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을 향한 향수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0.02 14:33
  • 호수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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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 논란 앞에 갈 길 잃은 한국 축구

 

거스 히딩크.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악연으로 만난 네덜란드 출신의 축구 감독은 2000년 12월 한국 땅을 밟았다. 당시 한국 축구도, 히딩크도 위기였다. PSV 에인트호번과 네덜란드 대표팀에서 잇단 성공으로 주가가 치솟았던 히딩크 감독은 프랑스월드컵 후 모든 지도자가 꿈꾸는 명문 레알 마드리드의 지휘봉을 잡았지만 7개월 만에 경질되는 아픔을 맛봤다. 레알 베티스에서도 실패하며 하향세를 타던 시점에 월드컵 개최국 한국이 러브콜을 보냈다. 한국 축구와 의기투합한 히딩크 감독은 2002년 6월 세계를 놀라게 했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 축구에서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한국 축구의 슈퍼 히어로다. 그가 오기 전까지 한국 축구는 48년의 시간 동안 5번의 월드컵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던 축구 약소국이었다. 최고의 영웅 차범근도 선수와 감독으로서 이루지 못한 1승을 거뒀다. 16강을 넘어 4강이라는 기적 같은 선물로 한국 축구의 한을 풀어준 리더다. 그가 본격적으로 발굴한 박지성, 이영표, 차두리, 김남일, 설기현, 이천수 등은 이후 10년간 한국 축구의 기둥이 됐다.

 

2018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히딩크 역할론이 대두되고 있다. 히딩크 감독도 “어떤 형태로든 한국 축구를 돕고 싶다”고 말했다. © 사진=AP연합

 

또다시 기적을 바라는 한국 축구

 

현재도 그렇지만 15년 전의 시점에 한국 축구가 월드컵 4강에 간다는 건 객관적 실력을 뛰어넘은,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 때 가능한 성과다. 선수들의 지치지 않는 체력, 홈 열기 등 요인도 있었지만, 성공의 비결은 히딩크 감독에게 포커스가 맞춰졌다. 축구 안에서 그치지 않고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연결됐다. 전 국민이 붉은색 옷을 입고 한마음으로 응원하는 통합을 이뤄냈다. 정치적 투쟁으로 대변되던 광장 문화는 질서정연한 대규모 응원전이라는 새로운 혁명을 이끌었다.

 

1명의 리더가 볼품없는 조직을 180도 바꿔 성공하는 모습은 우리가 가장 선호하는 영웅상이다. 히딩크 감독의 신화는 불멸의 이순신 장군에 비유됐다. 그래서 그 전에 대표팀을 이끈 리더들이 문제라는 결론도 나왔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축구 대표팀 감독, 아니 대한민국의 리더 다수는 히딩크 감독의 능력과 비교당한다.

 

그런 히딩크 감독이 15년 만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 복귀 의사를 밝혔다. 타이밍이 묘했다. 한국이 역대 가장 힘겨운 최종예선 끝에 9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에 성공한 다음 날 히딩크 감독의 국내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히딩크 재단의 노제호 사무총장이 “국민적 지지가 있다면 대표팀 감독을 맡을 수도 있다”고 발언했다. 축구계는 “위기 때는 멀리서 바라보다 본선행이 확정되니 자리를 탐낸다”며 부정적 시각을 보였다. 언론도 신태용 감독이 최종예선을 통과하면 본선까지 간다는 원칙과 계약을 지지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여론은 정반대다. ‘히딩크 감독을 다시 모시라’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9월15일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성인 남녀 505명을 대상으로 조사(신뢰 수준 95%, 표본오차 ±4.4% 포인트)한 결과, 응답자의 70.2%가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히딩크 감독에게 감독이나 기술고문 등 어떤 형태로든 실질적인 역할을 줘야 한다”고 답했다.

 

대표팀과 대한축구협회를 둘러싼 불신과 불만이 화를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지난 6월 성적 부진으로 물러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뒤를 이은 신태용 감독은 이란, 우즈베키스탄과의 2경기에서 1골도 넣지 못하는 답답한 경기를 했다. 2경기 연속 0대0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이란이 시리아와 비기면서 한국은 러시아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여러 논란이 더해지면서 국민들의 시선은 더 부정적으로 변했다. 못마땅한 경기력과 결과가 나왔는데도 선수단이 본선행을 자축하며 신태용 감독을 헹가래 치는 모습에 국민들이 분통을 터트렸다.

 

2002년 한·일월드컵 한국-포르투갈전에서 박지성이 골을 성공시킨 뒤 히딩크 감독과 포옹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금 절실한 건 슈퍼 히어로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히딩크 감독의 한국 대표팀에 대한 긍정적 의향 전달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보도 후 대한축구협회로 1분이 멀다 하고 “어서 히딩크 감독을 선임하라”는 요구의 전화가 걸려왔다. 인터넷 세상에는 히딩크 감독 모시기 열풍이 불고, 청와대 청원 게시판인 국민 신문고에는 대한축구협회를 비판하고 히딩크 감독 선임을 요청하는 글이 쏟아졌다.

 

재단 측을 통한 의향 전달을 놓고 진위 논란이 일자 9월14일에는 히딩크 감독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유럽에 있는 국내 언론사 특파원을 모아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표팀 감독을 맡고 싶다”는 분명한 의사는 없었지만 그는 “어떤 형태로든 한국 축구를 돕고 싶다”고 말했다. 기자회견 영상으로 확인한 정확한 발언은 감독보다는 조언자적 역할, 즉 기술고문에 가까웠다. 히딩크 감독은 러시아월드컵 기간 동안 미국 폭스TV의 해설자로 나설 예정이다.

 

지금 히딩크 감독을 원하는 여론은 추억의 힘이 강하다. 월드컵 본선행 진출도 간신히 해낸 한국 축구의 현실을 15년 전 히딩크 감독이 일으킨 기적 같은 신화로 위로받고 싶어 한다. 히딩크라는 세계적인 감독의 능력, 리더십, 영감이 4강 진출의 중심이 된 건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히딩크 감독 취임 후 1년6개월 동안 32번의 A매치와 월드컵 개막 6개월 전부터 사실상 대표팀 상시 합숙 체제를 만든 대대적인 지원도 숨어 있다. 공동개최국의 자존심, ‘일본에 뒤져선 안 된다’는 절실함이 만든 비정상적 지원이었다. 15년이 지난 현재는 불가능한 일이다. FIFA가 규정한 A매치 주간은 확고하다. 15년 전과 달리 대표팀 멤버 절반 이상이 해외에서 뛰고 있다.

 

한국 축구가 다시 월드컵 4강에 가려면 필요한 건 슈퍼 히어로가 아니다. 히딩크 감독 자신도 2002년 월드컵 성공 후 한국을 떠나며 “경쟁국과 같은 여건에서도 성과를 낼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 축구가 뒷걸음질만 친 건 아니지만 15년 동안의 발전 속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주변국이 적극적인 투자와 관심으로 월드컵에 가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는 것과 달리 한국은 월드컵에 대한 관심이 낮다.

 

국민 여론과 열망을 따르는 것이 꼭 정답일 순 없다. 히딩크 감독은 자신의 애창곡인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My Way)》를 통해 소신과 용기 있는 행보가 성공을 만든다고 강조했다. 15년간 한국 축구는 그 마이 웨이를 찾는 데 실패하며 헤맸다. 지난 한 달간 한국 축구가 적나라하게 보여준 현실은 여전히 그 길이 어디 있는지를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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