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청년들이 농촌으로 향하는 이유
  • 김예린 인턴기자 (yerinwriter@naver.com)
  • 승인 2017.09.18 17:26
  • 호수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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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청년귀농귀촌캠프’ 2박3일 동행취재

 

대전에서 태어난 박서희씨(여·26)는 부산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취업과 동시에 서울에 올라왔다. 서울에는 뭔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살아보니 달랐다. 여유 없는 일상에 인위적인 공간들, 오염된 공기로 숨이 막혔다. 대전을 오가며 엄마를 따라 산에서 약초를 캐는데 눈물이 날 만큼 행복했다. 무작정 귀농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현재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농업직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귀농하고 싶다니까 주변에서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하더라. 나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분들 얘기를 들으면 답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왔다.”

 

청년 귀농·귀촌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통계청이 6월 발표한 ‘2016년 귀농·귀촌인 통계’를 보면, 지난해 농촌으로 이동한 도시민은 50여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귀농인구는 2만599명, 귀촌인구는 47만5489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귀농·귀촌인 가운데 39세 이하 젊은 층이 50.1%를 차지했다. 청년들이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9월1일부터 2박3일 동안 열린 ‘완주청년귀농귀촌캠프’를 동행 취재해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귀농귀촌캠프 참가자들이 점심 식사를 위해 완주 귀촌인이 가꾸는 텃밭에서 요리 재료인 바질과 깻잎을 직접 채취하고 있다. © 시사저널 김예린

 

각박한 물질주의와 틀에 박힌 일상에 지쳐

 

9월1일 오후 6시 전북 완주군 고산면. 창밖으로 보이는 경관이 상가와 주택에서 비닐하우스와 논밭으로 바뀔 때쯤 버스가 멈춰 섰다. 간판이 녹슨 문방구와 팻말만 달랑 세워진 버스정류장, 기름 짜는 방앗간, 평상에 누워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시골 정감을 자아냈다. 길 끝에 다다르자 ‘완주청년귀농귀촌캠프’ 현수막이 걸린 건물이 보였다. 귀농·귀촌을 꿈꾸는 20~30대 참가자 11명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귀농·귀촌을 희망하게 된 다양한 사연이 쏟아졌다. 참가자들은 도시의 물질주의와 소비주의 문화에 피로감을 호소했다. 경기도 포천에서 온 진승현씨(남·26)는 “스트레스가 쌓이면 소비하면서 푸는 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귀농·귀촌한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니 소비가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 형성을 통해 해소한다더라”며 공동체의 삶이 실제 어떤 건지 느껴보고 싶어 캠프에 참가했다고 밝혔다. 박서희씨도 도시의 각박한 물질주의에 싫증이 난다고 했다. 관광통역사 일을 했던 박씨는 “사람들을 상품판매점으로 데려가 수익을 내야 돈을 버는 구조였다. 가치도 없어 보이는 상품을 팔아야 하는 게 미안했다”며 도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털어놨다.

 

일과 휴식의 균형이 깨진 일상, 빽빽한 인구밀도에 지치기도 했다. 아내 정은지씨(38)와 함께 경기도 군포에서 온 김선대씨(39)는 “도시에서 일하며 지친 마음을 회복하고 싶다. 어떻게 완주에서 재밌게 살 수 있을지도 생각 중이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김씨는 회사가 완주군으로 이전하는 계획에 맞춰 귀촌을 앞두고 있는 실질적인 예비 귀농·귀촌인이다. 일주일 전쯤 완주에서 아파트 한 채를 구입했다. 작곡가인 정씨는 원래 시골살이를 희망했는데 남편 직장의 지방 이전으로 계획이 구체화됐다고 했다. 그는 “자기 공간이 어느 정도 확보돼야 하는데 서울의 경우 너무 밀집해 살다 보니 사람들이 예민해져 있다. 지금 살고 있는 군포도 인구밀도가 높아서 굉장히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획일화된 업무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아다니다가 캠프에 합류한 이도 있었다. 서울 강동구에서 온 김태희씨(여·35)는 “시키는 일만 하고 눈치 보면서 퇴근해야 하는 회사 분위기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이직해 봤지만 어딜 가도 똑같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현재 회사를 관두고 자연농업을 배우거나 양말목으로 컵받침을 만드는 등 각종 체험에 참가하면서 다양한 삶의 방식과 기술을 접하고 있다. 그는 “나에게 맞는 삶의 방식과 지역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문을 두드리다가 귀농귀촌캠프까지 오게 됐다”고 밝혔다.

