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 “내 별명은 ‘길거리 적폐 세력’”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7.09.28 15:21
  • 호수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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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안진걸 인터뷰] ‘21세기 新브나로드’ 꿈꾸는 NGO 지도자 부문 1위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

 

9월23일 찾은 광화문광장은 ‘광장’이라는 이름답게 여러 단체들이 모여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경찰 물대포를 맞고 숨진 백남기씨의 사망 1주기 추모집회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무죄 석방하라는 극우단체의 집회도 열렸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토요일의 광화문광장은 1700만이 모여 목소리를 냈던 촛불집회의 배경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의 공동대변인으로 촛불을 이끌었던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만났다. 그는 오늘도 광화문에 있었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 © 시사저널 이종현

 

  

‘2017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NGO 지도자 부문에서 1위에 올랐다.

 

“촛불집회, 그리고 촛불시민들에 대한 뜨거운 기억 때문인 것 같다. 퇴진행동과 참여연대가 지금까지 발로 뛰었던 것을 기억해 주신 것 같아 기쁘다. 내 이름이 재밌어서 기억에 남은 것도 있을 것 같다(웃음).”

 

 

굉장히 바쁠 것 같다. 촛불집회 전후에 어떤 활동을 했나.

 

“하루 일정이 5~6개씩 있다. 점심은 거를 때가 많고, 저녁을 늦게 먹는 편이다. 평소에 4~5시간 자는데, 푹 자는 게 소원이다. 지난해 8월 이후부터는 세월호 추모집회·백남기 농민 집회·촛불집회에 계속 참가했고, 올해는 사드 때문에 김천과 성주에 5번 내려갔다. 장애인자립대학 강의, 대학 수업도 하고 있다.”

 

 

NGO 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1998년 12월에 졸업을 앞두고 참여연대를 찾아갔다. 이듬해 1월부터 시민권리국에서 일했다.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이 부장이었고, 내가 간사였다. 희망제작소에서도 1년 반 정도 일했다. 대선을 앞둔 2007년 10월 참여연대로 복귀했고, 대선시민연대로 파견됐다. MB(이명박 전 대통령)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불가피하다면 좋은 공약이라도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해 ‘1000개 생활 공약 모으기’ 활동을 했다. MB한테 채택은 안 됐지만. MB가 당선되고 나서 ‘광우병 묻지마 협상’이 있었다. 그에 반대하다 6월에 연행되고 구속됐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시민단체를 이끌며 많은 고초를 겪었는데.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2009년 4대강 반대집회, 2010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반대 집회, 2011년 반값 등록금 집회, 총선네트워크 활동 등과 관련해 8차례 기소됐다. 광우병 촛불집회 사건과 2015년 11월 백남기 농민이 쓰러졌던 민중대회와 관련된 소송은 아직도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이명박근혜 시대’를 살면서 하루하루 편하지 않았다. 낙관적으로 살아왔다 생각했지만, 집에 통지서가 오고 집과 사무실 압수수색을 당하게 되니 삶이 피곤하고 식구들한테 미안함을 갖게 되더라. 저야 내성이 생겼지만, 일반 시민들도 피해를 보셨다. 시민들을 집회에 나오지 못하게 하려고 벌금형을 선고하는 난폭한 시대였다.”

 

  

MB 정부 때 국정원이 시사프로그램 등을 집중 사찰한 것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안 처장 역시 ‘좌파 선전꾼’으로 낙인찍혔다고 들었다.

 

“‘반정부 세력’이라고 하지만, 나는 정부에 반한 적이 없다. 나쁜 정책을 펼친 집권세력 행태에 반대한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출연을 못하게 된 것을 피부로 느꼈다. 당시 반값 등록금 투쟁이나 남양유업 갑질 사건 등 이슈가 많았는데, 이슈파이팅을 해도 연락이 없었다. 기자가 열심히 찍어가도 보도가 되지 않았다. 뉴스가 방송되기 전 문자가 와서 ‘죄송하다’고 하더라. 데스크가 ‘참여연대는 안 된다’고 말했다고 했다.”

 

 

오늘(9월23일)도 고(故) 백남기씨 1주기 집회를 앞두고 있다. 촛불집회 이후 바뀌었다고 체감하는 부분이 있나.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 충돌은 사드 현장 외에는 없었다. 도심 집회는 비교적 평화롭다. 그러나 여전히 경찰은 집회나 기자회견에 과도하게 개입한다. 청와대 분수대 앞 기자회견을 여는데, 15명 이하면 기자회견이고 15명 이상이면 집회라는 자의적 해석을 경찰이 내린다. 언론의 자유 침해이기도 하다. 국민들이 경찰에 원하는 것은 집회나 시위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범죄를 막고 수사에 전력을 다하는 것이다.”

