열린 퍼레이드. 버스 안에는 화성-14형 발사에 참여한 과학자들이 타고 있었다. © 사진=김영일 제공

 

평양 부흥 지하철역. 벽면 곳곳에 북한의 미술창작단체 ‘만수대창작사’가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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