 

TV 프로그램도 한몫했다. 서울에서 임대업을 하는 박영주씨(여·34)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귀농·귀촌에 대해 로망을 가지면서 실질적인 농촌의 삶이 궁금해 캠프를 찾았다. “의식주는 어찌 해결하고 시간은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했다. TV를 보니 텃밭에서 채소 뜯어 사람들과 요리해 먹 고 장터에 가고 하는 모습이 좋아 보이더라. 이렇게 사람 사는 정을 느끼고 싶다.”

 

캠프를 주관하는 씨앗문화예술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커뮤니티 부엌 ‘모여라 땡땡땡’ 건물. 완주청년귀농귀촌캠프 참가자들이 이곳에 처음 모여 식사를 했다. © 시사저널 김예린

 

“일의 도구가 아닌 일의 주인”

 

이튿날 해가 밝았다. 첫날에 캠프 참가자들의 이야기에 주목했다면 둘째 날의 주인공은 실제 시골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이 었다. 이들은 스스로 ‘사람책’이 돼 시골에서의 삶을 전해 줬다. 먹고사는 방식은 다양했다. 귀농·귀촌이라고 농사짓고 밭을 일굴 거라는 생각은 편견이었다. 농사부터 목공, 바리스타, 영상제작, 예술 등 저마다 자신이 잘하거나 좋아하는 일을 찾아다녔다. 1년 전 완주에 온 헤임씨(남·32·활동명)는 평소 관심을 두고 있던 목공일을 배우면서 생활비를 벌고 있다. 그는 “서울은 기회의 땅이 아니었다. 콘텐츠는 굉장히 많지만 실제 접근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목공을 배우려면 저녁에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야근 때문에 안 되고 비용도 부담스러웠다”며 현재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데 대한 만족감을 표현했다. 취직 기회도 많다. 5년 전 귀촌한 장미경씨(여·38)는 “군이나 협동조합에서 제공하는 교육이 많다 보니 이것과 연계해 일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이 밖에도 행정사무직, 로컬푸드 관련 업무, 배달 등 취직자리는 많다”고 설명했다.

 

자신이 하는 일이 공동체와 연결된다는 데서 오는 기쁨도 있다. 이번 캠프를 주관한 ‘씨앗문화예술협동조합’ 대표 김주영씨(남·46)는 “서울에 있을 때는 일이 내 삶을 너무 짓누르고 있었다. 지금은 공동체 안에서 일과 일상이 섞여 있다. 나를 위한 일이 동시에 지역을 위한 일이 된다”고 말했다. 보편적인 삶의 방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3년째 완주에서 살고 있는 이지정씨(여·34)는 “서울 친구들은 다 결혼해서 애 낳고 대출받아 아파트 얻고 그러더라. 그런 삶을 원하지 않는다. 서울에 있으면 그런 친구들을 보면서 매일 불안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다. 도시든 농촌이든 먹고사는 문제가 제일 고민거리다. 완주에서는 한 가지 일만 해서는 생계유지가 힘들어 본업 이외에 다른 일을 곁가지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장미경씨는 지역 창업공동체들의 물건을 판매하는 가게를 운영한다. 그는 “가게 외에도 영상 촬영과 미디어 강사, 기고 등 한 번에 5만~10만원을 벌 수 있는 품팔이를 매달 최소 5가지는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불안감이 도시에서 느끼는 불안감과 동일하지는 않다. 장씨는 “도시에서는 불안감이 오래 지속되고 우울증으로까지 커진다면 여기서는 주변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다 보면 금세 사라진다”고 말했다. 다른 부분에서 오는 만족감이 불안감을 상쇄하기도 한다. 헤임씨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주체적으로 해 나갈 수 있는 데서 오는 충족감이 불안감을 해소해 준다고 했다. “일의 도구가 되는 것과 일의 주인이 되는 것은 다르다. 작은 일이든, 그날그날 벌어서 사는 일이든, 자기가 일을 선택하고 주도적으로 꾸려갈 수 있기 때문에 만족하면서 산다.”

