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족’, 예능의 법칙도 깨뜨렸다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8.30 13:56
  • 호수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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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 시대가 바꿔놓은 방송 트렌드

 

전통적으로 예능은 공동작업이었다. 한두 명의 진행자와 여러 명의 패널이 조화를 이루며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1인 촬영은 시사 프로그램에서만 볼 수 있었다. 예능이 1인 촬영을 금기시하는 이유는 재미 때문이다. 혼자만 나오면 허전하기 때문에 여러 명이 나와 상호작용으로 관계를 형성하며 그 속에서 재미요소를 만들어가는 것이 예능의 기본 작법이다. 《1박2일》에서 잠시 1인 체제로 진행하는 모습이 나왔는데, 그건 낙오 벌칙이었다. 홀로 낙오된 출연자는 재미요소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고, 재미요소가 부족할 경우 가차 없이 편집당했다.

 

그랬던 예능이 완전히 바뀌었다. MBC 《나 혼자 산다》처럼 대놓고 ‘혼자’임을 강조하는 예능이 등장했다. 2013년에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초반 인기몰이 후에 잠시 주춤하더니, 요즘 다시 전성기를 맞고 있다. 8월초 기준으로 4개월 연속 동시간대 1위다. 한국기업평판연구소에서 조사한 예능 프로그램 브랜드 평판에서 6월 3위, 7월과 8월엔 2위를 기록했다.

 

허탈할 정도로 별 내용이 없는 프로그램이다. 출연자들이 돌아가면서 혼자 사는 일상을 보여주는 게 전부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해 먹고, 일정을 소화하고, 귀가해 쉬는 모습을 카메라가 관찰할 뿐이다. 과거 예능은 자극적인 이벤트를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혼자선 그것이 어려웠고 그래서 《1박2일》의 낙오가 벌칙이었는데, 《나 혼자 산다》는 그렇게 보면 프로그램 전체가 벌칙이라고 할 수 있는 설정이다. 하지만 아무도 《1박2일》 때처럼 혼자 카메라 받는다고 스트레스에 휩싸이지 않았다. 출연자와 제작진 모두 태평할 뿐이다. 그저 혼자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는데, 여기에 사람들이 환호했다. 예능의 법칙이 깨졌다.

 

2015년에 시작된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도 혼자 등장하는 예능의 성격이 있었다. 출연자들이 저마다의 내용으로 프로그램 속 프로그램을 꾸미는 설정이었는데, 그중 일부 출연자들이 혼자 등장했던 것이다. 대표적으로 백종원이 혼자 등장해 스타가 됐고, 나중엔 이경규가 혼자 출연해 개와 함께 ‘눕방’(누워서 하는 방송)을 선보였다. 시청자도 혼자 보는 사람이 많았다. 이 프로그램의 시청자는 인터넷 생방송으로 보는 1차 시청자와 지상파 방영분을 보는 2차 시청자로 나뉘었는데, 1차 시청자의 상당수가 혼자 보는 사람들이었다. 제목에 ‘마이’를 명시한 것에서부터 제작진이 혼자 보는 시청자를 상정했다는 것이 드러난다.

 

1인 가구들의 일상을 다룬 티비프로그램의 장면들. © mbc·sbs


 

《나 혼자 산다》 《미운 우리 새끼》 등

 

요즘엔 SBS 《미운 우리 새끼》가 시청률 20%를 넘나드는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여기선 김건모·박수홍·토니안·이상민 등이 출연해 중년 남성의 나홀로 생활을 보여준다. 특히 이상민이 집을 꾸미는 모습, 밥을 해 먹는 모습, 여행 가는 모습 등이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켜, 이상민은 예능방송인 브랜드 평판 1위에 올랐다.

