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그 자체가 매력인 전시공간을 아시나요
  • 손구민 인턴기자 (koominsohn@gmail.com)
  • 승인 2017.08.25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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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미술전시와 다른 대안전시공간의 매력

 

밥 먹고 영화보고 커피를 마신다. 연인들은 얼굴을 마주보며 서로에게 묻는다. “그런데 커피 마시고 나면 우리 뭐할까?”

 

데이트의 매너리즘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매번 똑같은 코스 대신 가끔은 별미처럼 색다른 곳을 찾는다. 대표적인 곳이 미술관일 터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이 먼저 떠오르겠지만, 이곳에서 열리는 전시는 ‘블록버스터’급이 많다. 한 번 시작하면 수개월 동안 계속되는 전시라 선택의 폭이 좁고 다양한 맛을 볼 수 없다는 게 문제다. 

 

한 걸음만 더 들어가 보자. 당신이 연인과 예술을 향유하고 싶다면? ‘대안전시공간’을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대중성과 상업성이 대형 미술관의 미덕이라면 이름에서 보듯 대안전시공간은 작고 특색 있는, 그리고 색다른 전시물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가 알지 못할 뿐, 서울 곳곳에는 숨은 공간들이 꽤 있다. 이곳들은 대형 미술관들이 다루지 못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찾아내 선보이는 역할을 수행한다. 

 

2000년대 후반에 등장한 ‘대안전시공간’이지만 지금은 ‘예술 마니아층’이 애용하는 곳이 됐다. 이곳은 미술품을 전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독립영화를 상영할 때도 있고 뮤지션 공연도 연다. 전시공간이지만, 전시 외적인 각종 퍼포먼스를 곁들 수 있다. 몇 군데를 구경해보자.

 

대안전시공간은 전시, 공연, 영화상영 등 다양한 문화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세운상가에 위치한 대안전시공간 '개방회로'의 밤 공연 모습이다. © 사진=개방회로 제공

 

△ 개방회로 - 예술 공간 된 세운상가

 

대안전시공간의 장점은 공간에 있다. 기존 미술관이 ‘화이트큐브(흰 벽 바탕에 그림을 거는 갤러리)’ 일색이라면 이 작은 공간은 전시에 어울리도록 개성을 부린다. 이런 장점이 부각되는 대표적인 곳이 ‘개방회로’다.

개방회로는 종로 세운상가 3층에 있다. 들어선 곳의 양옆에는 오래된 전자기기 가게들이 자리잡고 있다. 조근하 개방회로 대표는 “우리 공간의 매력은 공간 그 자체”라며 “을지로, 세운상가 일대에서만 볼 수 있는 서울의 거칠고 힘 있는 모습을 여기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개방회로는 2.6평짜리 세운상가 사무실을 전시공간으로 사용한다. 조 대표를 포함해 세 명의 기획자가 운영하고 있는데 좁은 곳이기 때문에 창의적인 소규모 전시가 이곳에서 이뤄진다. 조 대표는 “공간 운영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일 뿐, 큰 비전을 갖고 대단한 것을 하자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큰 비전 대신 개방회로가 가진 철학은 있다. 예술가들의 ‘투박’하지만 ‘열정’적인 시도와 가능성을 발견하고 조명하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현재 《호텔방 프로젝트》라는 독특한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럭셔리와 가난함을 모두 느낄 수 있는 방을 준비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기획 의도인데 단순히 찾아와 구경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방문자가 예약을 한 뒤 꾸며진 방에서 하룻밤을 자는 ‘체험형 전시’다. 9월 중 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개방회로'를 찾아온 사람들이 전시를 구경 중이다. '개방회로'의 영업시간은 월-토 오후 1시-8시다. © 사진=개방회로 제공

 

△ 아카이브 봄 - ‘래디컬’ 현대미술을 감상하다

 

‘아카이브 봄’은 예술가들의 모임을 위해 2007년 종로 인근체 처음 만들었다. 하지만 이후 미술전시와 출판, 세미나, 아트 비즈니스 등 활동 범위를 점점 넓혀가는 공간이 됐다.

 

지난 2016년에는 이사를 했다. 윤율리 아카이브 봄 대표가 효창공원 인근 건물을 직접 매입해 이곳에서 다양한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한산한 골목에 위치한 아이보리 색의 예스러운 건물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1층에는 작은 테이블과 함께 작가들의 작품을 판매하는 진열대가 마련돼 있다. 2~3층은 갤러리다. 