 

시골에서 주민들과 융화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장씨는 귀촌한 이후 1~2년 동안은 일부 텃세 부리는 이들의 횡포에 고통을 받았다. 그는 “주민들 대부분은 반겨주셨지만 일부 사람들이 ‘외지인들이 돈 다 벌어간다’고 소리 지르고 협박도 했다”고 털어놨다. 헤임씨는 “스스로에게 맞는 조건을 찾아가고 있는 상황이라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 점에서 지역에 깊이 들어가 융화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하지만 헤임씨는 이를 긍정적으로 봤다. 현재 귀촌한 청년들의 역할과 50~60대 층이 귀촌했을 때의 역할은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지역과 교류는 하되 매이지 않고 작은 위화감을 조성함으로써 고인 물이 흐를 수 있는 분위기를 청년들이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로움을 호소하는 이도 있다. 2년 전 귀촌한 이보현씨(여·39)는 시골에 내려와서 가장 큰 숙제가 동료를 찾고 외로움을 해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이곳에 적응하지 못해 도시로 돌아가는 청년들도 있다. 김주영씨는 “시골이 답답하고 도시의 라이프스타일이 그리워서, 몸을 쓰면서 일하는 것에 지쳐 한두 달 혹은 몇 년 살다가 안 맞는다고 돌아간 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캠프를 마친 청년들은 귀농·귀촌의 꿈에 한 발짝 더 다가가 있었다. 진승현씨는 “한번 와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언젠간 와야겠다는 확신이 든다”고 말했다. 진씨는 “돈은 못 모아도 원하는 일을 찾아서 할 수 있다는 게 좋아 보였다”고 밝힌 후 “아이들이 좋아하는 일을 관련 단체에 가서 프로그램으로 만들자고 제안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박영주씨는 귀농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고 했다. 박씨는 “TV로 볼 때는 남 얘기 같았는데 이곳에 사는 사람들 말을 직접 들어보니 나도 할 수 있겠구나 싶다”며 “귀농·귀촌의 꿈에 한 걸음 더 내디딘 느낌”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귀농귀촌캠프 참가자들이 고산미소시장에서 현지 농민이 직접 재배한 농·축산물을 구경하고 있다. © 시사저널 김예린

 

희미했던 꿈, 한 걸음 더 가까이

 

시골살이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는 참가자도 있었다. 캠프 전에는 ‘일단 오면 다 해결될 거야’라고 생각했던 박서희씨는 “역시 그냥 되는 일은 없는 것 같다. tvN 《삼시세끼》 때문에 환상이 좀 있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박씨는 “한 청년은 기자직을 하다가 내려와서 글 쓴다더라. 그렇게 재주 있는 분도 경제적 불안감을 느끼는데 용돈 받아 공부하고 있는 내가 시골에서 먹고산다는 건 힘들지 않을까”라며 경제적 기반을 다질 수 있는 기술 같은 것을 익혀야겠다고 다짐했다.

 

시골 청년들은 귀농·귀촌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일단 부딪쳐보라고 조언했다. 이보현씨는 “하고 싶으면 해 봐야 그게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 있다. 여기서 나름대로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귀농·귀촌이 엄청 대단한 일은 아니다”라며 두려움을 버리라고 말했다. 헤임씨는 “들어오는 입구가 어디냐에 따라서 경험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무위자연적인 삶을 지향하거나 농사가 어렵고 힘드니 청년들이 필요하다고 광고하는 지역이 아니라 귀농·귀촌의 삶을 현실적으로 제시해 주는 지역을 택하라는 얘기다. 장미경씨는 도시와는 다를 거라는 환상을 버리라고 충고했다. “목가적인 생활에 대한 환상은 버리고 실질적인 계획을 세워라. 장소와 성격만 바뀐 거지 도시에서와 똑같은 역할을 해야 하고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당장 먹고살 기술이 없어도 시골살이에 도전할 수 있을까. 김주영씨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는 “남다른 재주나 기술이 없어도 일을 배울 마음이 있으면 기회가 주어진다. 배우면서 협업할 수 있는 것도 대단한 기술”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쟁하는 게 아니라 함께 일을 한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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