 

© 시사저널 이종현


 

집회 전문가, 전문 시위꾼이라고도 불린다.

 

“2008년에 야간집회금지법 위반으로 연행됐다. 당시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기해 위헌결정을 받았다. 불쌍하게 연행되고, 야간집회금지 위헌결정을 이끌어낸 걸 많이 기억해 주시는 것 같다. 나쁜 것을 반대하는 시위 전문가로 제도를 개선하려 한다. 작년 촛불집회 때도 소송을 해서 청와대 앞 100m까지 집회 범위를 넓혔다. 법원에 출석했을 때 판사가 “안전하게 할 수 있냐”고 물었고, “시민들의 역량을 믿어달라”고 답했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로 만들어진 정부라고 볼 수 있다. 그런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최근 떨어지고 있는데.

 

“충분한 이유들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사드 배치에 대해 신중하겠다고 했지만, 졸속 강행한 모양새가 됐다. 박성진(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같은 인사가 걸러지지 않은 것도 큰 문제다. 대북 대응도 하나의 이유다. 지난 정부가 10년간 북한을 압박해 왔는데, 바로 대화에 응할 것이라 생각했다면 그것은 무리한 기대였다. 그에 따라 너무 빠르게 북한에 대한 강한 압박 기조로 돌아선 것이 매우 안타깝다.”

 

 

소통을 가장 우선시한 문재인 정부가 사드 배치를 강행한 것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현재 여론을 보면 국민들 중 다수는 사드 배치가 불가피하다는 여론을 갖고 있다. 그러나 예의와 소통이 강점인 문 대통령이 결과적으로 성주군민과 김천시민을 속이고 울린 꼴이 됐기 때문에 비판이 나온 것이다. 국민들 대다수는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사드 때문에 철회하진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문제는 사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의 일부 지지자들이 ‘성주는 홍준표 찍어놓고 사드 반대를 하느냐’고 공격하는 것은 온당한 태도가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김천 율곡동뿐 아니라 성주에서도 소성리를 중심으로는 문재인 후보가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받았다.”

 

 

현 정부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가 무엇이라 보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고 민생을 살려야 한다. 국민들이 촛불을 든 이유는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분노뿐 아니라, 헬조선에 대한 분노도 있었다. 개헌도 큰 과제다. 국민이 주도하고 참여해야 한다. 내용도 이원집정부제·내각제처럼 와 닿지 않는 부분보다는 우리가 먹고살 수 있는 권리, 기본권과 사회권을 대폭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시민단체 출신들이 많이 발탁됐다. 정치 쪽에 생각이 있나.

 

“아직 생각해 본 적 없다. 얼굴도 못생기고 제도정치 스타일도 아니라 정치에 적합지 않다(웃음). 내 별명이 ‘길거리 적폐세력’이고 ‘시위꾼’이다. 대신 좋은 정책에 대한 공부는 열심히 한다. 시민사회운동을 하시던 분들이 정치로도 가고, 학계로도 가는 것은 할 수 있는 공적 역할을 선택하는 것이다. NGO 지도자 출신인 박원순 서울시장도 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왕 할 거라면 똑바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앞으로 참여연대를 비롯해 NGO들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나.

 

“가장 활기차고 진취적인 20~30대가 시민단체 활동을 주도하고, 기성세대가 연륜으로 받쳐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40대 중·후반만 돼도 기성화·관성화·보수화가 될 수 있다. 세대별 본연에 맞는 NGO를 구성하는 것도 필요하다. 노선은 거창하게 할 필요가 없다. 21세기 시민 속으로, 신(新)브나로드 운동이면 된다. 또  ‘촛불혁명’의 궁극적인 성공을 위해 정책 개혁도 이뤄져야 한다. 시민들께서 정당, 노조활동도 함께 해주시고, 시민단체 후원에도 적극 참여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너무 잘못된 부분들이 많아 시민단체가 해야 할 민생 문제 해결에 전념하지 못했다. 시민들에게 미안한 부분이다. 시민들의 요구를 반영했는지 성찰하고, 더 발로 뛰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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