 

지난 8월 초까지 아카이브 봄은 'Studio COM'과 함께 기획한 '시티 코르타니아' 조각 전시를 했다. 가상의 도시인 ‘코르타니아’를 상상해 그곳의 건축양식을 구상했다고 한다. ‘코르타니아’에서 쓸법한 건축물을 ‘오브제’로 만들어 작품들을 전시했다. 윤 대표는 “이곳의 전시는 대부분 실험적이고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대형 미술관과 달리 리스크가 적어 제약이 없다”고 말했다. 

 

이런 실험적인 전시는 대중들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기존의 전시에 싫증을 느낀 사람들이 흥미롭게 봐준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만 “일반 시민들에게 친화적인 전시를 하는 곳은 아니다”는 그의 말처럼 낯선 모습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앞으로도 새롭고, 이상하고, 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계속 보여주려는 시도를 하겠다.” 아카이브 봄에서는 9월1일부터 ‘압축과 팽창(김주원, 안초롱 작가)팀’의 'Honey and Tip' 사진전을 시작한다.

 

'아카이브 봄'에서 최근까지 진행한 '시티 코르타니아' 포스터가 공간 1층 창문에 부착돼있다. '아카이브 봄'은 9월 1일 새로운 사진 전시를 연다. © 사진=아카이브 봄 제공


△ 공간291: 산속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사진 공간

 

북악산 산턱에도 전시 공간이 있다. 공간291은 부암동을 구경하다 들르기 딱 좋다. 사진 전시관, 사진책 도서관, 사진 작업실 등이 있는 ‘사진을 위한 공간’이다. 개인주택을 개조해 지은 전시관으로서 독특한 모양을 갖고 있다.

 

이곳은 ‘협동조합 사진공방’이 운영하는데 주로 신인 사진작가들의 공모를 받아 전시를 기획한다. 신인작가의 활동을 지원하고 시각예술의 확장을 기대한다는 취지다. 협동조합 사진공방은 “전시 공모 기준은 신인작가가 기존 매체가 갖고 있는 한계를 깰 수 있는지, 그 확장성의 여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간291은 8월18일부터 안다솜 작가의 개인전 ‘오늘 하루도 덥겠다-One Summer Day’를 전시하고 있다. 전시는 사진과 영상으로 구성돼 있는데 ‘잊고 있었던 흑백필름들 속에서 부재한 할머니를 발견하고, 필름들의 시간을 따라 존재의 기억을 더듬는 것’이 주제다. 전시는 9월10일까지다.

 

'공간291'은 개인주택을 개조해 만든 대안전시공간이다. 거실로 사용됐던 이곳은 사진 갤러리, 작업공간으로 탈바꿈했다. © 사진=공간291 제공

'아카이브 봄'에서 최근까지 진행한 '시티 코르타니아' 포스터가 공간 1층 창문에 부착돼있다. '아카이브 봄'은 9월 1일 새로운 사진 전시를 연다. © 사진=공간291 제공

 

“정말로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일 뿐”

 

대안전시공간은 ‘예술초년생’들에게 전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며 미술계의 다양성을 확장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미술 시장이 주류미술관 중심으로 돌아가는 생리에서 벗어나 기존에 보지 못한 유형의 예술작품들을 시민들에게 접할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지속가능성은 이들이 갖는 공통의 고민이다. 이들 공간은 운영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익을 낼 마땅한 경로가 없어서다. 난제를 풀지 못하면서 운영자들이 꿋꿋이 전시 기획을 이어나가는 이유를 물으면 “하고 싶기 때문”이란 대답이 돌아온다.

 

조근하 개방회로 대표는 “공간을 함께 만든 세 명이 개방회로 운영을 지속하고 싶어서 다른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윤율리 아카이브 봄 대표는 “돈을 벌고 싶었다면 돈 되는 일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익의 기준으로 ‘대안전시공간’을 보는 시각을 거부했다. “정부나 민간 차원의 지원도 좋지만 더 많은 시민들이 예술을 향유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이라는 윤 대표의 말에 지속가능한 운영의 해법이 담겨 있다.​ 

 

© 시사저널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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