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충공 감독 “더 늦기 전 관동대학살 진실을 알려야”
  •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7.08.29 09:48
  • 호수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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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관동대학살’ 세 번째 다큐 준비하는 오충공 감독

 

우연히 어느 하천부지에서 유골 발굴 작업을 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카메라를 들고 한걸음에 달려간 청년이 있었다.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에 근접해 가며 받았던 충격은 20대 후반의 청춘을 바치게 했다. 그리고 30여 년이 흘러 백발의 노신사가 된 그는 또다시 카메라를 들고 한국과 일본을 오가고 있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과 관련된 세 번째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는 재일동포 오충공 감독(63) 이야기다.

 

8월25일 서울 종로구 기독교회관에서 만난 오 감독은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내용을 다룬 두 차례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지만, 나조차도 이 학살 사건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따라다녔다”며 “결국 2012년부터 세 번째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 시사저널 이종현

 

다큐 상영하며 조선인 학살 사건 알려

 

오 감독은 도쿄 변두리 주택가에서 나고 자란 재일동포 2세다. 영화학교에 다니던 그는 도쿄 동쪽 아라카와 하천 제방에서 유골 발굴이 시작된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에 갔다. 어린 시절 운동부 활동을 했던 공터가 참극의 현장이었던 것도 그제야 알게 됐다. 현장 주변의 노인들을 찾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노인들은 거짓말을 했다. 진실을 말하려는 노인들은 따돌림을 당했다. 다행히 생존자인 고(故) 조인승 할아버지를 만나 증언을 토대로 학살 기록 영화 《감춰진 손톱자국》을 1983년 발표했다.

 

두 번째 다큐멘터리는 1986년 발표한 《불하된 조선인》이었다. 대지진 당시 군부대에 수용된 조선인들이 마을 자경단에 넘겨져 학살당한 사건을 추적했다. 오 감독은 “《감춰진 손톱자국》은 도쿄 아라카와 하천부지 일대에서 벌어진 학살 사건을 생존자와 목격자 증언으로 구성했고, 《불하된 조선인》은 나라시노 수용소와 주변 마을에서 벌어진 자경단의 학살 사건을 중심으로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오 감독은 일본의 대학교·시민단체 등을 찾아가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며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을 알렸다.

 

어느덧 30대가 된 그는 영화와 문학 창작 활동을 중단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한참 지나 아버지 회사에 몸을 담았다. 경영난에 허덕이던 부친의 회사를 외면할 수 없었다. 이때 도쿄에서 이바라키현으로 이사를 갔고, 33세에 결혼도 해서 가정을 꾸렸다.

 

평범한 삶을 살던 그가 30년 만에 다시 카메라를 든 계기는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였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약 100km 떨어진 이바라키현도 자연재해의 엄청난 힘을 비껴갈 수 없었다. 건물의 3분의 1이 무너졌고, 한 달 동안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음료수는 물론이고 마트도 문을 닫았다. 편의점에 물이 들어온다는 소문이 나면 동네 사람들은 어김없이 긴 줄을 서야만 했다. 지금까지 사는 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거대한 두려움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오 감독은 “대지진이 발생한 뒤 며칠 지나서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보니 1923년의 일이 문득 생각났다”며 “왜 평범한 사람들이 다른 민족의 인간을 아무 죄의식 없이 죽일 수 있었는지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자기도 모르게 발밑에서 밀려오는 공포감 속에서 이성적인 사고는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란 의미다.

 

그는 2012년부터 다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유가족들을 만났다. 희생자 6600여 명의 유족들을 찾는 얘기다. 그는 “2013년 일본에 있는 한국대사관에서 독립운동 희생자, 강제징용 희생자, 관동대지진 희생자 명부가 발견됐다”며 “관동대지진 희생자 200여 명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 명부를 토대로 유족들을 찾아 나섰다. 오 감독은 “요코하마를 중심으로 가나가와 지방과 사이타마현, 군마현의 학살 사건을 중심으로 구성하고 유족들의 애환을 담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세 번째 다큐멘터리의 가제(假題)는 《1923 제노사이드, 93년간의 침묵》으로 내년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과거 기억 못하는 민족 오래 못 가”

 

그의 다큐멘터리 제작은 단순한 작품 활동과 거리가 있다. 시민사회 사람들을 만나 도움을 요청하며 이 문제의 실체를 드러내도록 했다. 관련 조사 기구도 없었지만, 오 감독을 비롯한 활동가들은 직접 발품을 팔아 피해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찾으러 다녔다. 어렵게 유족들을 만나 증언을 모은 뒤 유족회를 구성하도록 주도적인 역할도 했다. 덕분에 8월30일에는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 일곱 가족이 모여 유족회를 구성하게 됐다. 관동대지진 희생자 관련 유족회가 만들어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에 한국을 찾은 것도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서다. 김종수 목사가 이끄는 1923간토한일재일시민연대에서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추모식을 연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추도식에서는 오 감독이 제작 중인 다큐멘터리 《1923 제노사이드, 93년간의 침묵》의 18분 분량 예고편도 상영됐다. 오 감독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민족은 오래가지 않는다”며 “반일 감정으로 넘어가지 말고 이를 똑같이 기록하고 기억해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다. 세 번째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어렵게 만나 증언 영상에 담았던 유족들조차 세상을 등졌다. 관동대지진 당시 희생된 조묘송의 아들인 고 조팔만씨, 희생자 강대흥의 손자인 고 강광호씨의 억울한 사연은 더 이상 직접 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됐다. 오 감독은 차분하면서도 결연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제 손을 잡으며 희생된 조상의 흔적을 찾으러 일본에 같이 가자고 약속했던 유족분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어요. 일본에서 학자로 시민운동가로 학살을 알려온 이들도 이제 70~80대가 됐고요. 더 늦기 전에 진실을 알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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