 

채널A 《개밥 주는 남자》는 반려견을 벗 삼아 홀로 사는 남성들의 생활상을 그렸다. tvN 《내 귀의 캔디》는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각자의 생활을 하면서 전화를 통해 위안을 주고받는 남녀의 모습을 그렸다. 라이프 푸드 전문채널 Olive에서 선보인 《조용한 식사》는 연예인의 혼자 밥 먹는 모습에 집중하는 ‘혼밥’ 예능이다. 웹예능도 가세했다. SK브로드밴드의 모바일 동영상 플랫폼인 ‘옥수수(oksusu)’는 걸그룹 레인보우 출신 지숙이 출연하는 《지숙이의 혼밥연구소》를 선보였다. 네이버TV에선 혼밥 예능 《러블리즈 미주&예인의 혼밥스타그램》이 시청자와 만났다. 예능뿐만이 아니다. tvN 드라마 《혼술남녀》도 혼자서 술 마시는(혼술)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작품은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추천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혼족들 위한 정보제공 프로그램 봇물

 

TV가 이렇게 나홀로족(혼족)에 주목하는 것은 1인 가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8월22일 내놓은 ‘장래가구추계 시·도편: 2015~2045년’은 1인 가구의 비약적인 성장을 잘 보여준다. 2015년 기준 518만 가구(27.2%)였던 1인 가구는 2017년 556만 가구(28.5%)로 늘었다. 2025년에는 1인 가구가 670만 가구(31.9%)로 증가하고, 2045년에는 모든 시·도에서 1인 가구(809만 가구·36.3%)가 가장 주된 가구 유형이 될 전망이다. 대가족 중심에서 핵가족 중심으로 큰 변화를 겪었던 우리 사회가 이젠 1인 가구 중심으로의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1인 가구의 증가는 ‘일(1)코노미’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킬 정도로 우리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친다. 혼밥·혼술족이 늘어나면서 식당의 인테리어와 메뉴 구성이 바뀌고, 1인용 간편식이 뜬다. 편의점이 불황 속 호황을 누리는 것도 1인 가구 증가와 무관하지 않다. 혼자서 영화 보는 혼영족이 늘어나자 혼영족 전용 극장 좌석이 등장하기도 했다. 좋아하는 영화를 여러 번 보는 ‘N차 관람’ 열풍도 혼영족과 관련이 있다. 혼자 여행하는 혼행족도 나타났다. 1인 노래방·코인 노래방이 생기고, 반려동물 시장이 뜬다. 이러한 변화가 TV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혼자 등장하지 않는 혼족 관련 프로그램도 많다. 출연자는 많지만 그 내용이 혼족들이 원하는 정보 제공이거나 혼족들에게 공감을 주는 경우가 그렇다. tvN 《집밥 백선생》은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간편한 요리법을 알려주는 내용이다. 백종원은 간단한 요리법에 자극적인 맛으로 혼족 남성들을 사로잡았다. 혼족들에게 편의점 간편식에 대해 알려주는 tvN 《편의점을 털어라》도 있다. Olive 《8시에 만나》는 일반적인 음식 토크쇼인데, 주제가 혼밥이다.

 

혼족 시대의 대표적인 정서 중 하나는 외로움이다. 현실에선 혼자이기 때문에 TV 속 관계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다. MBC 《발칙한 동거-빈방 있음》과 JTBC 드라마 《청춘시대》는 주거공간을 공유하는 혼족들의 이야기다. 《삼시세끼》와 같은 유사 가족 예능도 혼족의 외로움을 달래준다. JTBC 《뭉쳐야 뜬다》는 지인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을 그린다. 중년 혼족을 위한 짝짓기 프로그램 SBS 《불타는 청춘》도 있다. 한편으론 혼족이 돼보고 싶은 중년을 위한 MBN 《졸혼수업》, E채널 《별거가 별거냐》와 같은 프로그램도 나왔다.

 

올 7월 기준으로 혼밥과 연관된 빅데이터 감성키워드는 ‘잘하다, 좋다, 맛있다, 즐기다’였다. 혼자서 뭔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점점 더 긍정적으로 변해 간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1인 가구의 대세는 어쩔 수 없는 필연이다. 그에 따라 시장과 방송도 더욱 요동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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