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피폭 언론인의 77개월 후
  • 류선우(덕성여대)·손새로(홍익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9.26 15:43
  • 호수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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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언론상-우수상] 위험지역 안전 매뉴얼 여전히 부재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가장 힘들었다”

 

 

편집자주​

 

많은 청춘들이 언론인의 길을 꿈꾼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기레기’라는 신조어가 나돌 정도로 저널리즘이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이 험난한 길을 택한 이유는 바로 ‘세상에 짱돌 하나 던져보고 싶다’는 생각일 것이다. 시사저널은 9월15일 제6회 대학언론상을 시상식을 가졌다. 3단계 심사를 거쳐 최종 수상작에 선정된 작품들은 모두 취재력과 문장 구성, 기획력 등에서 기성 언론에 견주어 손색이 없다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앞으로 6회에 걸쳐 수상작을 소개한다. 

 

2011년 3월 일본 동쪽 도호쿠(東北) 지방에서 대규모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과 쓰나미의 여파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일부가 폭발해 방사능이 대량 유출됐다. 체르노빌 이후 최대의 원전 사고였다. 국내에선 긴급히 취재진을 파견했다. 185명의 언론인이 현장을 찾았다. 하지만 안일한 안전의식과 안전 매뉴얼 부재는 ‘취재진 피폭’이라는 문제를 낳았다. 염색체 이상이 나타난 취재진만 30여 명 이상이다. 언제 어떤 병으로 나타날지 알 수 없는 피폭의 특성상 확인되지 않은 피해까지 추산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위험지역 파견 시 적절한 취재보도 시스템이 없다는 데 있지만, 아직까지 이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다. 앞으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면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얘기다.

 

8월6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피폭 피해자 박성주 KBS 카메라 감독을 만났다. 그는 “당시만 해도 가벼운 마음으로 떠난 출장이었다”며 입을 열었다. 박 감독은 2011년 3월, 일본에 지진이 발생했다는 소식에 후쿠시마로 갔다. 그가 탄 비행기는 후쿠시마 공항에 도착한 마지막 비행기가 됐다. 도착 직후 공항은 폐쇄됐다. 그곳에서 박 감독은 원전 사고 소식을 처음으로 들었다.

 

후쿠시마의 악몽 “우리도, 회사도 무지했다”공항은 마비 상태였다. 다들 “원전이 이상한 것 같다”며 각자 아는 대로 전문가를 찾아 물어보기 바빴다. “세슘이 검출됐다”는 얘기에 어느 전문가로부터 “뒤도 돌아보지 말고 귀국하라”는 조언이 나왔다. MBC 취재팀은 후퇴한다며 버스를 타고 떠났다.

 

박 감독이 속한 취재진에 내려진 지침은 ‘현장에서 판단하라’는 것이 다였다. 그는 “일본 뉴스에서 20~30km 이내는 안전하다고 보도했는데, 우리는 이 말이 사실이기만을 바라며 (원래 목적지인) 센다이로 갔다”고 했다. 센다이 영사관에 도착한 취재팀은 재난 상황을 그대로 마주쳤다. 모든 주유소와 식료품점은 문을 닫았다. 그는 “주먹밥을 받아 먹으며 수재민처럼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기름을 구하지 못해 영사관에 고립돼 있다가 후속 취재팀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나올 수 있었다.

 

2011년 3월 대지진 이후 폭발한 후쿠시마 원전 3호기. 반강제적으로 피폭당한 일부 취재진들은 현재까지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 사진=AP 연합·연합뉴스

후쿠시마에서 돌아온 취재진은 서울 노원구 소재 원자력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KBS의 경우, 파견 나간 79명 중 19명의 취재진에게 염색체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박 감독은 이상 염색체(끊어지거나 파괴된 염색체·이동원염색체) 수 8개로 변형이 가장 심했다. ‘피폭’이라는 두 글자가 가슴속 깊이 박혔다. 불안감은 그의 일상을 바꿨다.

 

박 감독은 급성 스트레스 반응을 동반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적응장애 진단을 받았다. 퇴근하면 컴퓨터 앞에 앉아 몇 시간씩 방사능과 피폭에 대해 알아보기만 했다. 사람들의 과도한 관심과 동정도 이어졌다. 수군거림과 동정 어린 시선이 견디기 힘들어 한동안 뒷문으로 다니기도 했다. 그는 불안감과 스트레스로 2년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인과관계 입증돼야 보상? “사실상 불가능”

 

