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갓코가 있었다면 산으로 피난해 살았을 텐데…”
  • 이인자 도호쿠대학 교수(문화인류학)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8.22 16:57
  • 호수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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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 피해 아이들 보며 안타까움에 떠올리는 ‘야마갓코(山學校)’의 추억

 

[편집자 주]

일본 도호쿠(東北)대학에서 문화인류학을 가르치는 이인자 교수는 재일교포·묘제(墓制) 연구의 권위자이며 동일본대지진 연구에서 세계 일인자로 평가받는 석학(碩學)이다. 이 교수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한 후 피해지역을 답사하며 재난에서 살아남은 희생자 유족과 생존자들의 정서적 피해와 복구에 대해 연구해 왔다. 

지난 1451호에서 쓴 쓰나미 피해로 마을을 잃은 주민의 이야기를 좀 더 하려 합니다. 제가 일본에 산 지 20년도 훨씬 넘었지만 재해지역 조사를 하면서 처음 알게 된 일본말이 많습니다. 그중에 인상적인 말이 ‘야마갓코(山學校)’입니다. 일본어의 야마란 산을 뜻합니다. 그리고 갓코란 학교를 뜻하지요. 한자 그대로 ‘산학교’입니다. 재해지역의 연구조사가 항상 어둡고 우울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그렇지 않은 시간도 많습니다. 주로 옛이야기를 하거나 그때 일들을 함께 기억하고 나눌 수 있는 지역사람들의 모임에서는 여느 마을 모임과 다르지 않게 웃고 떠들어 소란스럽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조사자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주민들 © 사진=이인자 제공

 

“학교는 싫어했지만 야마갓코는 좋아했어”

 

그런 자리에 저나 제 지도 학생(즉 대학 사람들)이 있을 때 으레 나오는 말이 야마갓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학교는 싫어했지만 야마갓코는 좋아했어. 대학은 안 갔지만 우린 야마갓코에 갔었는데 혹시 알아?” 처음 조사에 따라온 학생이라도 있을 때엔 더 흥에 겨워하며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많은 것은 야마갓코에서 배웠지. 야마갓코를 모르는 사람은 그것만 모르는 게 아니라 인생을 모르는 거지.” 눈이 똥그래지면서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한 학생은 “산에서 캠프 하는 야외학습인가요?”라고 물어봅니다. 그 뜻을 알고 있거나 그 질문을 이미 당했던 지도학생들은 피식 웃습니다. 그럼 그다음 대사는 정해져 있습니다. “대학에서는 야마갓코도 안 가르칩니까?” 이런 말들이 오가는 날은 지역주민들이 기분이 아주 좋은 날입니다. 엉뚱한 대답을 한 학생에게 야마갓코 설명을 한다는 명목으로 60대를 훌쩍 넘긴 분들이 갑자기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으로 날아가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야마갓코란 학생이 학교에 가는 도중에 산에 올라가 노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말로 표현한다면 ‘땡땡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 친구는 고등학교 교장을 했는데 어릴 땐 야마갓코를 정말 많이 하고 솔선해서 개구쟁이 짓을 도맡아 했어. 그러니 교장이라고 뽐낼 수 있나. 그래서 좋은 선생이지.” 이 정도 이야기가 나오면 60대도 70대도 개구쟁이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이 산 위에서 놀던 이야기를 풀어놓지요. 질문 세례를 당한 학생들 대부분은 지금의 대학에 들어오기 위해 정규 학교는 물론 과외학습까지 해야 했던 학생들로, 야마갓코는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학생들은 왠지 압도됩니다.

 

그들의 야마갓코에 대한 말을 듣고 종합해 보면 살아가는 지혜에 대한 배움은 학교 안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듯했습니다. 학교에 가지 않고 산에 가서 하루를 지내는 이들은 심심하지 않게 여러 놀이를 생각하고 선후배의 상하 관계를 그곳에서 배웠다고 합니다. 또한 어른들이 원하는 행동이 아니었기에 들키지 않도록 방과 후에 돌아가는 친구들 틈에 끼어 집으로 돌아가는 지혜(?)도 발휘했다고 위트 넘친 마무리도 잊지 않습니다.

