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시대의 가벼움을 벼리다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8.29 13:45
  • 호수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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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소설가 부진 속 《실연당한 사람들의…》의 백영옥이 주목되는 까닭

 

한국 여성 소설가의 세대교체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공지영·신경숙·김인숙 등 1963년생 작가들이 주도하던 1990년대 활동 작가군을 대체할 정도의 차세대 작가군이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정유정이나 정이현·김애란·심윤경·최은영 등의 등장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가운데 빛나는 성취도 있지만, 소설의 기법이나 소재에서 앞 세대에 비교할 수 있는 도드라진 흐름을 만들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여성 작가들을 힐난할 수는 없다. ‘전업 작가의 길은 멀고도 험해서, 작가면서 마트 직원이거나 경비원이거나, 학원 강사이며, 방과 후 글짓기 선생님이 태반’(백영옥의 《빨간머리 앤이 하는 말》 中에서)인 것이 현실이다. 더러 능력 있는 여성 작가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드라마나 예능 등 생활을 위한 글쓰기 전선으로 흘러갔다. 실제로 드라마를 중심으로 한 한류를 만들어낸 것이 김은숙·박지은·노희경 등 여성 작가들의 공이라는 것을 부인하기란 쉽지 않다.

 

백영옥 작가 © 사진=연합뉴스

 

소설 외에 여행·영화 등 다양한 글 써

 

그런 가운데 몇 년 전부터 등장한 작가 백영옥은 주목해 볼 만한 소설가다. 유행에 민감한 글을 쓰던 잡지사 기자로 사회에 발을 디딘 그녀는 끊임없이 소설가의 문을 두드렸지만 잘 열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소설은 짙은 이야기와 아우라를 가지지 않으면 뭔가 부족하다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세상에서 문을 연 것은 그녀 스스로이기도 하고, 세상이기도 했다. 세상은 후일담을 이야기하면 꼰대처럼 느끼기 시작했고, 오히려 자기 주변의 환경을 당대의 예민한 언어로 읽어주길 원하는 흐름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006년 문학동네 신인상(《고양이 샨티》)과 2008년 세계문학상(《스타일》)으로 문단에 등장한 백영옥은 그런 측면에서 새로운 세대의 작가라 하기에 충분했다. 더욱 특이한 것은, 그녀는 소설가로서의 삶만을 바라보지 않았다. 잡지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매체에 책과 영화, 여행에 관한 글을 썼다. 또 다양한 인터뷰를 엮어서 책을 출간하기도 했으며, 다양한 방송 활동도 해서 이런 인문 작업으로 밥벌이가 가능하다는 점을 확인시켰으니, 이 시대 희귀해지는 ‘전업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출간한 《실연당한 사람들의 일곱시 조찬모임》은 작가의 문학 인생에 흥미로운 반전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이번이 첫 출간은 아니다. 5년 전 출간되어 일군의 독자층을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출간한 것은 전작 《빨간머리 앤이 하는 말》의 인기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1년 전 출간된 《빨간머리 앤이 하는 말》은 순수한 문학 작품이라고 보기 힘들지만, 여전히 문학 부문에서 베스트셀러에 매겨져 있고, 그녀를 대중에게 인지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어찌 보면 하나로 묶인 두 저작에 독자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백영옥이 가진 문학의 평범함에 있다. 작가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결코 비범한 사람들이 아니다. ‘빨간머리 앤’처럼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고, 어떤 이유에선지 상대에게 차여서 아침 일곱시에 실연당하는 사람들이 만나는 모임을 찾는 ‘찌질이’들이 그녀의 작품 속 주인공들이다.

 

《실연당한 사람들의 일곱시 조찬모임》 속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주의력 결핍을 앓는 형과 외로운 세상을 헤쳐가야 하는 전문강사 이지훈이나, 역시 부모님의 이혼 이후 외로움을 숙명으로 안고 사는 스튜어디스 윤사강은 물론이고, 다른 인물들도 이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으로 부르기에는 문제가 있다. 이들은 상처를 받은 사람들을 연결해 결혼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웨딩업체 직원 미도의 시도로 인해 엉뚱한 인연의 길에서 만나게 된다.