또 다른 KBS 감독 A씨는 2011년 3월 일본 출장을 다녀오고 2년 후 갑상선암 판정을 받았다. 지진 발생 3일 후 도시 분위기를 취재하기 위해 일본에 갔던 그는 귀국 당시 이상 염색체 수가 5개라는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암수술 비용에 대한 사측 보상은 받지 못했다. 의사로부터 피폭과 암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단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취재하고 돌아온 이들에게 회사는 무성의한 태도를 보였다. 오랜 협상 끝에 합의문이 나왔다. 핵심 내용은 염색체 변형이 나타난 19명의 취재진 중, 염색체 수 4개 이상인 사람들만 특별관리 대상자로 지정하고 이들 상태를 추적 관찰하겠다는 것이었다. 사측은 암보험 가입과 매년 정밀검진 실시, 암 발생 시 ‘인과관계가 입증되면 보상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하지만 갑상선암 판정을 받은 A씨는 암과 피폭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려웠다. 파견 당시 후쿠시마로부터 멀리 떨어진 도쿄에 있었다는 점과 갑상선암의 발병 시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피폭이 갑상선암으로 발병되려면 7년에서 10년 정도 걸린다. 그는 일본 출장 2년 만에 병이 생겨 암이 발생한 요인을 피폭이라고만 단정하기 어려웠다. 결국 A씨는 모든 수술비용을 사보험으로 처리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암이라는 병의 특성상 애초에 병을 유발한 단일한 요인을 밝히는 것은 어렵다고 지적한다. 하미나 단국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사실상 피폭과 암의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단 방사능에 노출되었다면 그 양과 시기에 상관없이 이후 발생하는 질병과 무관하다고 확정 지어선 안 된다”며 “회사의 보상 방식이 그리 적절해 보이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국내 언론사 대부분은 재난이 발생하면 급하게 팀을 꾸려 취재를 지시한다. 위험 상황에 대비한 취재진 안전교육은 평소에도, 파견 시에도 잘 이뤄지지 않는다. 물론 언론사별로 ‘재난현장 취재 유의사항’ 같은 매뉴얼은 있다. 하지만 형식적일 뿐, 취재진은 매뉴얼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형 원전 사고라는 상황에서 국내 취재진의 피폭 문제가 발생한 것도 재난지역 파견에 대한 안전 매뉴얼이 부족했던 탓이 크다.

 

홍은희 명지대 디지털미디어학과 교수는 “피해상황을 알고 싶어 하는 독자들의 말초적인 자극을 충족시키고자 재난 대응 준비도 없이 취재진을 급파하는 게 국내 취재 현실”이라며 “경쟁사보다 빨리 보도해야 한다는 압박이 취재진을 위험으로 내몰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NHK 등 해외 언론사들은 재난상황에서 취재진 안전을 최우선한다”며 “사측은 형식적인 취재 매뉴얼을 개정해 기자 안전을 최우선하는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BS의 경우 취재진 피폭 문제 이후 안전 매뉴얼을 만들었다. 2012년 1월에는 ‘해외출장 및 위험지역 취재 가이드’를, 2015년과 2017년에는 ‘KBS 재난방송 매뉴얼’을 만들었다.

 

매뉴얼에는 평소 직무 교육으로 재난 보도준칙을 교육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가능하면 재난보도 담당 기자를 사전에 지정해 평소 전문지식을 기르도록 지원한다는 내용도 있다. 하지만 실효성 있는 내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정수영 KBS전국언론노동조합 공정방송실장은 “그런 내용은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다”며 “평소 재난 관련 교육을 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도, 교육연수에서 안전교육이 실시된 적도 없다”고 답했다. 재난현장 파견에 준비된 전문기자도 물론 없었다.

 

박성주 KBS 카메라 감독이 8월6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취재진에게 피폭 당시 상황 등을 설명하고 있다. © 사진=류선우·손새로 제공

 

국내 언론사 내 안전 매뉴얼은 여전히 부재

 

취재진 피폭 문제 이후 만들어진 매뉴얼이지만 원전에 관한 내용 또한 부실했다. ‘원전 관련 사고를 취재할 경우 사고시설 부근 취재는 방사선 수치를 측정하는 휴대용 방사선 측정기를 갖추는 등 안전에 충분히 유의한다’는 정도의 언급만 있을 뿐이다.

 

후쿠시마 사고 후 6년이 지났다. 취재진 피폭이라는 문제를 겪고도 달라진 것은 없다. 언론인의 취재 시 안전 문제는 중요하다. 안전을 보장받는 것은 근로자에게 당연한 권리다. 질 좋은 언론보도를 확보하고 유지하는 측면에서도 이 문제는 중요하다. 취재진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속적이고 정확한 보도를 기대하긴 어렵다. 국가도, 언론사도, 언론인 스스로도 취재진 안전 문제에 대해 재고해 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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