 

즐거운 놀이를 소개하는 것처럼 시작한 야마갓코 이야기는 지역 초등학교 아동이 쓰나미로 희생된 이야기로까지 파급됩니다. 야마갓코를 하던 이분들은 모두 오카와(大川)초등학교 출신입니다. 2011년 3·11대지진으로 일어난 쓰나미로 아동 108명 중 74명이 희생된 학교입니다. 희생된 아동 중에는 이들의 손주도 있습니다. 이들은 “야마갓코가 지금도 있었다면 아이들은 산으로 자연스럽게 피난해서 살았을 텐데…”라는 말을 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거대 쓰나미의 안전한 대피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 이상으로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오카와초등학교 학생과 교직원의 많은 희생을 안타까워하는 것 중의 하나는 대피하고 있던 운동장에서 2분도 안 걸리는 곳에 아주 쉽게 올라갈 수 있는 산이 있었는데도 그곳으로 피난하지 않은 점입니다. 강한 지진이 일고 쓰나미가 덮쳐 올 때까지 50여 분의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산으로 피난하지 않고 운동장에 대피해 있었던 것이 큰 인명피해로 이어진 것입니다. 산으로 바로 올라가라는 지시를 내리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아이들이 가파른 산을 오를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또 다치기라도 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는 책임부담의 회피라는 점을 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야마갓코를 했던 시절의 아동들은 산에 올라가는 것은 일상이었지만 지금은 일상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을의 자연과 멀어진 생활을 했던 아동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야마갓코 이야기를 하면서 나타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야마갓코를 하면서 놀았다는 산정(山頂)에 마을 사람들과 올라간 적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나가쓰라(長面)만이 한눈에 들어오고 올라가는 중턱 즈음에서는 마을 전체가 어떤 구조인지 관조할 수 있었습니다. 쓰나미가 학교에서 멀지 않은 뚝 근처에 도달했을 때 오카와초등학교 교사들은 겨우 피난을 유도하지만 막다른 골목이 나오는 쪽으로 학생들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는 마을 전체 구조를 파악하지 못한 결과지요. 아이들이 야마갓코를 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말을 하는 어른들의 안타까움은 아주 크다고 여겨집니다.

 

실제 산 위에서 보이는 나가쓰라 바다. 야마갓코 하며 이런 풍경을 본다. © 사진=이인자 제공

 

질서정연한 모습, 소극적 대응 결과 아닐까

 

3·11 직후 모두가 공동생활을 하면서 역경을 견뎌야 했는데 다양한 사람의 다채로운 경험이 힘이 됐다고 합니다. 1000년에 한 번 있을 법한 쓰나미를 경험한 그들이 대학에 몸담고 있는 저나 지도학생들을 향해 농담처럼 들려주는 야마갓코 이야기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님을 느낍니다. 좋은 대학을 나와 영향력 있는 지위에서 살아갈 것 같은 학생들의 취약점을 제대로 지적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매뉴얼이나 학습에 의한 정형적인 지식에 대한 공략은 강하지만 재해 등 비상사태가 일어났을 경우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힘은 약하다는 것을 꿰뚫고 있는 것입니다.

 

3·11 재해 직후 대학생들과 피해지역을 다니면서 지역주민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가 “지시를 기다리는 인간이 돼서는 안 된다”였습니다. 외국 미디어가 대혼란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 질서정연한 일본의 모습을 칭송 일색으로 내보낼 때 내부에서는 그 질서정연함조차 지시를 기다리는 소극적 대응의 결과가 아닌가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살펴보니 지난번 연재에서 소개했던 ‘지진으로 입은 상처를 축제로 치유하다’는 야마갓코의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복구 이야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결코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들이 겪은 재해로부터 하루빨리 복구하고자 하는 힘은 이미 어린 시절 함께했던 야마갓코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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