 

그렇지만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이런 만남도 새로운 의미를 만든다. 이 소설 읽기가 지루하지 않은 것은 작가가 그간 잡다하게 쌓아놓은 다양한 세상의 ‘꺼리’들을 잘 배치해 놓았기 때문이다. 영화·소설·여행 등을 잘 배치한 소설은 당대 최대의 독자층인 여성들에게 소구하기에 충분하다. 또 《비포 선 라이즈》 시리즈 영화처럼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허한 연애담은 시시콜콜한 ‘사랑꺼리’를 찾는 이들을 만족하기에 충분하다. 반면에 강한 스토리텔링을 갖지 않은 소설이 주는 한계도 명확하다.

 

백영옥 지음 아르테 펴냄 336쪽 1만5000원


 

티격태격하며 살아가는 갑남을녀들의 사랑 이야기

 

결국 이 소설의 힘은 빨간머리 앤과 길버트의 만남처럼 티격태격하면서 살아가는 갑남을녀들의 사랑 이야기다. 어릴 적 관심이 있는 상대방에게 더 짓궂은 장난으로 괴롭히는 아이들의 사랑 심리와 같다. 이런 장난이 미운털로 박히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그리움의 작은 단초가 되어 사랑을 연결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실연당한 사람들의…》은 향후 백영옥 소설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갖게 하는 소설이다. 우선 그동안 강한 이야기 소설에 익숙한 이들에게 편안한 우리들의 이야기도 소설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작가도 젊은 시절 읽었을 법한 할리퀀과 하이틴로맨스 식의 빤한 소일거리를 만든다면, 그 누구도 그녀를 소설가로 인정하지 않으려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백영옥은 백영옥 스타일로 독자들에게 계속 남아 있을 것 같다. 약간은 빤하지만 모든 것이 공개되는 사회가 갈수록 더 ‘인간은 그만큼 관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고도로 사회화된 존재’(《빨간머리 앤이 하는 말》 中에서)가 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런 시대에 인간은 오히려 어느 곳에나 존재하지만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몰개성화된 존재가 될 것도 빤하다. 그런 점에서 백영옥이 소설·산문으로 읽어주는 우리 시대의 모습은 신선하게 느껴질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게 한다. 

 

 

New Book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신상목 지음│뿌리와 이파리 펴냄│276쪽│1만5000원

 

근대를 맞이하는 한국과 중국에 비해 일본은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내부를 개혁했고, 곧바로 청나라와 러시아는 물론이고, 미국과 대적할 힘을 갖춘 국가가 됐기 때문이다. 그 동력에 관해 많은 선입견을 갖고 있다. 그 생각에 대해 외교관에서 우동가게 경영자가 된 신상목씨가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독보적인 저널리즘

뉴욕타임스 2020그룹 지음│스리체어스 펴냄│82쪽│9800원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에서 위협받는 신문사에 대한 뉴욕타임스의 진지한 실험을 담고 있다. 세계 언론 가운데 가장 일찍 유료화 방식을 채택해 종이신문 구독자 100만 명을 넘겨 150만 명을 확보한 그들의 실험을 다룬다. 구독자 중심의 사고, 멀티미디어의 활용, 다양한 필진의 참여 방식을 그들의 핵심가치로 꼽고 있다.​ 

 

 

시중쉰: 서북국에서의 나날들

스제·쓰즈하오 지음│동문선 펴냄│551쪽│2만5000원

 

 

중국 홍군(紅軍)이 대장정의 끝에 도착한 곳이 중국의 서북 지역이다. 현 주석 시진핑의 부친 시중쉰이 이곳을 미리 장악하지 못했다면 홍군은 갈 곳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훗날 문화대혁명 시기에 시진핑은 다시 아버지의 정치적 고향에서 자신을 바꾸어, 미래를 열었다. 2대에 걸친 중국 서북의 역사를 알아야 중국의 키워드 시진핑을 이해할 수 있다.​ 

 

 

오강남의 작은 도덕경

노자 지음│현암사 펴냄│264쪽│8800원

 

 

5000자 남짓의 도덕경은 원고지로 치면 25매 분량에 불과하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다양하게 해석되어 왔다. 이 책은 사상과 종교 분야의 가장 권위자로 꼽히는 오강남 교수가 1995년에 초판을 낸 책을 더욱 쉽고 명확하게 정리한 책이다. 순식간에 읽든 하루에 한 문장을 읽든, 노자를 우리 옆에 두고 사유세계에 포함시키기에 적합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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